문학/현대운문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 이용악

열공햐 2021. 2. 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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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이용악

 

 

삽살개 짖는 소리

눈보라에 얼어 붙는 섣달* 그믐*

밤이

얄궂은 손을 하도 곱게 흔들길래

술을 마시어 불타는 소원이 이 부두로 왔다.

 

걸어온 길가에 찔레 한 송이 없었대도

나의 아롱범*은

자옥* 자옥을 뉘우칠 줄 모른다

어깨에 쌓여도 하얀 눈이 무겁지 않고나

 

철없는 누이 고수머릴*랑 어루만지며

우라지오의 이야길 캐고 싶던 밤이면

울 어머닌

 

서투른 마우재 말*도 들려 주셨지

졸음졸음 귀 밝히는 누이 잠들 때꺼정

등불이 깜빡 저절로 눈 감을 때꺼정

다시 내게로 헤여드는

어머니의 입김이 무지개처럼 어질다

 

나는 그 모두를 살뜰히 담았으니

어린 기억의 새야 귀성스럽다*

기다리지 말고 마음의 은줄에 작은 날개를 털라

 

드나드는 배 하나 없는 지금

부두에 호젓 선 나는 멧비둘기 아니건만

날고 싶어 날고 싶어

머리에 어슴푸레 그리어진 그 곳

우라지오의 바다는 얼음이 두껍다

 

등대와 나와

서로 속삭일 수 없는 생각에 잠기고

밤은 얄팍한 꿈을 끝없이 꾀인다

가도오도 못할 우라지오.*

 

*섣달 :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

*그믐 : 음력으로 그달의 마지막 날

*아롱범 : 표범

*자옥 : 발자옥, ‘발자국’의 방언 (충북)

*고수머리 : 곱슬머리, 고불고불하게 말려 있는 머리털. 또는 그런 머리털을 가진 사람

*마우재 말 : 러시아 말(마우재: 러시아인)

*귀성스럽다 : 제법 엇구수한 데가 있다.(구수한 맛이 있다.)

*우라지오 :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회상적, 비유적, 향수적, 애상적

표현 : 다양한 비유의 사용

어조 : 그리움에 잠긴 애상적 목소리

구성 :

  - 1: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부두를 찾아옴(현재)

  - 2: 힘들지만 당당하게 살아온 지난 삶(현재)

  - 3~4: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거)

  - 5~6: 적극적인 회상의 자세(현재)

  - 7~8: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움(현재)

제재 : 어렸을 때 추억과 현재 타향에서의 삶

주제 :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출전 : <분수령>(1937)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시베리아의 이국 땅을 떠도는 화자가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일제 강점하에서 가족이 해체된 우리 민족의 슬픔과 한()을 형상화하고 있다.

 

  먼 이국을 떠돌던 화자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때문에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를 찾는다. 우라지오는 화자가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로만 듣고 동경하던 항구이다. 그 곳은 고향의 절박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다. 그러나 그 곳에는 '찔레 한 송이'도 찾아 볼 수 없는 추위와 외로움만이 있을 뿐이다. 어른이 된 지금, 그곳은 어린 시절 그가 동경하던 세계가 아니다. 오직 추위와 외로움이 있을 뿐이다. 화자는 그러한 현실과 당당히 맞서 후회 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고향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깊어만 가고, 과거의 가족들을 떠올리며 고향을 그리워하나, 고향으로 갈 길이 전혀 없다.

 

  우라지오 바다의 얼음이 두껍다는 것은 그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있음을 암시한 말이다. 화자는 이런 속에서 공중을 나는 멧비둘기처럼 날아서 고향의 가족들에게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우라지오의 바다는 두껍게 얼어붙어 있고 드나드는 배가 하나도 없는 지금, 화자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래서 화자는 마지막 연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고, 이국 땅에서의 삶도 괴로운 자신의 처지를 '가도오도' 못한다고 가슴 아프게 토로하고 있다.

 

  이 시가 창작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이 시는 일제에 의해 가족 공동체가 해체된 우리 민족의 한과 슬픔을 형상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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