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현대운문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 도종환

열공햐 2021. 2. 2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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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도종환

 

 

견우직녀도 이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께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갈고 씨뿌리고 땀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핵심 정리

성격 : 애상적, 산문적, 회고적

심상 : 시각적 심상

특징 : 자전적 성격을 지님시각적 심상이 두드러짐.

구성 : 내용상 전·후반으로 나뉜다.

   전반부 :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옴(1~7)

    - 아내와의 사별과 그 아픔

   후반부 : 돌아오면서 느낀 회한(8~14)

    - 8~10: 생사의 멀고 먼 거리감(인간적 한계)

    - 11~14: 재회의 믿음과 아픔의 극복

제재 : 그리움과 회한(悔恨)

주제 : 사별(死別)한 임에 대한 그리움 사별의 아픔과 그 극복

출전 : <접시꽃 당신>(1986)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아내의 죽음 이후에 시인이 느끼는 슬픔과 그리움을 표현한 작품으로서 자전적 성격을 띤다. 시인과 관련된 전기적 사실을 배제하고 작품이라는 구조물만으로 접근할 때에도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死別)한 화자의 한()을 표현한 작품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시는 연의 구분은 없지만, 내용 전개상 전반부 7행과 후반부 7행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전반부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로 요약될 수 있는 내용이고, 후반부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면서 새삼스레 알게 된 것들이 그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시의 상황 설정이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지는 것은 임을 땅에 묻는 날이 공교롭게도 견우 직녀가 오랜 이별 끝에 서로 만나는 칠석날이라는 데 있다. 화자가 현재 처해 있는 정황과 상반된 의미를 지니는 이 칠석날의 의미는, 그러나 끝까지 상반된 의미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의 계기로 귀착된다는 데 이 시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즉, ‘칠석날은 임이 죽어 땅에 묻힌 날이라는 표면적인 의미 외에도 언젠가 당신이 이 되고 내가 바람이 되어 견우 직녀처럼 다시 만날 것이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 시의 화자는 섣불리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임의 죽음 앞에서 자칫 감상에 젖지 않을 수 없을 터인데, 그 슬픔을 새로운 희망으로 전환시켜 내는 힘이 느껴지는 시로서 잠시 한용운 시인의 어떤 면모를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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