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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전' 전문

까치전 우족 3천 중에서 집이 이 같이 사치하기는 고금에 처음이라, 이러하므로 낙성연을 배설하고 고구친척(故舊親戚)을 다 청하여 즐길새 배반(盃盤)이 낭자(狼藉)하여 낙성주(落成酒) 취하게 먹고 온갖 비금(飛禽)들이 교음(嬌音)을 자아내니 오음육율(五音六律)에 관현곡(管絃曲)을 드리는 듯하니 만좌제객이 취흥이 몽롱하여 즐길새 춤 잘 추는 학두루미 백설 같은 옷을 입고 짧은 목을 길게 빼어 고개를 기울기울, 까마귀를 볼작시면 아청(鴉靑)같은 옷을 입고 두 날개를 너펄너펄, 유막의 꾀꼬리는 황금 갑옷 떨쳐입고 노래를 화창하며, 강남서 나온 제비는 글을 읊으되, 지지위지(支持謂知,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요, 부지위부지(不知謂不知,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가 시위지야(是謂知也, 이것이 아는 것이다)이라..

문학/소설전문 2021.01.30

김동인 '태형' 전문

태형 김동인 "기쇼오(起床)!" 잠은 깊이 들었지만 조급하게 설렁거리는 마음에 이 소리가 조그맣게 들린다. 나는 한 순간 화다닥 놀래어 깨었다가 또다시 잠이 들었다. "여보,기쇼야,일어나오." 곁의 사람이 나를 흔든다. 나는 돌아누웠다. 이리하여 한 초 두 초, 꿀보다도 단 잠을 즐길 적에 그 사람은 나를 또 흔들었다. "잠 깨구 일어나소." "누굴 찾소?" 이렇게 나는 물었다. 머리는 또다시 나락의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러디 말고 일어나요. 지금 오방 댕껭(點檢)합넨다." "여보, 십 분 동안만 더 자게 해주." "그거야 내가 알갔소? 간수한테 들키면 혼나갔게 말이지." "에이! 누가 남을 잠도 못 자게 해. 난 잠들은 지 두 시간도 못 됐구레. 제발 조금만 더..." 이 말이 맺기 전에 나의..

문학/소설전문 2021.01.30

이태준 '해방 전후' 전문

해방 전후 이태준 한 작가의 수기 호출장(呼出狀)이란 것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시달서(示達書)라 이름을 바꾸었다고는 하나, 무슨 이름의 쪽지이든, 그 긴치 않은 심부름이란 듯이 파출소 순사가 거만하게 던지고 간, 본서(本署)에의 출두 명령은 한결같이 불쾌한 것이었다. 현(玄) 자신보다도 먼저 얼굴빛이 달라지는 아내에게는 으레 심상한 체하면서도 속으로는 정도 이상 불안스러워 오라는 것이 내일 아침이지만 이 길로 가 진작 때우고 싶은 것이, 그래서 이날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밥맛이 없고, 설치는 밤잠에 꿈자리조차 뒤숭숭한 것이 소심한 편인 현으로는 ‘호출장’ 때나 ‘시달서’ 때나 마찬가지곤 했다. 현은 무슨 사상가도, 주의자도, 무슨 전과자(前科者)도 아니었다. 시골 청년들이 어떤 사건으로 잡히어서..

문학/소설전문 2021.01.30

현진건 '할머니의 죽음' 전문

할머니의 죽음 현진건 ‘조모주 병환 위독’ 3월 그믐날 나는 이런 전보를 받았다. 이는 xx에 있는 생가(生家)에서 놓은 것이니 물론 생가 할머니의 병환이 위독하단 말이다. 병환이 위독은 하다 해도 기실 모나게 무슨 병이 있는 게 아니다. 벌써 여든 둘이나 넘은 그 할머니는 작년 봄부터 시름시름 기운이 쇠진해서 가끔 가물가물하기 때문에 그 동안 자손들로 하여금 한두 번 아니게 바쁜 걸음을 치게 하였다. 그 할머니의 오 년 맏인 양조모(養祖母)는 갑자기 울기 시작하였다. “아이고--- 이승에서는 다시 못 보겠다. 동서라도 의로 말하면 친형제나 다름이 없었다--육십 년을 하루같이 어디 뜻 한 번 거실러 보았을까---.” 연해연방 이런 넋두리를 섞어 가며 양조모는 울었다. 운다 하여도 눈 가장자리가 붉어지고 ..

문학/소설전문 2021.01.30

양귀자 '한계령' 전문

한계령 양귀자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여자의 목소리는 지독히도 탁하고 갈라져 있었다. 얼핏 듣기에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 목소리를 듣자 나는 곧 기억의 갈피를 젖히고 음성의 주인공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게 전화를 건 적이 있는 그런 굵은 목소리의 여자는 두 사람쯤이었다. 한 명은 사보 편집자였고 또 한 명은 출판인이었다. 두 사람 다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활동적이고 거침이 없는 여걸이 아니겠냐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터였다. 두 사람 중의 하나라면 사보 편집자이기가 십상이라고 속단한 채 나는 전화 저편의 여자가 순서대로 예의를 지켜가며 나를 찾는 것에 건성으로 대꾸하고 있었다. 가스레인지를 켜놓고 무언가를 끓이고 있던 중이어서 내 마음은 급하기 짝이 없었다. 급한 내 마..

문학/소설전문 2021.01.30

전광용 '사수' 전문

사수(射手) 전광용 내가 언제 이런 곳에 왔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분명 경희임에 틀림없다. 겨드랑이에서 체온계를 빼려는 손을 꼭 잡았다. 손가락이 차다. 경희의 손은 이렇게 냉랭한 적이 없었다. 따뜻하던 지난날의 감촉이 포근히 되살아온다. 눈을 떴다. 그러나 아직도 머리는 안개가 서린 듯 보야니 흐리멍덩하다. “정신이 드나 봐….” 경희의 음성이 아니다. 이렇게 싸늘하지는 않았다. 간호원이다. 새하얀 옷이 소복 같은 거리감을 가져온다. 꿈인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따져 보아도 꿈은 아닌 성싶다. 내 숨소리가 확실히 거세게 들려온다. 틀림없이 심장이 뛰고 있다. 총소리가― 그것도 다섯 방의 총소리가 거의 같은 순간에 울리던 그 총소리가― 아직도 고막에 달라붙어 있다. B가 맞은 건지 내가 맞은 건지 ..

문학/소설전문 2021.01.30

강경애 '인간 문제' 전문

인간 문제 강경애 이 산등에 올라서면 용연 동네는 저렇게 뻔히 들여다볼 수가 있다. 저기 우뚝 솟은 저 양기와집이 바로 이 앞벌 농장 주인인 정덕호 집이며, 그 다음 이편으로 썩 나와서 양철집이 면역소며, 그 다음으로 같은 양철집이 주재소며, 그 주위를 싸고 컴컴히 돌아앉은 것이 모두 농가들이다. 그리고 그 아래 저 푸른 못이 원소(怨沼)라는 못인데, 이 못은 이 동네의 생명선이다. 이 못이 있길래 저 동네가 생겼으며, 저 앞벌이 개간된 것이다. 그리고 이 동네 개 짐승까지라도 이 물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못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무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동네 농민들은 이러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 전설을 유일한 자랑거리로 삼으며, 따라서 그들이 믿는 신조로 한..

문학/소설전문 2021.01.30

최인훈 '광장' 전문

광장 최인훈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이 들어찬 동지나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려져 간다. 석방 포로 이명준(李明俊)은, 오른편의 곧장 갑판으로 통한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가, 배 뒤쪽 난간에 가서, 거기에 기대어 선다. 담배를 꺼내 물고 라이터를 켜댔으나 바람에 이내 꺼지고 하여, 몇 번이나 그르친 끝에,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오른팔로 얼굴을 가리고 간신히 댕긴다. 그때다. 또 그 눈이다. 배가 떠나고부터 가끔 나타나는 허깨비다. 누군가 엿보고 있다가는, 명준이 휙 돌아보면, 쑥, 숨어 버린다. 헛것인 줄 알게 되고서도 줄곧 멈..

문학/소설전문 2021.01.30

이태준 '돌다리' 전문 및 해석

돌다리이 태 준   정거장에서 샘말 십 리 길을 내려오노라면 반이 될락말락한 데서부터 샘말 동네보다는 그 건너편 산기슭에 놓인 공동묘지가 먼저 눈에 뜨인다.창섭은 잠깐 걸음을 멈추고까지 바라보았다.봄에 올 때 보면, 진달래가 불붙듯 피어 올라가는 야산이다. 지금은 단풍철도 지나고 누르테테한 가닥나무들만 묘지를 둘러, 듣지 않아도 적막한 버스럭 소리만 울릴 것 같았다. 어느 것이라고 집어 낼 수는 없어도, 창옥의 무덤이 어디쯤이라고는 짐작이 된다. 창섭은 마음으로 '창옥아' 불러 보며 묵례를 보냈다.다만 오뉘뿐으로 나이가 훨씬 떨어진 누이였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자기가 마침 방학으로 와 있던 여름이었다. 창옥은 저녁 먹다 말고 갑자기 복통으로 뒹굴었다. 읍으로 뛰어들어가 의사를 청해 왔다. 의사는 ..

문학/소설전문 2021.01.30

박완서 '우황청심환' 전문

우황청심환 박완서 가까스로 잠이 좀 오려는데 또 그놈의 소리가 났다. 주우지 니집뿐, 주우지니집뿐…… "몇 시라는 소리유?" 노파는 물었다. 남궁씨는 되는 대로 대답했다. 기계로 합성 한 음향이면서도 일본말 특유의 교성이 알려주는 시간은 어차피 지금 이 지점의 시간과는 무관할 터였다. 노파의 시계가 친절을 다해 가르쳐 주는 시간이 노파가 떠나 온 여행지의 시간인지도 그는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나는 비행기 속이었다. 노파는 태엽을 누르면 현재의 시간을 말로 알려 주는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백내장 수술 후 시력이 밤낮이나 가릴 정도로 떨어지고 나서 아들이 일본에서 사다 준거라고 했다. 시간을 알려 주는 소리도 물론 일본말이었다. 못봄을 못알아들음으로 바꿔 가지고 으스대는 노파가 남궁씨는 지겨웠다. 말하..

문학/소설전문 2021.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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