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시의 모티브가 된 샤갈의 두 작품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율격 : 내재율
• 성격 : 감각적. 회화적. 환상적
• 어조 : 차분하면서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어조
• 표현
① 연을 나누지 않은 전연시(全聯詩)의 형태.
② 현재형의 시제를 사용하여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표현.
③ 각 문장들은 산문적 의미 전달이 단절된 채, 서술적 이미지만 연결됨
• 심상 : 시각적
• 구성
1행 : 샤갈의 그림 속의 눈내리는 마을
2~4행 : 사나이의 관자놀이에서 확인하는 생명감
5~9행 : 샤갈의 마을을 덮는 눈의 모습
10~12행 : 눈 속에 소생하는 생명
13~15행 : 맑고 순수한 생명의 이미지
제재 : 눈
주제 : 맑고 순수한 생명감
출전 : <김춘수 시선집>(1977)
시어의 의미
• 눈 : 생동감 있게 온 천지를 덮는 주(主) 제재
• 새로 돋은 정맥(靜脈) : 퍼져 나가는 봄의 생명감
• 올리브빛 : 메마른 겨울 열매들에게 생명을 부여함
• 불 : 아낙의 맑은 마음
눈 ↓ |
||
정맥 → | 생명감 | ← 올리브빛 |
↑ 불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전체적으로 봄의 생동감과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있다.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 3월의 눈, 겨울 열매, 아궁이를 지피는 아낙들은 상호 연관성이 떨어지는 소재들을 병치시킨 것이다. 또한 푸른색, 정맥과 흰색 눈, 올리브 빛 겨울 열매, 불 등 대비적인 이미지가 나타나 있다. 즉, 시인이 샤갈의 그림을 보고 마음 속에 떠오르는 순수한 심상들을 감각적인 언어로 형상화하여 환상의 분위기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감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인간 존재의 신비스러움과 자연의 조화로운 정신을 보여 주고 있는 시이다. 현대적 시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김춘수는 관념의 시를 쓰던 1950년대를 거쳐 1960년대에 이르면 관념과 의미를 해체하고 대상이 갖는 순수한 이미지만을 추구하는 무의미의 시를 쓴다. 이 시도 그런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다. 따라서 이 시의 각 행들은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심상들을 감각적인 언어로 포착하였다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이 시에 나오는 샤갈의 마을은 실재하지 않는 환상적 세계이다. 이런 세계를 배경으로 ‘눈’과 ‘새로 돋은 정맥’, ‘올리브빛’, ‘불’ 등의 이질적인 시어들은 모두 독자적인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순수하고 맑은 생명감이라는 공통적인 심상을 연상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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