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장관댁죽헌기(김 장관댁 죽헌 기)
류방선(유방선)
*파란색은 수능특강 본문
영천(永川)의 토질이 대 자라기에 적합하여 민가에서 대개 많이 심어 가꾸어 혹은 정사도 만들고 혹은 울타리를 만들기도 한다. 온 고을이 다 그러하나 반드시 대가 대가 된 까닭을 깊이 알지는 못할 것이다.
영천의 토질은 대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하여, 민가에서는 대를 심어 가꾸기도 하고 울타리를 만들기도 한다. 온 고을이 다 그러하나 그들은 대나무의 본성을 진실로 깊이 알지는 못할 것이다.
전 장관 김영지군은 사족(士族)인데, 천성이 대를 사랑하였다. 해직한 뒤로부터 고향에 물러앉아 남이 알아둘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이수의 남쪽에 터를 가려 침실 동편에다 머름을 짓고 대를 머름 곁에 심어, 그것을 편안히 쉬는 처소로 정함과 동시에 이름을 죽헌(竹軒)이라 하였다.
전 장관 김영지는 사족으로 본래 대나무를 사랑하였다. 해직한 뒤로부터 고향에 물러앉아 남이 알아주는 것을 바라지 않고, 이수의 남쪽에 터를 잡아 침실 동쪽에 정자를 짓고 대를 곁에 심었다. 그리고 그것을 편안히 쉬는 거처로 정함과 동시에 이름을 '죽헌(竹軒)'이라 하였다.
무릇 대란 물건이 사시를 통하여 변하지 않고 온갖 초목에 뛰어나서 홀로 특색을 보존하며, 그 곧은 것은 족히 풍속을 고칠 만하고 그 건장한 것은 족히 나약함을 일으킬 만하며, 겨울에는 눈 속에서 그 차가운 소리가 창에 흩뿌리고, 여름에는 바람 속에서 서늘한 기운이 탑 자리에 가득하며, 연기와 아지랑이가 자욱하여 소상강이 눈앞에 있는 것과 방불하고, 별과 달이 환하게 비추어, 상쾌한 것이 마치 선경이 사람의 정신과 융화한 것 같으며, 시를 읊으면 흥취가 더욱 더해지고 빈객을 대하면 오가는 말소리가 따라서 맑아지니, 이것이 다 죽헌의 공이다.
무릇 대나무란 네 계절을 변하지 않고 온갖 초목 가운데 홀로 특색을 보존한다. 그 곧은 것은 능히 풍속을 고칠 만하고 그 건장한 것은 능히 나약함을 일으킬 세울 만하다. 겨울에는 눈 속에서 그 차가운 소리가 창에 뿌리고, 여름에는 바람 속에서 서늘한 기운이 탑 자리에 가득하다.
연기와 아지랑이가 자욱하여 소상강이 눈앞에 있는 것과 같고, 별과 달이 비치고 빛나서 상쾌한 것은 마치 선경이 사람의 정신을 융화하게 하는 것 같다. 시를 읊으면 흥취가 더욱 더해지고 귀한 손님을 대하면 오가는 말소리가 따라서 맑아지니, 이것이 다 누각 죽헌의 공이다.
세상이 굳이 도리나 연꽃을 봄ㆍ여름의 아름다운 구경거리로 삼고 국화나 매화를 가을ㆍ겨울의 뛰어난 완상(玩賞)거리로 삼지만, 왕왕 대에 대해서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도리나 연꽃은 그 꽃된 것이 부귀한 사람에게 알맞고, 국화나 매화는 똑같은 꽃으로서 풍영하는 데에 소중할 따름이지만, 대는 곧고 화사하지 않으며 고고하여 속되지 않으며, 차거나 더우나 한결같은 절개로 예나 지금이나 한 빛으로, 가까이서 보면 잠깐이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을 어느 누가 알리요. 세상 사람이 한갓 풍자의 곱고 아름다움과 이슬에 젖은 꽃망울의 향기만을 사랑하여, 그것이 모르는 가운데 사치한 마음을 유발하고 간사한 뜻을 불러 일으켜, 사람으로 하여금 방탕하고 음란한 지경에 빠지게 하는 줄을 알지 못한다. 아, 대는 그렇지 않다. 대를 보면 야비하고 인색한 마음이 없어지고, 대를 본받으면 선비의 행실이 다듬어지고, 비와 이슬이 능히 그 화려함을 보태주지 못하고, 바람과 서리가 능히 그 절조를 바꾸지 못한다.
세상이 오얏과 연꽃을 봄과 여름의 구경거리로 삼고, 국화나 매화를 가을과 겨울의 완상으로 삼지만, 간혹 대나무에 대해서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오얏과 연꽃은 부귀한 사람에게 어울리고, 국화나 매화는 똑같이 풍월을 읊는 데에 소중할 따름이다. 대나무는 곧고 화사하지 않으며 고고하여 속되지 않다. 또한 추우나 더우나 한결같은 절개로 예나 지금이나 같은 빛이다.
세상 사람은 대게 위와 같이 이것들의 자태의 곱고 아름다움과 이슬에 젖은 꽃망울의 향기만을 사랑하여, 자기도 모르게 사치할 마음과 간사한 뜻이 생겨 방탕하고 음란함에 빠지는 줄을 알지 못한다.
아, 대나무는 그렇지 않다. 대나무를 보면 야비하고 인색한 마음이 없어진다. 대나무의 덕성을 본받으면 선비의 행실이 다듬어진다. 비나 이슬은 그 화려함을 대나무에 보태 주지 못하고, 바람과 서리는 대나무의 절개를 바꾸지 못한다.
다만 홍자의 현란한 빛과 무럭무럭한 향기가 없기 때문에 능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적다. 비유하자면 소인이 사람을 대할 때는 그 안색을 곱게 하고 그 언어를 비위에 맞게 하여 대하므로, 온화하기 때문에 아부하는 자가 많고, 군자가 사람을 대할 때는 의관을 바르게 하고 첨시를 높게 하여, 바라보면 점잖기 때문에 귀의하는 자가 적은 것과 같으니, 대를 사랑하는 사람이 적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대나무에는 붉은색의 현란함과 향기가 없는 까닭에, 이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적다. 비유하자면 소인이 사람을 대할 때면 그 안색을 갖추고 그 언어를 비위에 맞게 하여 대하므로 아부하는 자가 많은 반면에, 군자가 사람을 대할 때는 의관을 바르게 하고 바로보는 것을 높게 하면서 점잖기 때문에 따르는 자가 적은 것과 같다. 이로 보아 대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 적은 것도 당연하다.
지금 김군이 홀로 사랑하여 정원에 심고 밤낮으로 서로 대하여 성정을 읊조리고 더러운 것을 씻어버렸으니, 그 가슴속의 경위가 진실로 이미 구별되었을 것이다.
지금 김군이 홀로 대나무를 사랑하여 이를 정원에 심고, 밤낮으로 대하며 성정을 가꾸고 더러운 것을 씻고 있다. 따라서 그 가슴속의 맑고 더러움은 진실로 이미 구별되었을 것이다.
그는 장차 반드시 절개를 본받아 임금을 섬기면 그 충성을 변하지 않고, 어버이를 섬기면 그 효도를 변하지 않으며, 나라에 도가 있어도 궁할 때 하던 것을 바꾸지 않고, 나라에 도가 없어도 소신을 변하지 않을 것이니, 대가 사랑할 만한 것임을 깊이 알아서 사랑하는 것이다.
그가 대나무의 절개를 본받아 임금을 섬기면 그 충성은 변하지 않고, 어버이를 섬기면 그 효도가 변하지 않을 것이니, 나는 그의 이런 점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남쪽으로 귀양살이를 갔을 때 다행히 한 번 가서 보고 고상하게 여겼기 때문에 글이 졸함에도 불구하고 기를 만들어서 그 머름에 걸게 하는 것이다.
내가 남쪽으로 귀양살이를 갔을 때, 운 좋게 그 누각을 한 번 가서 보고, 김 군의 삶을 고상하게 여겼었다. 이 때문에 나는 내 글이 졸렬함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지어 그 누각에 걸게 하려 한다.
이해와 감상
영천의 토질은 대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하여, 민가에서는 대를 심어 가꾸기도 하고 울타리를 만들기도 한다. 온 고을이 다 그러하나 그들은 대나무의 본성을 진실로 깊이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대나무의 본성을 진실로 깊이 알지는 못할 것이다.'는 글의 핵심으로 화자가 전하려는 주된 의미이다.
전 장관 김영지는 사족으로 본래 대나무를 사랑하였다. 해직한 뒤로부터 고향에 물러앉아 남이 알아주는 것을 바라지 않고, 이수의 남쪽에 터를 잡아 침실 동쪽에 정자를 짓고 대를 곁에 심었다. 그리고 그것을 편안히 쉬는 거처로 정함과 동시에 이름을 '죽헌(竹軒)'이라 하였다.
무릇 대나무란 네 계절을 통하여 변하지 않고 온갖 초목 가운데 홀로 특색을 보존한다. 그 곧은 것은 능히 풍속을 고칠 만하고 그 건장한 것은 능히 나약함을 일으킬 세울 만하다. 겨울에는 눈 속에서 그 차가운 소리가 창에 뿌리고, 여름에는 바람 속에서 서늘한 기운이 탑 자리에 가득하다.
'네 계절을 통하여 변하지 않고'에서 대나무의 불변성, '그 곧은 것은 능히 풍속을 고칠만하고 그 건장한 것은 능히 나약함을 일으켜 세울 만하다.'에서 대나무의 곧은 속성과 건장함이 느껴진다. 특히 '차가운 소리, 서늘한 기운'는 청각과 시각을 통해 대나무의 특성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연기와 아지랑이가 자욱하여 소상강이 눈앞에 있는 것과 같고, 별과 달이 비치고 빛나서 상쾌한 것은 마치 선경이 사람의 정신을 융화하게 하는 것 같다. 시를 읊으면 흥취가 더욱 더해지고 귀한 손님을 대하면 오가는 말소리가 따라서 맑아지니, 이것이 다 누각 죽헌의 공이다.
죽헌의 풍경 묘사와 비유를 통해 신비롭게 묘사하고 있다.(대나무에 담긴 의미)
세상이 오얏과 연꽃을 봄과 여름의 구경거리로 삼고, 국화나 매화를 가을과 겨울의 완상(玩賞)으로 삼지만, 간혹 대나무에 대해서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오얏과 연꽃은 부귀한 사람에게 어울리고, 국화나 매화는 똑같이 풍월을 읊는 데에 소중할 따름이다. 대나무는 곧고 화사하지 않으며 고고하여 속되지 않다. 또한 추우나 더우나 한결같은 절개로 예나 지금이나 같은 빛이다.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겉모습을 연출하는 꽃만 즐겨 구경함에도 불구하고, 대나무는 화사해져서 속되려 하지 않고 고고한 곧음을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다.
세상 사람은 대게 위와 같이 이것들의 자태의 곱고 아름다움과 이슬에 젖은 꽃망울의 향기만을 사랑하여, 자기도 모르게 사치할 마음과 간사한 뜻이 생겨 방탕하고 음란함에 빠지는 줄을 알지 못한다.
아, 대나무는 그렇지 않다. 대나무를 보면 야비하고 인색한 마음이 없어진다. 대나무의 덕성을 본받으면 선비의 행실이 다듬어진다. 비나 이슬은 그 화려함을 대나무에 보태 주지 못하고, 바람과 서리는 대나무의 절개를 바꾸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은 겉모습이 화려한 꽃들만 사랑하다보니 사치를 화려함으로 착각하고, 사치를 위해 간사해지고, 결국에는 자신도 모르게 방탕하고 음란한 삶을 살게 된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화자나 지인의 모습도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감탄이 나올리 만무하다. 화려함에 절로 이끌리던 나약한 이들이 대나무를 보면 야비함과 인색함이 사라질 수 있겠다는 믿음에 자기도 모르게 큰 숨을 내뱉었으리라! 그렇게 대나무를 본받아 선비의 행실을 다듬는 것이 '사대부가 갖춰야 할 마음'인 것이다.
다만 대나무에는 붉은색의 현란함과 향기가 없는 까닭에, 이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적다. 비유하자면 소인이 사람을 대할 때면 그 안색을 갖추고 그 언어를 비위에 맞게 하여 대하므로 아부하는 자가 많은 반면에, 군자가 사람을 대할 때는 의관을 바르게 하고 바로보는 것을 높게 하면서 점잖기 때문에 따르는 자가 적은 것과 같다. 이로 보아 대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 적은 것도 당연하다.
사람을 대할 때 현란하고 향기로운 꽃처럼 안색을 바꾸는(교언영색,巧言令色) 소인이 세상에는 많다. 하지만 그들과 대조적으로 화려함과 향기가 없는 대나무를 따르는 군자는 적은 것이 현실이다. 화자는 군자를 따르는 이가 적은 이유는 대나무를 사랑하는 이가 적기 때문이라 유추한다.
지금 김군이 홀로 대나무를 사랑하여 이를 정원에 심고, 밤낮으로 대하며 성정을 가꾸고 더러운 것을 씻고 있다. 따라서 그 가슴속의 맑고 더러움은 진실로 이미 구별되었을 것이다.
김군은 홀로 향기 없는 대나무를 밤낮으로 보며 마음을 가꾸고, 사치, 간사, 방탕, 음란처럼 더러운 것을 씻고 있으니 그의 성품이야 향기로 내뱉지 않아도 느껴진다. '실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완전하게 한다'는 성리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가 그에 품행에 걸맞다.
그가 대나무의 절개를 본받아 임금을 섬기면 그 충성은 변하지 않고, 어버이를 섬기면 그 효도가 변하지 않을 것이니, 나는 그의 이런 점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남쪽으로 귀양살이를 갔을 때, 운 좋게 그 누각을 한 번 가서 보고, 김 군의 삶을 고상하게 여겼었다. 이 때문에 나는 내 글이 졸렬함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지어 그 누각에 걸게 하려 한다.
'충'과 '효'라는 유교적 덕목을 잘 지키는 그를 사랑한다고 한다. 종내에는 대나무를 가까이하며 사랑하는 김영지 군의 성심을 예찬하는 마음(표면적)과, 그런 대나무의 덕성을 본받고 싶은 마음(이면적, 궁극적)을 널리 전하고자 부족한 글을 누각에 건다는 그의 말에서 어느새 대나무를 닮은 그의 성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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