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고전산문

유충렬전 전문 및 해설

열공햐 2025. 6. 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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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렬전 전문



각설, 대명국 영종황제 즉위(卽位) 초(初)에 황실이 미약하고 법령(法令)이 불행(不幸)한 중에 남만(南蠻) 북적(北狄)과 서역(西域)이 강성하여 모반할 뜻을 둠에, 이런 고로 천자 남경에 있을 뜻이 없어 다른 데로 도읍을 옮기고저 하시더니, 이때 마침 창해국(蒼海國) 사신이 왔음에 성은 임이요 명은 경천이라 하는 사람이거늘, 천자 반겨 인견(引見)하시고 접대한 후에 도읍 옮김을 의논하시니 임경천이 주왈,



“소신이 옥루(玉樓)에서 육대산천을 망기(望氣)하오니 금황지지(今皇之地)가 마땅하옵고 천하명산(天下名山)이 오악지중(五嶽之中)에 남악(南嶽) 형산(衡山)이 가장 신령한 산이요, 일국(一國) 주룡(主龍)이 되었고 창오산(蒼梧山) 구리봉은 변화하야 외청룡(外靑龍) 되었고 소상강(瀟湘江) 동정호(洞定湖)는 수세(水勢))가 광활하야 내청룡(內靑龍) 되어 있어 내수구(內水口)를 막았으니 제왕주가 장구할 것이요, 또한 소신이 수년 전에 본국에서 망기(望氣)하온즉 북두칠성 정기가 남경에 하강하고 삼태성 채색이 황성(皇城)에 비쳤으며 자미원(紫薇垣) 대장성이 남방에 떨어졌으니 미구(未久)에 신기한 영웅이 날 것이니 황상은 어찌 조그마한 일로 이러한 금성지지(金城之地)를 놓으시며, 선황제 마마 구방지지(舊邦之地)를 어찌 일조에 놓으시리까.”



천자 이 말을 들으시고 마음이 쇄락(灑落)하여 도읍 옮기심을 파하시고 국사를 다스리니 시절이 태평하고 인심이 조안(粗安)하더라.



이때 조정에 한 신하 있으되 성은 유요 명은 심이니, 전일 선조황제 개국공신 유기(劉基)의 십삼대 손이요 전 병부상서 유현의 손자라, 세대명가(世代名家) 후예로 공후 작록이 떠나지 아니하더니 유심의 벼슬이 정언주부에 있는지라. 위인이 정직하고 성정이 민첩하며 일심이 충정하야 국록이 중중(重重)하니 가산이 요부(饒富)하고 작법(作法)이 화평하니 세상 공명은 일대에 제일이요, 인간 부귀는 만민이 청송하되 다만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이 매일로 한탄하여 일년일도(一年一度)에 선영(先塋) 제사 당하면 홀로 앉아 우는 말이,



“슬프다! 나의 몸이 무슨 죄 있어 국록을 먹거니와 자식이 없으니 세상이 좋다 한들 좋은 줄 어찌 알며 부귀가 영화롭되 영화 된 줄 어찌 알리, 나 죽어 청산에 묻힌 백골 뉘라서 거두오며, 선영향화(先塋香火)를 뉘라서 주장하리.”



하염없는 눈물이 옷깃을 적시는지라.



이렇듯이 설워하니 부인 장씨는 이부상서 장윤의 장녀라. 주부 곁에 앉았다가 일심이 비감하야 왈,



“상공의 무후(無後)함은 소첩의 박복함이라 첩의 죄를 논지컨데 벌써 버릴 것이로대 상공의 음덕으로 지금까지 부지하오니 부끄러운 말씀을 어찌 다 하오리까. 듣사오니 천하에 절승한 산이 남악 형산이라 하오니 수고를 생각지 말고 산신께 발원하여 정성이나 드려보사이다.”



주부 이 말을 듣고 대왈,



“하늘이 점지하사 팔자에 없었으니, 빌어 자식을 낳을진대 세상에 무자(無子)한 사람이 있으리요.”



장부인이 여쭈오대,



“대체를 생각하면 그 말씀도 당연하되 만고 성현 공부자(孔夫子)도 이구산(尼丘山)에 빌어 났고 정(鄭)나라 정자산도 우성산에 빌었으니 우리도 빌어 보사이다.”



주부 이 말을 듣고 삼칠일 재계 정히 하고 소복을 정제하며 제물을 갖추고 축문을 별도로 지어 가지고 부인과 함께 남악산을 찾아가니, 산세 웅장하여 봉봉이 높은 곳에 청송(靑松)이 울울하여 태고시(太古時)를 띠어 있고, 강수는 잔잔하여 탄금성(彈琴聲)을 돋웠다. 칠천십이 봉은 구름 밖에 솟아 있고 층암 절벽상에 각색 백화 다 피었고, 소상강 아침 안개 동정호로 돌아 가고 창오산 저문 구름 호산대로 돌아들며 강수성을 바라보며, 수양가지 부여잡고 육칠 리를 들어가니 연화봉이 중계(中階)로다. 상대에 올라서서 사방을 살펴보니, 옛날 하우(夏禹)씨가 구년지수(九年之水) 다스리시고 층암절벽 파던 터가 어제 한 듯 완연하고 산천이 심히 엄숙한 곳에 천제당(天祭堂)을 높이 묻고 백마를 잡던 곳이 완연하였고, 추연(湫淵)을 돌아보니, 옛날 위 부인이 선동(仙童) 오륙 인을 거느리고 도학(導學)하던 일층단이 무너졌다.



일층단 별로 모아 노구밥을 정렬히 담아 놓고 부인은 단하에 궤좌(跪坐)하고 주부는 단상(壇上)에 궤좌하여 분향 후 축문을 내어 옥성으로 축수할 제 그 축문에 하였으되,



유세차(維歲次)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에 대명국 동성문 내에 거하는 유심은 형산 신령전에 비나이다. 오호라 대명 태조 창국공신지손(創國功臣之孫)이라 선대의 공덕으로 부귀를 겸전하고 일신이 무양하나 연광이 반이 넘도록 일점 혈육이 없었으니 사후 백골인들 뉘라서 엄토하며 선영행화를 뉘라서 봉사하리오. 인간에 죄인이요 지하에 악귀로다. 이러한 일을 생각하니 원한이 만심(慢心)이라 이러한 고로 더러운 정성을 신령전에 발원하오니 황천은 감동하와 자식 하나 점지하옵소서.



빌기를 다 함에 지성이면 감천이라 황천인들 무심할까. 단상의 오색 구름이 사면에 옹위하고 산중에 백발 신령이 일체(一切)히 하강하여 정결케 지은 제물 모두다 흠향한다. 길조(吉兆)가 여차(如此)하니 귀자(貴子)가 없을쏘냐.



빌기를 다한 후에 만심 고대하던 차에 일일은 한 꿈을 얻으니, 천상으로서 오운(五雲)이 영롱하고, 일원(一員) 선관(仙官)이 청룡(靑龍)을 타고 내려와 말하되,



“나는 청룡을 차지한 선관이더니 익성(翼星)이 무도(無道)한 고로 상제께 아뢰되 익성을 치죄하야 다른 방으로 귀양을 보냈더니 익성이 이걸로 함심(含心)하야 백옥루 잔치시에 익성과 대전한 후로 상제전에 득죄하여 인간에 내치심에 갈 바를 모르더니 남악산 신령들이 부인 댁으로 지시하기로 왔사오니 부인은 애휼(愛恤)하옵소서.”



하고 타고 온 청룡을 오운간(五雲間)에 방송하며 왈,



“일후 풍진(風塵)중에 너를 다시 찾으리라.”



하고 부인 품에 달려들거늘 노래 깨달으니 일장춘몽 황홀하다.



정신을 진정하야 주부를 청입(請入)하야 몽사를 설화(說話)한대 주부 즐거운 마음 비할 데 없어 부인을 위로하야 춘정(春情)을 부쳐두고 생남(生男)하기를 만심 고대하더니 과연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십 삭이 찬 연후에 옥동자를 탄생할 제, 방 안에 향취 있고 문 밖에 서기(瑞氣)가 뻗질러 생광(生光)은 만지(滿地)하고 서채(瑞彩)는 충천한 중에 일원(一員) 선녀 오운 중에 내려와 부인 앞에 궤좌하여 백옥상(白玉床)에 놓인 과실을 부인께 주며 하는 말이,



“소녀는 천상 선녀이옵더니 금일 상제 분부하시되 자미원(紫薇垣) 장성(將星)이 남경 유심의 집에 환생(還生)하였으니 네 바삐 내려가 산모를 구완하고 유아를 잘 거두라 하시기로 백옥병의 향탕수(香湯水)를 부어 동자를 씻기시면 백병(百病)이 소멸하고 유리대(琉璃岱)에 있는 과실 산모가 잡수시면 명(明)이 장생불사(長生不死)하오리다.”



부인이 그 말을 듣고 유리대에 있는 과실을 세 개를 모두 쥐니 선녀 여쭈오되,



“이 과실 세 개 중에 한 개는 부인이 잡수시고 또 하나는 공자를 먹일 것이요, 또 한 개는 일후에 주부가 잡수실 것이니 다 각기 임자를 옥황상제께옵서 점지하신 과실을 다 어찌 잡수시리까.”



향탕수에 부어 한 개를 잡순 후에 옥동자를 채금(彩衾)속에 뉘여 놓고 부인께 하직하고 오운 속에 싸이여 가니 반공에 어렸던 서기 떠나지 아니하더라.



부인이 선녀를 보낸 후에 일어 앉으니 정신이 상쾌하고 청수(淸秀)한 기운이 전일보다 배나 더하더라.



주부를 청입하야 아기를 보이며 선녀의 하던 말을 낱낱이 고하니 주부 공중을 향하야 옥황께 사례하고 아기를 살펴보니 웅장하고 기이하다. 천정(天庭)이 광활(廣闊)하고 지각(地角)이 방원(方圓)하야 초상 같은 두 눈썹은 강산 정기 쐬였고 명월 같은 앞가슴은 천지 조화 품었으며, 단산(丹山)의 봉(鳳)의 눈은 두 귀 밑을 돌아보고 칠성에 싸인 종학 융준용안(隆準龍顔) 번듯하다. 북두칠성 맑은 별은 두 팔뚝에 박혀 있고 뚜렷한 대장성이 앞가슴에 박혔으며, 삼태성 정신별이 배상(背上)에 떠 있는데, 주홍(朱紅)으로 새겼으되 ‘대명국 대사마 대원수’라 은은히 박혔으니 웅장하고 기이함은 만고에 제일이요 천추(千秋)에 하나로다.



주부 기운이 쇄락하야 부인을 돌아보아 왈,



“이 아해 상(相)을 보니 천인적강(天人謫降)이 적실하고 만고 영웅 분명하며 전일 황상께옵서 도읍을 옮기고저 하야 창해국사신 임경천더러 물으시니 임경천이 아뢰기를 북두정기(北斗精氣)는 남경에 하강하고 자미원 대장성이 황성에 떨어졌으니 미구(未久)에 신기한 영웅이 나리라 하더니 이 아해가 적실하니 어찌 아니 즐거우리까. 오래지 아니하야 대장 절월(節鉞)을 요하(腰下)에 횡대(橫帶)하고 상장군(上將軍) 인수(印綬)를 금낭(錦囊)에 넌짓 넣고 부귀영화는 선영에 빛내고 맹기영풍(猛氣英風)은 사해에 진동할 제 뉘 아니 칭찬하리요 산신(山神)의 깊은 은덕 사후(死後)에도 난망(難忘)이요 백골인들 잊을쏘냐.”



이름은 충렬이라 하고 자는 성학이라 하다.



세월이 여류(如流)하야 칠 세에 당함에 골격은 청수하고 총명에 발췌(拔萃)하야 필법(筆法)은 왕희지(王羲之)요, 문장은 이태백(李太白)이며 무예장략(武藝將略)은 손오(孫吳)에 지내더라. 천문(天文) 지리(地理)는 흉중(胸中)에 갈마두고 국가 흥망은 장중(掌中)에 매였으니 말 달리기와 용검지술(用劍之術)은 천신도 당치 못할네라.



오호라 시운이 불행하고 조물이 시기한지. 유 주부 세대 부귀 지극하더니 사람이 흥진비래(興盡悲來)가 미쳤으니 어찌 피할 가망이 있을쏘냐.



 유 주부는 조참적소(遭讒謫所)하고



장 부인은 피화봉수적(避禍逢水賊)하다



각설, 이때에 조정에 두 신하 있으되 하나는 도총대장(都總大將) 정한담이요, 또 하나는 병부상서(兵部尙書) 최일귀라. 본대 천상익성(天上翼星)으로 자미원 대장성과 백옥루 잔치에서 대전(對戰)한 죄로 상제께 득죄하야 인간에 적강하여 대명국 황제의 신하 되었는지라. 본시 천상지인으로 지략이 유여하고 술법이 신묘한 중에 금산사 옥관도사를 데려다가 별당에 거처하고 술법을 배웠으니 만부부당지용(萬夫不當之勇)이 있고 백만군중(百萬軍中) 대장지재(大將之才)라, 벼슬이 일품이요 포악이 무쌍이라. 만민의 생사는 장중(掌中)에 매여 있고, 일국의 권세는 손 끝에 달렸으니, 초(楚) 회왕(懷王)의 항적(項籍)이요, 당(唐) 명황(明皇)의 안녹산(安祿山)이라. 일생 마음이 천자를 도모(圖謀)코자 하되 다만 정언(正言) 주부(注簿)의 직간(直諫)을 꺼려 하고 또한 퇴재상 강희주의 상소를 꺼려 중지한 지 오래더니 영종황제 즉위 초에 열국제왕(列國帝王)들이 각각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바치되 오직 토번(吐藩)과 가달이 강포(强暴)만 믿고 천자를 능멸히 하야 조공을 바치지 아니하거늘 한담과 일귀 두 사람이 이때를 타서 천자께 여쭈오대,



“폐하 즉위하신 후에 덕피만민(德被萬民)하고 위진사해(威振四海)하며 일국제신이 다 조공을 바치되 오직 토번과 가달이 강포만 믿고 천명(天命)을 거스르니 신 등이 비록 재주 없사오나 남적(南賊)을 항복받아 충신으로 돌아오면 폐하의 위엄이 남방에 가득하고 소신의 공명은 후세에 전하리니 복원(伏願) 황상은 깊이 생각하옵소서.”



천자 매일 남적이 강성함을 근심하더니 이 말을 듣고 대희(大喜)왈,



“경의 마음대로 기병(起兵)하라.”



하시니라.



이때, 유 주부 조회(朝會)하고 나오다가 이 말을 듣고 탑전(榻前)에 들어가 복지(伏地) 주(奏)왈,



“듣사오니 폐하께옵서 남적을 치라 하시기로 기병하신단 말씀이 옳으니이까?”



천자 왈,



“한담의 말이 여차여차(如此如此)하기로 그런 일이 있노라.”



주부 여쭈오대,



“폐하 어찌 망령되게 허락하였습니까? 왕신은 미약하고 외적은 강성하니 이는 자는 범을 찌름 같고 드는 토끼를 놓침이라. 한낱 새알이 천근지중(千斤之重)을 견디리까? 가련한 백성 목숨 백리사장 고혼(孤魂)되면 근들 아니 적악(積惡)이오 복원 황상은 기병치 마옵소서.”



천자 그 말을 들으시고 호의만단(狐擬萬端)하던 차에 한담과 일귀 일시에 합주(合奏)하되,



“유심의 말을 듣사오니 살지무석(殺之無惜)이요 오국(誤國) 간신(奸臣) 동류(同類)로소이다. 대국을 저버리고 도적놈만 칭찬하야 개미 무리를 대국에 비하고 한낱 새알을 폐하에게 비하니 일대에 간신이요 만고에 역적이라. 신 등은 저어하건대 유심의 말이 가달을 못 치게 하니 가달과 동심하여 내응(內應)이 된 듯하니 유심을 선참(先斬)하고 가달을 치사이다.”



천자 허락하다.



한림학사 왕공열이 유림 죽인단 말을 듣고 복지(伏地) 주왈,



“주부 유심은 선황제 개국공신 유기의 손이라, 위인이 정직하고 일심이 충전(忠全)하오니 남적을 치지 말잔 말이 사리 당연하옵거늘 그 말을 죄라 하와 충신을 죽이시면 태조황제 사당 안에 유 상공 배향(配享)하였으니 춘추로 행사(行祀)할 때에 무슨 면목으로 뵈오며 유심을 죽이면 직간한 신하 없사올 것이니 황상(皇上)은 생각하와 죄를 용서하옵소서.”



천자 이 말을 듣고 한담을 돌아보니 한담이 여쭈오대,



“유심을 죄하실진대 만사무석(萬死無惜)이오나 공신의 후예오니 죄목대로 다 못하오나 정배(定配)나 하사이다.”



천자,



“옳다.”



하시고,



“황성 밖에 원찬(遠竄)하라.”



하시니 한담이 청령(廳令)하고 승상부 높이 앉아 유심을 잡아 내어 수죄(數罪)하는 말이,



“너의 죄를 논지(論之)컨대 선참후계(先斬後啓) 당연하나 국은(國恩)이 망극하사 네 목숨을 살려 주니 일후는 그런 말을 말라.”



하고 연북(燕北)으로 정배하야,



“어서 바삐 발행하라. 만일 잔말하다가는 능지처참(陵遲處斬)하리라.”



주부 이 말을 들음에 분심이 창천(漲天)하야 양구(良久)에 하는 말이,



“내 무슨 죄 있건데 연북으로 간단 말가. 왕망(王莽)이 섭정(攝政)함에 한실(漢室)이 미약하고 동탁(董卓)이 장난하니 충신이 다 죽것다. 나 죽은 후에 내 눈을 빼어 동문에 높이 달아 가달국 적장 손에 네 머리 떨어지는 줄 완연히 보리라. 지하에 돌아가되 오자서(伍子胥)의 충혼(忠魂)이 부끄럽게 말라.”



한담이 이 말을 듣고 분심이 창천하여 왈,



“어명이 이러하니 무슨 발명(發明)한다?”



하고 궐문에 들어가며 금부도사 재촉하여 유심을 채질하야 연북으로 가라 하는 소리 성화같이 재촉하니 유 주부 하릴없어 적소(謫所)로 가려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일가(一家)가 망극하야 곡성이 진동하더라.



주부 충렬의 손을 잡고 부인더러 하는 말이,



“우리 연광이 반이 넘도록 일개 자녀 없었더니 황천이 감동하사 이 아들을 점지하야 봉황의 짝을 얻어 영화를 보렸더니 가운이 소체하고 조물이 시기하여 간신의 참소를 보아 만리 적소로 떠나가니 생사를 아지 못할지라. 어느 날 다시 볼까, 날 같은 인생은 조금도 생각 말고 이 자식 길러내어 후사를 받들게 하면 황천에 돌아가도 눈을 감고 갈 것이요 부인의 깊은 은덕 후세에 갚으리다.”



하고 충렬을 붙들고 슬피 울며 하는 말이,



“네 아비 무슨 죄로 만리 연경에 가단 말인가. 너를 두고 가는 설움 단산에 나는 봉황 알을 두고 가는 듯,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버리고 가는 듯, 통박(痛迫)하고 섧은 원정(怨情) 일구(一口)로 난설(難說)이라. 생각하니 기가 막혀 말할 길이 전혀 없고 일시나 잊자 하니 가슴에 맺힌 한이 죽은들 잊을쏘냐. 너의 아비 생각 말고 너의 모친을 모셔 무사히 지내며, 봄풀이 푸르거든 부자 상면한 줄 알고 있으라.”



하며 방성통곡하며 죽도(竹刀)를 끌러 충렬을 채우면서,



“구천(九泉)에 상봉한들 부자 신표(信標) 없을쏘냐. 이 칼을 잃지 말고 부디 간수하여 두라.”



처자를 이별하고 행장을 바삐 차려 문 밖에 나오니 정신이 아득하여 한 번 걷고 두 번 걸어 열 걸음 백 걸음에 구곡간장 다 녹으며, 일편단심 다 녹겠다. 성중에 보는 사람 뉘 아니 낙루하며 강산 초목이 다 슬퍼한다.



동성문 나서면서 연경(燕京)을 바라보며 영거사(領車使)를 따라 갈 제, 삼 일을 행한 후에 청소령을 지나 옥해관을 당도하니 이때는 추팔월 망간(望間)이라. 한풍(寒風)은 소슬(簫瑟)하고 낙목(落木)은 소소(蕭蕭)한데 정전(庭前)에 국화꽃은 추구수심(秋九愁心) 돋우는데 객창(客窓) 한등(寒燈) 깊은 밤에 촛불로 벗을 삼아 객침 베고 누웠으니 타향의 가을 소리 손의 수심 다 녹인다. 공산(空山)에 우는 두견성은 귀촉도(歸蜀道) 불여귀(不如歸)를 일삼고 청천에 뜬 기러기는 한창(寒窓) 밖에 슬피 울 제, 행역(行役)이 곤한들 잠 잘 가망 전혀 없어 그 밤을 지낸 후에, 이튿날 길을 떠나 소상강을 바삐 건너 멱라수(汨羅水)를 다다르니 이 땅은 초희 황제 만고충신 굴삼려(屈三閭) 간신의 패를 보고 택반(澤畔)에 장사(葬死)하니 후인이 비감(悲感)하여 회사정을 높이 짓고 조문(弔文) 지었으되,



일월같이 빛난 충혼 만고에 빛나 있고 금석 같이 굳은 절개 천추에 밝았으니 이 땅에 지나는 사람 뉘 아니 감심하리.



이렇듯이 슬픈 일을 현판(懸板)에 붙였거늘 유 주부 글을 보니 충심이 직발(直發)하야 행장에 필묵(筆墨)을 내어 들고 회사정 동벽상(東壁上)에 대자로 쓰기를,



대명국 유심은 간신 정한담과 최일귀 참소를 만나 연경으로 적거(謫去)하더니 일월같이 밝은 마음 변백(辨白)할 길 전혀 없고 빙설(氷雪)같이 맑은 절개 뵈일 곳이 바이 없어 멱라수에 지내다가 굴삼려의 충혼 만나 물에 빠져 죽으니라.



쓰기를 다한 후에 물가에 내려가서 하늘께 축수하고 일성(一聲) 통곡에 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 만경창파 깊은 물에 훨썩 뛰어드니, 이때에 영거하던 사신이 이를 보고 전지도지(顚之倒之) 달려들어 손을 잡고 말려 왈,



“충성은 천신도 알 것이라. 그대의 죄안(罪案)은 천자에게 매였으니, 명(命)을 받아 적소로 가옵다가 이곳에 죽사오면 나도 또한 죽을 것이요 그대 적소를 버리고 죽사오면 무죄함은 천하의 아는 바라. 천행(天幸)으로 천자 감심하사 쉬이 방송할 줄 모르고 죽어서 충혼이 될지라도 삶만 같을쏘냐.”



한사하고 만류하여 백사장에 들어내니 유 주부 하릴없어 회사정을 지나 황주를 다다르니 서호(西湖)가 여기로다. 송나라 망국시(亡國時)에 일품 대신들이 국사를 돌보지 아니하고 풍악(風樂)만 일삼아 일일장취(日日長醉)하는 고로 서호의 고운 태도 서시(西施)에게 비하였으니 어찌 아니 망극하랴. 그 땅을 지나 이삼 삭(二三朔)만에 연경에 당한지라. 유 주부 자사에게 예사(禮射)한 대 자사 본 후에 주부를 인도하여 객실로 전송하니 주부 물러나와 적소로 들어가니, 이때는 동절(冬節)이라 연경은 본디 극한지지(極寒之地)라 삼장백설(三丈白雪) 쌓여 있고, 퇴락한 객실 방에 냉풍(冷風)은 소슬하고 백설을 분분(紛紛)하야 인적(人跡)이 끊어지니 불쌍하고 고상(苦狀)함은 측량치 못할네라.



각설, 이때에 정한담 최일귀가 유 주부룰 참소(讒訴)하야 적소로 보낸 후에 마음이 교만하야 별당으로 들어가 옥관도사를 보고 천자를 도모할 묘책을 물은대, 도사 문 밖에 나와 천기(天氣)를 자세히 보고 들어와 하는 말이,



“요사이 밤마다 살피온즉 두려운 일이 황성에 있나이다.”



한대 한담이 문왈,



“두려운 일이라 하오니 무슨 일이 있나이까.”







<중략>











이때에 총융대장(摠戎大將) 군사를 재촉하여 죄인을 잡아다가 깃대 밑에 엎지르고 자객을 호령하여,



“일시에 처참하라!”



하니 자객들이 청명하고 홍포(紅袍) 남대(藍帶) 허리에 띠고 비수검(匕首劍)을 번뜩이며 좌우에 갈라서서,



“행형(行刑)한다!”



고함 소리 청천에 진동하니 천지 어찌 무심할까.



이때 유 원수 호국지경에 득달하여 상남뜰에 바삐 가니 호국 선우대가 구름 속에 보이거늘 창강(蒼江) 백설(白雪) 갈대 밑에 천사마를 물 먹이고 강수(江水) 쥐어 낯 씻더니 사고무인(四顧無人) 적막한데 난데없는 일엽표주 강상에 떠오더니 일원선녀 선창 밖에 나와서 원수에게 예하고 금낭을 끌러 과실을 두 개 주며 왈,



“행역이 곤고(困苦)하오니 이 과실 한 개를 자시고 한 개는 두었다가 일후에 쓰려니와 지금 황후 태후 태자 호국에 잡혀 가서 동문대 도상에 온갖 형벌 갖추오고 자객을 재촉하여 검술을 희롱하니 황후의 귀한 명이 경각에 있는지라 어찌 급함을 모르고 바삐 가지 아니하나이까?”



두어 말 이르더니 범범중유 가는지라. 원수 대경하여 그 과실 한 개 먹고 천기를 살펴보니 태자의 장성이 떨어질 듯하고 자미성이 칼 끝에 달렸거늘 대경하여 황룡수를 거스르고 봉의 눈을 부릅뜨고 일광주 용인갑을 단단히 졸라매고 장성검을 펴 들고 천사마를 채질하여 나는 듯이 들어가니 동문 밖 십 리 사장에 군사 가득하였거늘 말다리를 급히 열어 조총을 잠깐 내어 대한고를 한 번 놓으니 우레 같은 함성 소리 청천백일 진동한 듯, 호왕을 불러 외는 말이,



“여봐라 호왕놈아, 황후 태후 해치 말라!”



이때 자객이 비수를 번뜩이며 태자 목을 치려할 제 난데없는 벽력 소리 청천에 떨어지며 일원대장이 제비같이 들어오니 일진이 황겁하여 주저주저하던 차에 천사마 눈 한 번 깜짝이며 동문대도상에 장성검이 불빛 되어 십 리 사장 너른 뜰에 오마대로 싸인 군사 씨 없이 다 베이고 성중에 달려들어 궐문을 깨치고 문 안에 만조백관 대칼에 무찌르고 용상을 쳐부수며 호왕의 머리 풀어 손에 감아 쥐고 동문대로에 급히 오니 이때 황후 태후 태자 자객의 검광 끝에 혼백이 흩어져서 기절하여 엎더졌는지라 원수 급히 달려들어 태자를 붙들어 앉히고 황후 태후를 흔들어 앉히니 한식경이 지난 후에 겨우 인사를 차리거늘 원수 복지하여 여쭈오대,



“정신을 차리옵소서. 대명국 도원수 유충렬이 호왕을 사로잡고 자객과 군사를 한칼에 다 죽이고 이곳에 왔나이다.”



태자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황후의 목을 안고,



“남경 유충렬이 왔네. 정신을 진정하여 충렬을 다시보소.”



이렇듯이 부르짖으니 황후 태후 기절하였다가 유충렬이 왔단 말을 듣고 가슴을 두드리며 벌떡 일어앉아 사면을 바라보니 군사는 하나도 없고 일원대장이 앞에 복지하였거늘 다시 여쭈오대,



“소장은 남경 유충렬이옵더니 호왕을 사로잡아 이곳에 왔나이다.”



황후 이 말을 듣고 칵 달려들어 손을 잡고 하는 말이,



“그대 일정 유원수냐. 종천강(從天降)하며 종지출(從地出)한가? 북방 호지 수만 리를 어찌 알고 왔는가? 그대 은덕 갚을진대 백골난망이라 어찌 다 갚으리오.”



태자도 만단치사(萬端致辭)하고 천자 존위(尊位)를 바삐 물은대 원수 여쭈오되,



“소장이 도적에게 속아 금산성에 들어가온즉 적장 천극한이 십만 명을 거느려 왔거늘 한칼에 다 베이고 급히 돌아오다가 천기를 보온즉 황상이 변수에 죽게 되었거늘 급히 달려가니 황상은 백사장에 엎더지고 정한담은 칼을 들어 황상을 치려 하거늘 소장이 달려들어 정한담을 사로잡아 전옥에 가두고 황상은 편히 모셔 환궁하신 후에 소장은 대비(大妃) 대군(大君)을 모신 후에 아비를 찾으려 하고 왔나이다.”



삼 인이 백배 치사 왈,



“북망산에 있는 부모 회생하여 다시 본들 이에 더 반가우며 강동에 떠난 형제 야중에 만나본들 이도곤 더할쏘냐. 이제 돌아가 우리 천자와 원수로 더불어 결의형제하여 만세 유전토록 떠나 살지 아니하며 천하를 반분하여 동락태평(同樂太平)할까 하노라.”



태자 호왕 잡아옴을 보고 원수의 칼을 뺏어 갖고 호왕을 엎지르고 왈,



“네 이놈아, 왕후를 질욕(叱辱)하며 나를 항복받아 네 신하를 삼고자 하더니 청천 일월이 밝았거든 언감생심(焉敢生心)인들 하늘을 욕할쏘냐.”



분심을 참지 못하여 장성검을 높이 들어 호왕의 머리를 베어 칼 끝에 꿰어 들고 호왕의 간을 내어 낱낱이 씹은 후에 성중에 들어가 약간 남은 군사 다 죽이고 그 중에 군사 오 명을 잡어내어 준마(駿馬) 세 필을 구하여 교자를 갖추어 황후 태자를 모시고 호국 옥새와 지도서(地圖書)를 가지고 행군할새, 도로장을 불러 왈 포판을 묻고 길을 재촉하며 부친을 생각하여 눈물이 비오듯하니 슬픈 마음 억제치 못하여 방성통곡 우는 말이,



“천자는 나 같은 신하를 두었다가 만리 호국에 죽게 된 부모를 다시 만나 보거니와 나는 포판에 있는 부친 죽었는가 살았는가. 회사정에 모친 잃고 만리 북방에 부친 잃고 영릉 천수에 아내 잃었으니 살아서 무엇하며 죽어도 아깝잖고 도리어 악귀가 될지라 포판을 어서 가면 우리 부친의 생사를 알아볼까.”



하며 슬피 우니, 태후와 태자 원수의 손을 잡고 만단 위로하여 길을 재촉터니 여러 날 만에 포판을 득달한대, 이 땅은 북해상 무인지지(無人之地)라 사무인적(四無人跡)하고 다만 들리느니 해상 풍랑 소리 사람의 간장을 격동하고 소슬한풍(蕭瑟寒風) 원숭이는 슬피 울어 객의 수심을 돕는구나. 귀신이 난잡한데 유 주부의 혈혈단신 살 가망이 전혀 없다.



이때 유 주부 도적에 가 잡혀 갔다가 항복지 아니한다 하고 피골상연한 몸에 형장을 많이 맞고 북해상 무인지에 음식이 없었으니 기갈(飢渴)을 어이하리 미구(未久)에 운명(殞命)하게 되었더니, 이때 원수 순식간에 달려들어 보니 토굴을 깊이 파고 험한 수목으로 사면을 둘러 싸고 짚자리 한 닢 위에 문 밖에 수직한 군사 한 명만 두어 삼순구식(三旬九食)으로 구먹밥을 주는지라.



이 거동을 보고 엎더지며, 투구 벗어 땅에 놓고 사면 수목을 헤치고 토굴문 밖에 복지하여 여쭈오되,



“대명국 남경 동성문 내 사는 충렬은 도적을 잡아 평난하고 황후 태후 태자를 모셔 이리 왔나이다.”



이때 유 주부 기운이 쇠진하여 인사를 버리고 잠을 깊이 들었더니 몽중에 얼풋이 들으니 충렬이란 말을 들음에 천리 밖에서 나는 듯하여 꿈을 깨어 앉으며 왈,



“네가 귀신이냐 사람이냐?”



“충렬이 살아왔나이다.”



주부 귀신인가 의심하여 충렬이 찾아오기는 천만 의사 밖이라 진언을 외우며 왈,



“내 아들 충렬은 회수에 죽었으니 네가 일정 혼신이냐. 혼백이라도 반갑고 반갑다.”



충렬이 울며 왈,



“소자 회수에 죽게 되었더니 천행으로 살아나서 도적을 함몰하고 천자를 모셔 환궁하옵고 지금 호국에 가 황후 태후 태자를 모셔 문 밖에 왔나이다.”



유 주부 이 말을 듣고,



“이게 웬 말이냐.”



토굴을 두드리며,



“네가 일정 충렬이냐. 충렬이 적실커든 십 년 전에 연경으로 귀양 올 적에 주던 죽장도(竹粧刀) 어디 보자.”



원수 옷을 급히 벗고 한삼(汗衫)에 차인 죽도를 끌러내어,



“두 손에 받들어 올리나이다.”



주부 이 말을 듣고 토굴문에 엎드려서 손을 내어 받아 보니 소상반죽 다섯 마디 황강죽루를 화침(火針)으로 새겼으니 구천에 돌아간들 부자 신표(信標) 모를쏘냐. 벌떡 일어 앉어 왈,



“이게 웬말이냐, 충렬이 왔구나! 죽도는 보았으나 내 아들 충렬은 가슴에 대장성이 박히고 등에는 삼태성이 있느니라.”



원수 옷을 벗어 땅에 놓고 주부 곁에 앉으니, 주부 가슴과 등을 살펴보니 샛별 같은 삼태성과 대장성이 뚜렷이 박혔는데 금자로 ‘대명국 도원수’라 번듯하게 새겼거늘 왈칵 뛰어 달려들어 충렬의 목을 안고 왈,



“어디 갔다 이제 오냐. 하늘로 떨어졌느냐, 땅으로 솟았느냐. 우리 천자 살아 계시며, 너의 모친 어떠하며 만고역적 정한담이 우리집에 불을 놓아 너의 모자 죽이려 한다더니 어찌 살아나서 저다지 장성하였느냐. 네가 일정 충렬이냐. 네가 일정 성학이냐. 죽도 보고 표적 보니 충렬일시 분명하되 정한담의 화환(禍患) 만나 회수중에 죽었거든 만경창해 너른 물에 칠세동(七歲童)이 어찌 살아 부자상봉하단 말인가.”



이렇듯이 상곡(傷哭)하다가 기절하니 원수 대경하여 행장을 급히 끌러 선녀 주던 실과를 내어 주부를 먹인 후에, 수족을 만져 정신을 회생케 하니 식경이 지내어 일어 앉으며 정신을 수습하니 난데없는 맑은 기운이 청천일월 같은지라. 충렬의 손을 잡고 왈,



“네 무슨 약을 얻어 이렇듯 나를 구하느냐?”



이때, 황후 태후 주부 회생함을 보고 급히 들어가 주부의 손을 잡고 왈,



“어찌 저리 귀한 아들을 두어 만리타국에 그대와 우리를 살려내어 이곳에 서로 만나 보게 하는고.”



주부 복지 주왈(奏曰),



“이게 다 황상의 덕택이로소이다.”



이때, 원수 황후 태후 태자를 모시고 호국을 떠나 양자강을 건너갈제, 남경이 장차 사만 오천육백 리라 황주에 달려들어 요기(療飢)하고 나올 제, 멱라수 회사정에 부친 글을 떼버리고 황성에 들어올 제, 이때 천자 원수를 만리타국에 보내고 주야 한탄하며 천행으로 황후 태후 태자를 찾아올까 하여 축수하더니 뜻밖에 유 원수 장계를 올렸거늘 급히 개탁하여 보니,



도원수 유충렬은 호국에 들어가 호적을 함몰하고 황후 태후 태자를 모시고 오는 길에 포판에 가 주부를 살려내어 함께 본국으로 들어오나이다.



하였거늘 천자 대희하사 십 리 밖에 나와 영접할 제 황후 태후 달려들어 일변 반기며 일변 슬피 우니 그 정상은 차마 보지 못할네라.



태자 복지하여 여쭈오되 호국에 들어가 호왕에게 견패(見敗)하고 동문대도상에 거의 죽게 되었더니 천행으로 원수를 만나 살아난 말을 아뢰며, 포판에 들어가 주부 살려온 말씀을 낱낱이 주달하니, 천자 이 말을 듣고 충렬의 등을 만지며 왈,



“옛날 삼국시절에 유․관․장(劉關張) 삼 인이 도원결의(桃園結義) 하였더니 과인(寡人)도 경으로 더불어 결의형제하리라.”



하고 백번 치사하시니, 이때 주부 복지 주왈,



“소신은 연경에 귀양갔던 유심이옵더니 자식의 힘을 입어 잔명을 살아나서 폐하를 다시 뵈오니 만행이오나 폐하 이렇듯 국사(國事)에 곤고(困苦)하시되 소신의 충성이 부족하여 호국에 갇히었삽기로 고도치 못하오니 죄사무석이로소이다.”



천자 유 주부란 말을 듣고 버선발로 뛰어내려 주부의 손을 잡고 왈,



“이게 웬 말인가! 회사정에 죽은 줄만 알았더니 어찌하여 살아온가? 과인이 불명하여 역적놈의 말을 듣고 무죄한 우리 주부를 만리 연경에 보내었으니 뉘를 원망할까 모두 다 과인이 불명한 탓이로세. 그대의 얼굴을 보니 죄 중한 이내 몸이 무슨 면목으로 사죄할까. 그대에게 한 공덕을 갚을진대 살을 베어 봉양하고 천하를 반분한들 어찌 다 갚을까.”



이렇듯이 치사하고 도성에 들어오니 이때 장안 만민(萬民)이며, 중군 조정만이며 군사 일시에 들어와 원수전에 낱낱이 배사하고 남녀노소 없이 원수의 말을 잡고 뉘 아니 송덕하며 뉘 아니 축수할쏜가.



또 한 백발노인이 죽장을 잡고 떨어진 감투를 쓰고 어린아이 앞세우고 동편 골목에 나오면서 술 한잔 받아 들고 안주는 낙엽에 싸서 손자에게 들리고 기염기염 기어나와 원수전에 백배 치사하며 만만세를 불러 왈,



“소인이 동성문 내 사옵더니 삼대 독신으로 소인에게 미쳐 삼자일녀(三子一女)를 낳아 놓고 귀히 길러 제 몸이 장성터니 만고역적 정한담이 도성을 쳐 파하고 용상에 높이 앉아 자칭(自稱) 천자하고 생민(生民)을 도탄할 제, 소인의 자식 둘을 군사에 충수(充數)하여 전장(戰場)에 싸우다가 자식 하나를 죽였더니 옥황이 남경을 도우사 장군님을 남경에 점지하여 도적을 치려 하고 진중에 달려들어 적장 정문걸을 반 합에 베어 들고 천자를 구완하시거늘 소인의 끝에 자식을 성중에 두었다가는 정한담에게 죽일 듯하여 중군 조정만에게 야간 도망하여 장군님 진중에 보내고 북두칠성전에 일 년 삼백육십 일에 밤마다 축수하며,



‘우리나라 장수님이 승전(勝戰)하게 하옵소서.’



이렇듯이 축수하옵더니 장군님이 힘을 입어 명진 군사는 하나도 상치 않고 왔기로 소인의 끝에 자식이 살아나서 이 손자를 두었으니 이놈은 장군님 자식과 다름이 없는지라. 이제는 소인이 죽어도 백골(白骨) 엄토(掩土)할 자식이 있고 선영향화(先塋香火) 받들 손자 있사오니 이는 모두 다 장군님의 덕이옴에 소인이 죽을 날이 머지 아니하온지라. 다만 술 한잔을 장군님전에 올리나니 만세무량(萬歲無量)하옵소서. 이제 죽어도 여한(餘恨)이 없을까 하여 손자를 이끌고 왔나이다.”



이때 원수며 주부와 황후 태후 태자며 제장이 이 말을 듣고 일심이 비감하여 낙루(落淚)하며 왈,



“이는 모두 다 노인의 축수한 공이요, 천자의 은덕이라. 나 같은 사람이야 무슨 공이라 하리요. 돌아가 편히 살라.”



노인이 드리는 술을 받아 천자에게 드리고 행군을 재촉하니 천자 노인의 말을 듣고 조정만을 바삐 불러,



“그 노인의 아들 이름을 알아 입시하라.”



하시니 이때 한 군사 떨어진 전립(戰笠) 쓰고 환도(環刀) 하나 손에 들고 원수 앞에 복지하였거늘 성명을 물은 후에 칭찬하고 천국문 호위장을 삼아 백종록(百鍾祿)을 부쳐 늙은 아비를 섬기라 하고 말을 재촉하여 도성에 들어 궐 내에 들어가니 약간 있는 충신들이 고두백배(叩頭百拜) 치사하고 물러나니 삼군이 원수를 송덕하더라.



이때 천자와 원수며 황후 태후 일석(一席)에 앉아 달야(達夜)토록 전후 고생하던 말을 설화하고, 이튿날 전옥관을 불러 한담을 잡아다가 구정뜰에 엎지르고 유 주부 천자 곁에 앉아 나졸을 호령하여 온갖 형벌 갖추고 수죄(數罪) 왈,



“네 이놈 정한담아, 전상(殿上)을 치어다보라. 나를 아느냐 모르느냐. 네 자칭 천자라 하더니 만승천자(萬乘天子)도 두 팔이 없느냐. 조그마한 유심의 아래 복지하기는 무슨 일인고. 네 죄를 아느냐?”



한담이 복지 주왈,



“소신의 털을 빼어 죄를 논지하여도 털이 모자라오니 죽여 주옵소서.”



주부 대로(大怒) 왈,



“죄목이 열 가지니 자세히 들으라. 네놈이 천상에 익성으로 명국에 적강(謫降)하여 용맹이 절인(絶人)함에 도사를 데려다가 놓고 항상 천자를 도모코저 하니 만고에 큰 죄 하나이요, 조정에 직신(直臣)을 꺼려 무죄한 신하를 무함하여 나를 연경에 귀양보내니 죄 둘이요, 도사놈의 말을 듣고 신기한 영웅이 황성에 있다 함에 내 자식을 죽이려고 내 집에 불을 놓았다가, 살아 회수에 당함에 군사를 보내어 나의 자식을 결박하여 물 속에 던져 죽이려 한 것이 죄 셋이요, 퇴재상 강희주를 역적으로 몰아 옥문관에 보내었으니 죄 넷이요, 강 승상의 가솔을 잡아다가 중로에 죽인 것이 죄 다섯이요, 황후 태후 태자를 사로잡아 진중에 가두어 주려 죽게 함이 죄 여섯이요, 충신을 다 죽이고 천자를 속여 도적을 막으려 하다가 도적에게 항복함이 죄 일곱이요, 자칭 천자라 하여 생민을 도탄하고 충신을 잡아 항복받고저 함이 죄 여덟이요, 호국에 청병하여 황후 태후 태자를 호왕에게 보내고 장안 미색(美色) 보화를 모두 다 탈취하여 남적에게 보낸 것이 죄 아홉이요, 천자를 번수 가에 죽이려 함이 죄 열 가지라. 세상에 인신(人臣)이 되어 만고에 없는 열 죄목을 가졌으니 이러하고 살기를 바랄쏘냐. 우리 황상께옵서 이렇듯이 상한 일과 대비 대군께옵서 여러 번 죽을 뻔한 일과 만성 인민이며 육국 군사 죽은 일과 강 승상 유 주부 타국에 죽게 된 일과 천하 진동하여 종묘사직이 위태하고 백성들이 황겁하여 산지사방(散之四方)에 도망하니 이게 도시 네 놈의 소위(所爲) 아니냐?”



한담이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부답(黙黙不答)이라. 나졸을 재촉하여,



“한담의 목을 장안시에 베이라!”



하니 나졸이 달려들어 한담의 목을 매어 수레 위에 높이 싣고 장안 대도상(大道上)에 재촉하여 나오며 외여 왈,



“이봐 백성들아, 만고역적 정한담을 오늘날로 베이려 가니 백성들도 구경하라.”



하며 소리하고 나올 적에 성중 성외 백성들이 한담 죽이러 간단 말을 듣고 남녀노소 상하 없이 그놈의 간을 내어 먹고저 하여 동편 사람은 서편을 부르고 남촌 사람은 북촌 사람을 불러 서로 찾아 골목 골목이 빈틈없이 나오며,



이봐 벗님네야, 가세 가세 어서 가세. 만고역적 정한담을 우리 원수 장군님이 사로잡아 두 팔 끊고 전후 죄목 물은 후에 백성들을 뵈이려고 장안시에 베인다니 바삐 바삐 어서 가서 그놈의 살을 베어 부모 잃은 사람은 부모 원수 갚아 주고 자식 잃은 사람은 자식 원수 갚아 주세.



백발노구 손자 업고 홍안소부 자식 품고 전후 좌우 나열하여 어떤 사람은 달려들어 한담을 호령하고 어떠한 여인들은 한담의 상투 잡고 신짝 벗어 양 귀 밑을 찰딱찰딱 치며,



네 이놈 정한담아, 너 아니면 내 가장(家長)이 죽었으며, 내 자식이 죽을쏘냐. 덕택이 하해 같은 우리 원수 네놈 목을 진중에 베었더면 네놈 고기를 맛보지 못할 것을, 백성들을 뵈이려고 산 채로 잡아 내어 오늘 날 베인 고로 네 고기를 나누어다가 우리 가장 혼백이나 여한없이 갚으리라.



수레소를 재촉하여 사지를 나눠 놓으니 장안 만민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점점이 오려 놓고 간도 내어 씹어 보고 살도 베어 먹어 보며 유 원수의 높은 덕을 뉘 아니 칭송하리.



각도 각관에 회시(回示)하고 최일귀 정한담의 삼족(三族)을 다 멸하고, 천자 삼층단에 올라 천제(天祭)하고 주부 유심의 직첩(職牒)을 돋우어 금자광록태부(金紫光祿太夫) 대승상(大丞相) 연국공(燕國公)에 연왕(燕王)을 봉(封)하시고 옥새, 용포(龍袍)에 통천관(通天冠)을 상급하시고 만종록을 주시고, 원수로 대사마(大司馬) 대장군 겸 승상 위국공을 봉하여 만종록을 점지하시고 도원결의하여 충무후를 봉하시고, 그 남은 장수와 군사를 차례로 벼슬을 주어 상사(賞賜)하시니 모두 즐기는 소리 태평천지(太平天地) 요지일월(堯之日月) 순지건곤(舜之乾坤)에 강구동요(康衢童謠) 즐기는 듯, 천자를 축수하며 원수를 송덕하는 소리 천지 진동하더라.



연왕 부자 천자 은덕을 축사(祝謝)하니 천자 위로 왈,



“그대의 숙소를 우선 정하여 약간 공(功)을 쓰거니와 그 은혜를 갚을진대 살을 깎아 봉양하고 천만 번이라도 승상의 공은 갚을 길이 없다.”



원수 복지 주왈,



“천은(天恩)이 망극하와 부자(父子)는 만났거니와 모친은 어디 가고 이런 줄을 모르는가. 옥문관에 적거한 강 승상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련하다. 강 낭자는 청수풍에 죽었으니 어디 가서 만나 볼까. 낭자의 부탁한 대로 옥문관을 찾아가서 강 승상의 뼈나 거둬다가 묻어 주고 회수에 모친을 제사하고 청수에 지내오며 강 낭자의 혼백이나 위로하고 다른 데 취처(娶妻)하여 부인에게 영화를 뵈일까 하나이다.”



한대 상(上)이 이 말씀을 들으시고 비감하여 태후 전에 그 말씀을 고하니 태후는 강 승상의 고모라 이 말을 듣고 슬피 낙루하시며 원수를 입시하여 손을 잡고 울며 왈,



“강 승상은 나의 조카라 지금까지 살았는지, 그대의 힘을 입어 내 몸은 살았으나 친정 일가는 그 하나뿐이라. 살았거든 데려오고 죽었거든 백골이나 줏어 오소.”



원수 주왈,



“그 사위 되었나이다.”



태후 듣고 대희하여,



“이게 웬 말인가. 만고영웅 유충렬이 충신인 줄만 알았더니 나의 손녀서(孫女婿)가 되었구나. 어서 가서 생사를 알고 그대의 모친과 나의 손녀를 위로하여 제사하고 급히 돌아오게 하소.”



원수 천자와 부왕께 하직하고 대군을 거느려 바로 서번국을 행하여 양관을 넘어 서평관을 득달하여 격서를 바삐 써서 서번국에 보내고 행군을 재촉하여 들어가니, 서천 삼십육 도 군장들이 충렬의 재주를 알고 황겁하여 금은보화를 많이 싣고 옥새와 지도서(地圖書)를 손에 들고 항서(降書)를 써 원수전에 바치고 인끈을 목에 걸고 낱낱이 항복하거늘, 원수 장대에 높이 앉아 군왕을 잡아내어 일일이 수죄하고 항서 삼십육 장을 연폭(連幅)하여 장계를 급히 써서 남경으로 보낸후에, 번왕을 불러 옥문관 소식을 묻고 즉시 행군하여 옥문관을 찾아갈 제, 슬픈 마음 진정하고 성중에 달려들어 수문장(守門將)을 불러 천자의 공문을 뵈이며,



“적거한 강 승상이 어디 있느냐?”



수문장이 여쭈오되,



“강 승상이 성중에 있삽더니 십여 일 전에 남적이 달려들어 강 승상을 잡아내어 호국으로 갔나이다.”



원수 이 말을 듣고 분심이 새로 나서 노기(怒氣) 등등하여 군사를 옥문관에 두고 수문장에게 신칙(申飭)하여,



“군사를 착실히 호군(犒軍)하여 나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고 필마단검으로 남천을 바라보고 구름을 헤쳐 나는 듯이 달려 들어갈 제, 호국지경(胡國地境)에 다다르니 분기 더욱 탱천(撐天)하여 격서를 보내니라.



이때 가달왕이 남경에서 데려간 일등미색 좌우에 앉히고 갖은 풍악으로 날마다 즐기더니 데려간 도사 마음이 산란하여 천기를 살펴보니 남경 도원수 지경에 들어오거늘 대경하여 왕께 고(告)하대,



“남경 도원수 지경에 들면 어찌 하리요.”



문무제신(文武諸臣)을 모아 방적(防敵)을 의논할새, 장하에 삼원대장이 백금투구에 흑운포를 입고 삼천 근 철퇴를 들고 구척장검을 좌우에 들고 계하에 복지 주왈,



“소장 삼형제는 번약 석장동 사는 마철 등이옵더니 남경 유충렬이 들어온단 말을 듣고 불원천리(不遠千里) 왔사오니 소장을 선봉을 주시면 충렬의 목을 베어 오리이다.”



모두 보니 신장이 십 척이요 기골(氣骨)이 엄장한지라. 가달왕이 대희하여 마철로 선봉을 삼고, 마응으로 중군을 삼고 마학으로 후군을 삼아 정병 팔십만을 조발하여 석대산하에 유진(留陣)하고 도사와 문무백관(文武百官)을 거느리고 산에 올라 구경하더라.



이때 강 승상이 되놈에게 잡혀 가서 험악이 극심하되 종시 항복지 아니하고 질욕(叱辱)을 무수히 하니 호왕이 대로하여 미구에 죽이려 하더니 뜻밖에 유 원수 들어옴에 죽이지 못하고 전옥(典獄)에 가두고 주려 죽게 하는지라.



호왕이 남경에서 데려간 계집 하나가 되놈에게 종시 훼절(毁節)치 아니하고 일생 강 승상을 붙들고 떠나지 아니하고 불피풍우(不避風雨)하고 밤바다 축원하여 왈,



“우리나라 유 원수 어서 와서 남적을 함몰하고 본국 사람을 살려내어 부모 얼굴을 다시 보게 하옵소서.”



이렇듯이 축수하더니 뜻밖에 강 승상을 옥중에 가두니 한가지로 따라가서 주야 한탄하는지라.



이때 원수 필마단창으로 호국에 달려드니 석대산하에 천병만마(千兵萬馬) 유진하였으며 검술을 희롱하고 의기양양하거늘 원수 순식간에 달려들어 적진을 바라보며 벽력같은 소리를 천둥같이 지르며,



“네 이놈 가달왕아, 강 승상을 헤치지 말라!”



하며 적진 선봉을 헤쳐 가니 대장 마철이 응성출마하여 원수를 맞아 싸워 반 합이 못하여 철퇴 맞어 부서지며 창검 맞아 떨어지는지라. 마응 마학이 제 형이 당치 못할 줄 알고 일시에 달려들어 좌우로 쫓아오며 달려드나 일광주 용인갑은 천신의 수적(手跡)이요, 용궁의 조화라, 살 한 개 범하며 철환(鐵丸) 하나 맞을쏜가. 장성검 번개 되어 동천에 번듯하며 마철의 머리를 베이고 남천에 번듯하며 마응을 베이고 중앙에 번듯 마학의 머리를 베어 들고 적진 백만 대병을 순식간에 함몰하고 천사마를 재촉하여 석대산하에 다다르니 호왕과 도사 대경하여 도망하되, 천사마 닫는 앞에 나는 제비도 가지 못하거든 하물며 사람이야 어찌 가리요. 경각에 달려들어 호왕을 치니 통천관이 깨어지고 상투마저 없는지라. 호왕이 여쭈오대,



“이는 내 죄 아니라. 모두 다 옥관도사의 죄로소이다.”



원수 분한 중에 옥관도사란 말을 듣고 왈,



“도사는 어디에 있느냐?”



호왕이 일어 앉아 가르치거늘 도사를 잡아내어 전후 죄목을 물은 후에,



“너를 이곳에 죽여 분을 풀 것이로되 남경으로 잡아다가 천자와 우리 부친전에 바쳐 죽이리라.”



하며 두 손목을 끊고 두 발을 끊어 수레에 싣고 성중에 들어가 호왕을 수죄하고 강 승상을 물은즉,



“옥중에 가두었다.”



하거늘 옥문을 깨치고 승상을 부르니 승상과 조 낭자 호왕이 죽이려고 찾는가 대경하여 기절하는지라, 원수 바삐 들어가 승상전에 여쭈오대,



“정신을 진정하옵소서, 소자는 회사정에 만나던 유충렬이옵더니 대명국 도원수 되어 남적을 함몰하고 호왕을 잡고 도사를 사로잡아 이곳에 왔나이다.”



승상이 혼몽중에 충렬이란 말을 듣고 벌떡 일어 앉아 보니 과연 충렬이 분명하다. 왈칵 달려들어 손을 잡고 통곡하며 하는 말이야 어찌 다 측량할까. 조 낭자 곁에 앉았다가 원수란 말을 듣고 앞에 달려들어 왈,



“장군님이 어찌 알고 와서 죽은 사람을 살려내어 고국 산천 다시 보고 부모 동생 다시 보게 하니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천자님도 살아 계십니까?”



원수 대답하고 승상전에 여쭈오대, 집을 떠나 백룡사 부처를 만나 전장 기계 얻은 후에 남적을 함몰하고 오는 말씀을 낱낱이 고하니 승상이 대희하여 칭찬불이(稱讚不已)하더라.



원수 조 낭자 전후수말을 물은 후에 치사하고 함께 궐문에 들어가 격서를 써서 토번국에 보내니 번왕이 원수 온단 말을 듣고 황겁하여 항서 쓰고 채단을 갖추어 사신을 부려 가달로 보내거늘 사신을 수죄하고 달왕의 항서와 번왕의 항서와 도사를 사로잡아 보내는 연유를 천자께 장계하고 전일 가달왕이 남경에서 데려간 미색들을 낱낱이 찾아,



“본국으로 가자.”



하니 이때 미색들이 고국을 생각하고 부모를 생각하여 주야 한탄하더니 원수를 만남에 전지도지(顚之倒之)하여 나오며 전후 좌우 나열하여 원수전에 백배치사하고 승상을 모시고 원수를 따라올 제, 준마 삼백 필에 낱낱이 다 태우고 조 낭자는 옥교를 타고 강 승상 곁에 앉아 행군을 재촉하여 돌아올 제, 여러 날 만에 회수에 다다르니 소연한심(蕭然寒心) 절로 난다. 전(前) 듣던 풍랑 소리 사람의 간장 다 녹이고 전에 보던 좌우 청산 장부 한심 돋우운다.



원수 모친을 생각하여 백사장에 내려앉아 가슴을 두드리며 세세원정(細細原情) 기록하여 제물을 장만하여 제사하려 하고 번양 회수 들어갈 제, 남만 오국에서 받은 금은 채단이며, 옥문관에 두고 갔던 군사며, 데려오는 미색들이며, 강 승상은 멀리 모셔 조 낭자는 옥교타고 오마대로 행군하여 번양성중 들어오니 그 영화 그 거동은 옛날 소진(蘇秦)이 육국 정승인을 차고 거기치중(車騎輜重) 나열하여 낙양성중 들어가는 듯, 당나라 곽분양(郭分陽)이 양경을 회복하고 분양 땅에 왕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 듯, 각 도에 백성들은 전후에 옹위하고 열읍(列邑) 수령(守令)들은 좌우에 나열하여 권마성(勸馬聲)하는 소리 반공에 높이 뜨고, 좌기초(坐起哨)하는 소리 원근에 진동한다.



객사에 좌기(坐起)하고 번양 태수 바삐 불러 천금을 내어 주며 제물을 장만할 제, 온갖 어육(魚肉) 갖추고 온갖 채소 등대(等待)하여 각 읍 관장 시위하고 갖은 제물 봉진(封進)할 제, 백사장(白沙場) 십리 뜰에 백포청장(白布靑帳) 둘러치고 원수는 백의(白衣)입고 백건(白巾) 백대(白帶)에 흰갓 쓰고 축문 일장 슬피 지어 회수 가에 나오니, 이때 조 낭자는 목욕재계 정히 하고 소복(素服)으로 단장하여 향로(香爐) 들고 원수를 배행(陪行)하여 물가에 나올 제, 고금이 다를쏘냐. 남경 도원수 회수에 빠져 죽은 모친을 위하여 제사한단 말을 듣고 남녀노소 없이 원수 공덕을 치사하며 그 얼굴을 보려 하고 쌍쌍작반(雙雙作伴)하여 회수 가 십 리 들에 빈틈없이 둘러서서 구경할 제, 원수 제소(祭所)에 들어와 삼층단 높이 무어 단상에 제물을 진설(陳設)하고 조 낭자는 향로 들어 단상에 올려놓고 낭자가 집사(執事)되어 분향(焚香)하고 나오니 원수 통곡하고 궤좌하여 독축(讀祝)하니, 그 축문에 하였으되,



유세차(維歲次) 부경 십칠 년 갑자 이 월 갑인삭(甲寅朔) 이십팔 일 신사(辛巳)에 남경 동성문 내서 사는 불효자 충렬은 모친 장씨전에 예를 갖추어 지전(紙錢)으로 해상고혼(海上孤魂)을 위로하오니 혼백이나 받으소서. 오호(嗚呼)라! 우리 부모 연광(年光)이 반이 넘어 일점혈육(一點血肉)이 없었기로 복중에 설운 마음 남악산에 정성드려 천행으로 충렬을 낳아 놓고 애지중지(愛之重之) 키워 내여 영화를 보렸더니 간신의 해를 보아 부친이 만리 연경에 간후에 모친만 모시고 있다가 피화(避禍)하여 달아날 제 이 물가에 다다르니 난데없는 해상수적(海上水賊) 사면으로 달려들어 우리 모친 결박하여 풍랑중에 내쳐 놓으니, 모친님은 간데없고 천행으로 모진 목숨 충렬이만 살아나서 모친 주시던 옥함을 얻어 전장 기계 갖추어서 도적을 함몰하고 정한담과 최일귀를 베인 후에 천자를 구완하고 만리 연경에 적거하신 부친님을 모셔다가 천은을 입어 연왕이 되어 만종록을 받게 하고 남적을 소멸한 후에 강 승상을 살려내어 이 길로 오옵더니 모친을 생각하여 이곳에 왔사오나 모친은 어디가고 충렬을 모르는가, 호국에 갔던 부친은 살아왔네. 옥문관 갔던 강 승상도 살아오고 호국에 잡혀 갔던 고국 사람들도 살아오고 황후 태후 중한 옥체 번국에 잡혀 갔다 충렬이가 살려 왔네. 모친은 어디 가고 살아올 줄 모르는가. 이번에 부친님이 소자를 보내실 제 부탁하기를 번양 땅에 가 네 어머님을 찾아오라 하시더니 만경창파 깊은 물에 백골인들 찾으리까. 모친님이 옥함을 주실 제 수건에 쓴 글씨를 가져왔으니 혼백이나 와서 충렬을 만져 보시오. 충렬은 명나라 대사마 도원수 겸 승상 위국공이 되고 부친님은 금자광록대부 겸 대승상 연국공의 연왕이 되었으니 이 같은 영화를 어디 가고 모르는가. 우리 집에 불을 놓은 정한담을 사로잡아 전옥에 가두었다가 부친을 모신 후에 부친 앞에 엎지르고 전후 죄목을 물은 후에 그놈의 간을 내어 모친님전에 제사하였더니 그런 줄을 알았는가. 충렬이 귀히 된 줄 혼령은 알련마는 언제 다시 만나 볼까. 세상에 귀한 영화나 같은 이 없건마는 피 같은 이내 눈물 어찌하여 솟아난가. 모친님을 편히 모셔 연만하여 돌아가면 이다지 통박할까. 만리 연경에 가장(家長) 잃고 무변대해(無邊大海)에 자식 잃고 도적에게 결박하여 수중고혼(水中孤魂) 되었으니 천만 세를 지나간들 모친같이 통박(痛迫)할까. 혼령이 나오셨거든 이렇듯이 만반진수(滿盤珍羞)를 흠향하고 돌아와서 후생에 다시 만나 세세상봉(世世相逢) 모자 되어 다하지 못한 자모지정(子母之情)을 다시 풀까 바라나이다. 하올 말씀 무궁하오나 눈물이 흘러 옷이 젖고 흉중이 답답하여 그만 그치나이다. 상향(尙饗).



하며 우는 소리 용궁(龍宮)에 사모치고 산천이 함루(含淚)하니, 용신(龍神)도 낙루(落淚)하고 산신령도 비감(悲感)한다. 이때 백포장 내외간(內外間)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원수의 축문 외우며 우는 소리를 들으니 철석간장(鐵石肝腸) 아니거든 누가 아니 낙루하며 초목금수(草木禽獸) 아니어든 어느 누가 아니 울리요. 좌우 방백(方伯) 수령(守令)들은 뿌리느니 눈물이요, 각 읍 군수 현령들은 서로 보고 슬피우니 그 중에 환과고독(鰥寡孤獨) 설운 사람은 방성통곡하는 소리 강천이 창망하여 일월이 무광하고 운무(雲霧) 자욱하여 천지 나직하다.



제(祭)를 파한 후에 온갖 음식을 많이 싸서 해상에 드리치고 성중에 들어와 군사를 호군하고 길을 떠나갈새 각 읍에 선문(先文) 놓고 금릉성중에 득달하여 숙소하고 군사를 쉬는지라.



각설, 이때 장 부인이 활인동 이 처사 집에 있어 세월을 보내더니 일일은 남경에 난리났단 말을 듣고 탄식 왈,



“하릴없다. 이제는 주부 속절없이 죽겠다. 우리 충렬이 살았으면 평난(平亂)하고 부모를 찾으련만 죽기가 적실하다.”



방성통곡하더니, 마침 이 처사 번양에 갔다가 대명국 도원수 유충렬이 회수에서 제사하는 말을 듣고 백성 총중(叢中)에 함께 구경하다가 원수 축문 외는 소리를 듣고 대경대희하여 급히 집에 돌아와 장 부인더러 왈,



“세상에 기이하고 의심난 일이 있는다. 마침 오늘날 번양에 갔삽다가 오압더니 남대로(南大路)서 천병만마 들어오며 회수 가에 둔취(屯聚)하였거늘 물은즉 남경 도원수 유충렬이 모친을 위하여 회수에 제사한다 하기로 백성과 함께 구경하더니 원수 소의(素衣) 소관(素冠)으로 제물을 진설하고 독촉하며 통곡하는 소리를 들은즉 적실히 부인의 아들이라 부인이 항상 하시던 말씀을 낱낱이 하더이다.”



부인이 이 말을 듣고 머리를 허부며 땅을 두드리며 왈,



“이게 웬 말이냐. 원수의 하던 말을 다시 하라.”



이 처사 대왈,



“전후수말이 약차약차(若此若此)하더이다.”



부인이 이 말을 듣고 왈칵 냅다 서며 왈,



“어서 가세, 내 아들 충렬이 살아왔네. 옥함을 받았단 말이 웬 말인가.”



통곡하며 가고자 하거늘 처사 만류 왈,



“적실히 그러할진대 내가 먼저 그 진위(眞僞)를 알고 오리이다.”



하고 나서거늘,



“원수 나이는 얼마나 하며 저의 외가는 뉘집이라 하던가?”



대왈,



“나이는 이십이요, 외가는 이부상서 장윤이라 하더이다.”



부인 왈,



“적실히 그러하구나, 내 아들 아니면 어찌 나의 부친 존휘를 알랴. 바삐 가서 알아 오소.”



이 처사 전지도지 바삐 가서 금릉성중 달려들어 군사를 불러 통자(通字)하되,



“만수산 활인동 사는 이 처사 원수전에 뵈와지라 하나이다.”



원수,



“들라.”



하니 이 처사 들어가 배사하고 앉은 후에 공덕을 칭송하니 원수 사양하되,



“막비(莫非) 천자의 덕이라 무슨 공이 있사오며, 무슨 허물이 있어 누지(陋地)에 욕임(欲臨)하시나이까?”



처사 왈,



“적실히 알고저 하는 일이 있어 왔사오니, 어제날 회수 가에 상공 독축하는 말씀이 정녕 그러하오니까?”



원수 이 말을 들음에 마음이 자연 비감하여 슬피 낙루(落淚) 왈,



“귀인은 어찌 묻나이까. 적실히 그러하오이다.”



“적실히 그러할진대 만고의 드문 일이라. 유 주부를 모셔왔다 하니 유 주부는 나의 처숙(妻叔)이라. 전일에 그런 말씀 하더니까.”



원수 대경 왈,



“선인(先人)의 존호를 부르기 미안하나 전일 한림학사 이인학과 어찌되나이까?”



처사 왈,



“나의 부친이로소이다.”



원수 이 말을 듣고 처사의 손을 잡고 왈,



“존형을 이곳에 와서 만나 볼 줄 몽중이나 생각하오리까?”



처사도 그제야 단무타의(但無他意)라 원수를 붙들고 비감하여 왈,



“모친을 지척에 두고 어찌 찾을 줄을 모르는가?”



원수 이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하여 겨우 진정하며 처사를 붙들고 왈,



“이게 웬 말인가, 나의 모친 장 부인이 이 근처에 있단 말이 어인 말인가.”



처사 원수를 위로하여 정신을 차린 후에 왈,



“이런 일이 천만고에 또 있을까. 나를 따라 가면 모친을 만나리라.”



원수 마음이 건공(乾空)에 떠서 처사를 따라갈 제 전지도지 하여 순식간에 처사 집을 당도하니, 처사 급히 들어가며 장 부인을 불러 왈,



“처숙모 어디 가 계신가. 충렬이 데려왔나이다.”



이때 부인이 처사를 보내고 소식을 알아 올까 만심 고대하던 차에 뜻밖에 충렬이 데려왔단 말을 듣고 대경실색하여 기절한지라. 충렬이 달려들어 문 앞에 복지하니 처사 구완하여 정신을 차린 후에 부인이 여광여취(如狂如醉)하여 하는 말이,



“네가 귀신이냐 내 아들 충렬이냐. 내 아들 충렬은 회수에 일정 죽었거든 어찌 살아 육신이 온가. 내 아들 충렬은 등에 삼태성이 표적으로 박혔느니라.”



원수 급히 옷을 벗고 곁에 앉으니 과연 삼태성이 뚜렷이 박혀 있고 금자로 새긴 것이 어제 본 듯 완연하니 서로 붙들고 방성통곡하는 정이 만리 호국에 부친 만날 때와 배나 더한지라. 뜻밖에 모자상봉(母子相逢)하였으니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고금(古今)이 다를쏘냐. 죽은 부모 다시 만나 영화 보게 되었으니 반갑고 슬픈 정은 일구난설(一口難說)이라. 부인이 말하면 충렬이 울고 충렬이 말하면 부인이 우니 청천일월이 무광하고 산천초목도 슬퍼하는 듯하다.



이때 강 승상이며 조 낭자 이 말을 듣고 옥교를 갖추어 활인동에 들어올 제, 언비천리(言飛千里)라 회수에 제사하던 유충렬이 활인동 이 처사 집에서 모친을 만났다 하니 각 읍 관장과 구경하는 사람 금릉성중에 들어 서로 보고 칭찬하는 말이,



“이런 말은 만고에 처음이라. 어떤 부인은 팔자가 좋아 저런 아들 두었는고.”



하며 구경하더라.



이때 강 승상이 옥교를 가지고 활인동에 들어가 부인전에 예하고 부인을 모셔 성중에 들어올 제 구경하는 여인들이 옥교를 잡고 부인전에 백배 치하하고 송덕하는 소리 산신령도 춤을 추고 강산도 우즐기니 하물며 사람이야 무언할까. 부인이 낱낱이 위로하고 성중에 들어와 수일 즐기더니 길을 떠남에 이 처사 가권을 모두 다 거느리고 황성에 올라갈 제, 활인동 어구에 삼장 석비(石碑)를 세워 전후수말을 기록하고 서천 삼십육 도 사신이며 남만 오국 금은 채단 만여 필을 앞세우고 남경 인물이며 군사 좌우에 나열하고 각도 각과 방백 수령 전후에 옹위한데 구경하는 사람조차 백 리에 연속하니 낭자한 거동은 천고에 처음이라.



원수 모친과 승상을 모시고 길을 떠나 영릉을 바라보고 행군하여 올라갈 제 일희일비(一喜一悲) 슬픈 마음 소연한심 절로 난다. 수중에 죽은 부모 다시 만나 보나, 강 낭자는 어디 가서 만나 볼까. 모친 보고 승상 보니 남궁가북궁수(南宮歌北宮愁)라. 모친은 옥교중에 희색이 만면하여 천근 근심 때를 벗어 있고, 승상은 수레 위에 일희일비 슬픈 마음 처자를 생각하여 수심이 만면하더라.



영릉으로 들어올 제 이때는 춘삼월이라 천지기운이 배합(配合)하여 만산(滿山)의 홍록(紅綠)들은 일년일도(一年一度) 다시 만나 백초춘경(百草春景) 다툴 제, 연자(燕子)는 남남(喃喃) 인가(人家)를 찾아 들고 호접(蝴蝶)은 편편(片片) 화간(花間)에 날아들제 나무 나무 성림(成林)하고 가지가지 봄빛이라. 태평성대 만난 백성 청춘소년 홍안미색(紅顔美色) 쌍쌍이 작반하고 삼삼오오(三三五五) 답청(踏靑)네는 이화(李花) 도화(桃花) 꺾어 들고 행산곡 돌아들어 화전(花煎)하며 즐겨할 제 춘심(春心)을 못 이기어 쌍쌍 대무(對舞)하며 노래하며 유 원수를 송덕하니 그 노래 즐겁도다.



천운(天運)이 순환(循環)하여 대명(大明)이 밝았으니 만고에 어진 영웅 뉘 집에 났단 말가. 동성문 다리 안에 유 상공의 집이로다. 역적이 때 모르고 뽕나무 활을 매니 원수의 가진 칼이 사해에 밝았도다. 승전곡(勝戰曲) 한 소리에 함몰도적하여 천하가 태평하니 호국에 죽은 군친(君親) 고향에 살아오고 여염(閭閻)에 있는 처자 부모 함께 동락(同樂)하니, 우리 인군 덕이 높아 일도춘광호시절(一到春光好時節)에 백화(白花) 만발 피었으니 화전하는 백성들이 뉘 아니 송덕하리. 우리 유 원수 부모 만나 다남다녀(多男多女)하옵소서.



이렇듯이 즐겨 하니 원수는 강 낭자를 생각하여 영릉성중에 들어오니 이 땅은 승상의 고토(故土)라. 슬픈 마음을 어찌 다 측량하리요. 객사에 숙소하고 월계촌 소식을 알고자 하여 사오 일을 유련(留連)하는지라.



각설, 이때 강 낭자 목숨을 도망하여 청수 가에 오다가 모친은 청수에 빠져 죽고 영릉고을 관비에게 잡혀와 머무나 천비(賤婢)하는 행사가 고금에 다를쏘냐. 낭자를 만단 개유(開諭)하여 태수의 수청을 드리고저 하여 수양딸을 삼은 후에 무수히 훼절코자 한들 빙설 같은 맑은 절개 일시를 변하며 일월같이 밝은 마음 궁곤(窮困)타고 변할쏘냐. 이 꾀로 모피(謀避)하고 저 꾀로 모피하니 관장(官長)에게 욕도 보고 관비에게 매도 많이 맞으니 가련한 그 정상은 차마 보지 못할네라.



이때에 관비 딸 하나가 있으되 제 몸은 미천하나 마음은 어질어 매일 강 낭자를 불쌍히 여겨 그 절개를 칭찬하여 제 모(母)를 만류하고 낭자를 구완하며 매양 몸을 바꾸어 제가 수청하고 낭자는 구완하여 살리는지라.



이때, 유 원수 동헌(東軒)에 좌기하고 사오 일 유련할 제 관비 생각하되,



‘원수는 호걸이요 낭자는 미색이라. 이런 때를 당하여 수청을 드렸으면 원수의 혹(惑)한 마음 천만 냥(千萬兩)을 아낄쏘냐.’



급히 들어가 행수(行首) 현신(現身)하고 이날 밤에 낭자를 보내고저 하더니 제의 딸 연심이 또 이 기미를 알고 낭자더러 왈,



“금야에 변을 당할 것이니 그대 생각하여 사양치 말고 들어가면 내가 중로에 있다가 대(代)로 들어갈 것이니 그리 알고 있으라.”



과연 그날 밤에 관비 낭자를 데리고,



“구경가자.”



하며 동헌으로 가거늘 낭자 웃으며 왈,



“이제는 염려 말고 나가라. 원수의 수청이야 사양을 어찌하리요.”



관비 대희하여 왈,



“네 몸이 과히 높으다. 이 고을 관장은 무수히 지나되 종시 허락지 아니하더니 남경 대사마 도원수 겸 위국공의 수청은 사양치 아니하니 인물이 잘나고도 볼 것이다. 마음도 높으고 소원도 높도다. 우리도 소년시절에 월계촌 강 승상이 하남 절도사로 와 계실 제 일등미색 삼백여 명 중에 나 혼자 수청들어 금은보화를 많이 받았더니 세월이 원수로다.”



하며 이렇듯이 비양하고 나가는지라.



이때 연심이 제 어미 나감을 보고 낭자를 내보내고 제가 들어가니 원수 등촉을 밝히고 낭자를 생각하여 금낭을 끌러 낭자의 글을 볼 제 일자일체(一字一涕)하니 슬픈 한심 절로 난다.



‘삼경야월(三更夜月)은 꽃가지에 비추는 듯, 공산(空山) 두견 울지말라. 너는 뉘를 생각하여 장부 간장 다 녹이냐, 낭자는 어디 가고 속절없는 글 두 귀만 금낭 속에 들었느냐. 여관한등독불면(旅館寒燈獨不眠)하니 객심하사(客心何事)로 전처연(轉凄然)은 날로 두고 이름이라. 일락장사추색원(日落長沙秋色遠)하니 부지하처조상군(不知何處弔湘君)은 낭자 볼 길 없음이라. 옛날 사마장경(司馬長卿)은 초년(初年)에 곤궁타가 문장(文章) 부귀(富貴) 겸전(兼全)하여 고향에 돌아오니 그 아내 탁문군(卓文君)이 문 밖에 바삐 나와 손을 잡고 들어가고 낙양 땅에 소진(蘇秦)이는 현순백결(懸鶉百結) 몸이 되어 곤곤(困困)히 지내더니 육국정승인(六國政丞印)을 차고 고향에 돌아오니 그 아내 전지도지 나와 인도하여 들어가되, 대명국 유충렬은 초년에 부모 잃고 십생구사(十生九死) 살아나서 도원수(都元帥) 대승상(大丞相)에 만리타국에 승전하고 죽은 부모 살려내어 고향에 돌아온들 청수에 죽은 낭자 어찌 와서 맞아가며 소소백발 강 승상을 무엇이라 위로할까.’



이렇듯이 한탄하고 그 밤을 지내는지라.



이때 낭자 연심을 대로 보내고 침실에 돌아와 원수를 생각하야 자탄(自歎)하고 잠 못 들어 생각하되,



‘원수의 성명을 들으니 나의 낭군과 동성동명(同姓同名)이라, 낭군이 적실하게 되면 응당 월계촌에 들어가 우리 집 소식을 물으련만 월계촌을 아니 가니 답답하고 원통하다. 연심이 어서 나오면 진위를 알아보리라.’



하고 낭군이 주던 글을 보며 자자(字字)이 낙루하며,



‘구천에 만나자고 말씀이 있었더니 모진 목숨 살아나고 낭군은 죽었도다. 살기 곧 살았으면 대명국 도원수를 나의 낭군밖에 할 이 없건마는 몰라 보니 답답하다.’



이튿날 연심이 나오다가 제 어미를 만나니 관비 그 기미를 알고 대로하여 원수전에 아뢰고 낭자와 연심을 죽이고자 하여 급히 들어가 문안(問安)하고 여쭈오되,



“소인의 딸이 얼굴이 절색이요 태도 있는 고로 상공전에 수청을 보냈더니 제 몸은 피하고 다른 년이 대로 들어 갔사오니 두 년을 치죄(治罪) 하옵소서.”



원수 대로하여,



“대로 온 년을 나입(拿入)하라!”



연심이 잡혀 들어 계하에 복지하니 원수 문왈,



“너는 무슨 욕심으로 대신을 잘 다니느냐, 죽을 데도 대로 갈까?”



연심이 여쭈오되,



“소녀 비록 천비오나 일생에 수절(守節)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옵더니 수년 전에 어미 외촌(外村)에 갔다가 어떠한 여자를 데려다가 수양딸을 삼아 동네마다 수청을 드리고자 하되, 그 여자 굳은 절개 청천에 일월 같고 삼동(三冬)에 촛불같이 변할 길이 없는 고로 소녀 매양 구제하옵더니 마침내 상공이 행차하옵심에 그 여자를 구완하여 대로 왔사오니 죄를 주옵소서.”



원수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절로 비감하여 의심이 나는지라, 다시 왈,



“그 여자의 성명이 무엇이며 절개 있다 하니 뉘 집 여자냐?”



연심이 대왈,



“그 여자 소녀와 사오 년을 동거하되 종시 성명을 모른다 하고 뉘 집이란 말을 아니 하더이다.”



원수 고이 여겨 왈,



“적실히 그러할진대 바삐 입시하라.”



이때 낭자 연심이 잡혀 갔단 말을 듣고 신세를 자탄하더니 뜻밖에 관비 십여 명이 나와 잡아다가 계하에 복지하니 원수 창문을 열고 낭자의 상을 보니 숙면(熟面)인 듯하고 심신이 비감하여 자세히 보니 의상은 남루(襤褸)하나 기생(妓生)되기 생심 밖이요 천인 자식 아깝도다. 원수 소리를 나직이 하여 낭자더러 왈,



“거동을 보니 천인 자식이 아니요. 여자의 말을 들었거니와 수절을 한다 하니 뉘 집 자손이며 낭자는 누구건대 청춘 소년의 수절을 하며 무슨 일로 저리 되어 관비 양여자가 되었는지 진정을 은휘(隱諱)치 말고 날더러 이르면 알 일이 있으리라. 말을 자상히 하라.”



하니 이때 낭자 계하에 복지하여 원수의 말을 들음에 낭군과 이별할 때 하직하고 가던 말이 두 귀에 쟁쟁하여 일분도 다름이 없는지라. 낭자 전일은 도망하여 왔기로 성명 거주를 속였더니 마음이 자연 비감하여 진정으로 여쭈오되,



“소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골 월계촌 사는 강 승상의 무남독녀(無男獨女)옵더니 부친이 만리 연경에 귀양간 유 주부를 위하여 상소하였더니 만고역적 정한담이 충신을 모함하여 승상을 옥문관에 귀양하고 소녀의 모녀를 잡아 궁비 속공하려 하고 금부도사 와 잡아갈 제, 청수에 야간도주하여 모친은 물에 빠져 죽고 소녀도 죽으려 하더니 영릉관비 외촌에 갔다 오는 길에 데리고 제 집에 와 험악이 무수하되 연심의 힘을 입어 이때까지 살았으나 오늘은 이 말을 원수전에 고하고 하릴없이 자결코저 하나이다.”



원수 이 말을 듣고 당에 뛰어 내려서며,



“이게 웬 말인가.”



영릉 태수 바삐 불러 강 승상을 오시라 하니라.



이때 강 승상이 처자를 생각하여 잠을 못 자니, 몸이 곤하여 졸더니 뜻밖에 원수 오시란 말에 놀래어 들어오니 원수 왈,



“이게 강 낭자 아니오니까. 강 낭자 살아왔나이다.”



승상이 이 말을 듣더니 정신이 아득하여 천지가 캄캄한지라. 원수 이별할 때 내어 주던 표를 내어 놓고 상고(相考)하니 일호(一毫)도 의심이 없는지라. 승상이 낭자의 목을 안고 궁글며 왈,



“내 딸 경화야, 청수에 죽었다더니 혼백이 살아왔냐. 꿈이냐 생시냐. 너의 낭군 유충렬이 왔으니 소식 듣고 찾아왔냐. 우리 집이 소(沼)가 되어 양류청청(楊柳靑靑) 푸른 가지 빈 터만 남았으니 슬픈 마음 어찌 다 진정하리.”



원수 낭자를 보고 하는 말이며 세세정담(細細情談)을 어찌 다 기록할까.



이때 장 부인이 내동헌(內東軒)에 있다가 이 기별을 듣고 급히 나와 보니 낭자 고부지례(姑婦之禮)로 문안하고 살아난 말씀을 자상(仔詳)히 하니 장 부인이 손을 잡고 왈,



“세상 사람이 고생이 많다 하나 우리 고부 같을쏘냐.”



이때 낭자 데려간 관비 혼백이 상천(上天)하고 간장이 녹는 듯, 원수 동헌에 높이 앉아 관비를 잡아들여 수죄 왈,



“너를 죽일 것이로되, 너 같은 천기(賤妓)년이 사람을 알아볼쏘냐. 청수에 가 낭자 구한 일로 방송하나니 덕인 줄 알라.”



연심을 불러 무수히 치사하고 보내려 하니 낭자 곁에 앉았다가 왈,



“연심은 날과 백년은인이니 일시 치사뿐 아니라 평생을 한가지 지내고저 하니 황성으로 데려가사이다.”



원수 그 말을 옳이 여겨 연심을 불러,



“부인을 착실히 모시라.”



연심이 황공하여 하더라.



원수 전후 사연을 낱낱이 기록하여 나라에 장계하고 길을 떠나올새 장 부인이 금덩을 타고 강 낭자와 조 낭자는 옥교를 타고 좌우로 모시고 강 승상은 수레 타고 오국 사신이 모셨는데, 원수는 일광주 용인갑에 장성검을 높이 들고 대완마상 높이 앉아 오마대로 행군하여 완완히 나오니 그 거동과 그 영화는 천고에 처음이라.



게양역을 지내어 청수 가에 다다르니 소 부인 죽던 곳이라. 원수 승상을 위하여 영릉 태수 바삐 불러 제물을 장만하여 승상을 주인 삼고 조 낭자는 집사 되어 원수는 축관(祝官)되고 독축하며 통곡하는 말이 회수에 모친 제사할 때와 다름이 없더라.



제를 파한 후에 행군하여 나올 제 이때 천자와 황태후며 연왕과 조정에서 충렬을 가달국에 보내고 주야 생각하며 장 부인을 찾아오는가 하여 일야(日夜) 한탄하더니 뜻밖에 원수의 장계를 보고 즐거운 마음 측량 없으며 장안 백성들이 이 말을 듣고 각각 자식을 보려 하고 다투어 나오더라.



천자와 태후와 연왕이 백 리 밖에 나와 맞을 새 원수의 위엄을 보니 서천 삼십육 도며 남만 오국이며 금은 예단과 일등미색들이 차례로 말을 타고 오국 사신이 선봉되어 낭자하게 들어오고 그 가운데 금덩 옥교 떠오는데 강 낭자는 좌편이요 조 낭자는 우편이라. 좌우 청정(靑旌) 고였는데 금수단(錦繡緞) 양산(陽傘) 대는 반공에 솟았도다.



강 승상이 수레 위에 높이 앉아 오며 군사 전후에 나열하고 그 뒤에 따르는 이 십장홍모(十杖紅氈) 사명기(司命旗)는 한가운데 세워 오고 용전(龍旜) 봉기(鳳旗) 대장기(大將旗)며 기치창검(旗幟槍劍) 삼천 병마 전후에 작대(作隊)하고 승전고(勝戰鼓)와 행군고(行軍鼓)는 원근산천에 진동하며, 도원수는 일광주 용인갑에 장성검 높이 들고 천사마 비껴 타고 황룡수(黃龍鬚)를 거스리고 봉의 눈을 반만 떠서 군사를 재촉하니 웅장한 거동은 일대 장관(壯觀)이요 천추에 표문(表聞)이라.



이때 장안 만민이 남적에게 잡혀 갔던 며느리며 딸이며 동생들이 본국에 돌아온단 말을 듣고 호산대 십 리 뜰에 빈틈없이 마주 나와 각각 만나 옥수(玉手) 나삼(羅衫) 부여잡고 그리던 그 정곡(情曲) 못내 즐겨 하여 울음소리 웃음소리 반공에 뒤섞이어 호산대가 떠나갈 듯 원수를 치사하고 장 부인을 치사하는 소리 낭자하여 요란하고, 금산성하 다다르니 천자와 황태후 옥연(玉輦)에 바삐 내려 장막 밖에 나서니 원수 갑주를 갖추고 군례(軍禮)로 현신하니 천자와 태후 원수의 손을 잡고 못내 치사 왈,



“과인의 수족을 만리타국에 보내고 주야 염려하더니 이렇듯이 무사히 돌아오니 즐거운 마음 어찌 다 칭찬하며 회수에 죽은 모친 데려온다 하니 만고에 없는 일이며 옥문관에 강 승상과 청수에 죽은 강 낭자를 살려오니 천추에 드문 일이라. 그대의 은혜는 백골난망(白骨難忘)이라. 그 말이야 어찌 다 하리오.”



황태후 원수를 치사한 후에 강 승상을 부르시니 승상이 바삐 들어와 복지하니, 천자 내려와 승상의 손을 잡고 위로 왈,



“과인이 불명하여 역적의 말을 듣고 충신을 원방에 보냈으니 무슨 면목으로 경을 대면하리오. 그러하나 왕사(往事)는 물론(勿論)하오.”



이때 황태후 승상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야 어찌 다 성언(成言)하리.



이때 연왕이 다른 사처(私處)에 있다가 장 부인이 금덩을 타고 옴을 보고 마음이 건공에 떠서 충렬이 나오기를 고대하더니 원수 천자께 물러나와 부왕전에 복지 주왈,



“불효자 충렬이 남적을 소멸하고 오는 길에 회수에 와 제사하옵다가 천행으로 모친 만나 왔나이다.”



연왕이 반가움을 측량치 못하여 왈,



“너의 모친이 어디 오느냐?”



이때 장 부인이 모장(毛帳) 밖에 있다가 주부의 말소리를 듣고 반가운 마음 어떻다 할 수 없어 여광여취(如狂如醉) 들어가니 연왕이 부인을 붙들고 왈,



“그대 일정 장 상서의 따님인가. 멀고 먼 황천길에 죽은 사람도 살아오는 법이 있는가. 회수 창파 만경중에 백골이 되었을 제 어떤 사람이 살려 왔나. 뉘 집 자손이 모셔왔나. 충렬아 네가 일정 살려 왔나.”



북방 천리 만리 호국에 잡혀 죽게 된 유 주부와 만경창파 회수중에 십 년 전에 잃은 장씨 다시 만다 즐길 줄과 칠 세 자식 환란중에 잃었더니 다시 만나 영화 볼 줄 몽중이나 생각할까.



장 부인이 석장동 마철의 집에 잡혀 갔던 말이며, 옥함을 가지고 야간 도망하여 노구 집에서 환(患) 만나던 말이며, 옥함을 물에 놓고 죽으려 하다가 활인동 이 처사의 집에 살아난 말을 낱낱이 설화하며 즐기니 그 정곡은 측량치 못할네라.



원수 곁에 앉았다가 왈,



“소자 가달국에 갔을 제 적진 선봉이 마철의 삼형제라 한칼에 베어 원수를 갚았나이다.”



연왕과 부인이 못내 즐기더라.



천자를 모시고 성중에 들어올 새 자식 만나 치하하는 소리며, 만조제신(滿朝諸臣) 하례(賀禮)하는 말을 어찌 다 기록하리.



이때 황후 태후 강 낭자를 입시하여 전후 왕사를 낱낱이 물을 제 부인이 고생한 말을 낱낱이 하고 서로 울며 장 부인이 치사하기를 마지 아니하더라.



이때 원수가 천자와 부왕을 모셔 황극전에 전좌하시고 오국사신 예를 받아 문목수죄(問目數罪)한 연후에 옥관도사를 잡아들여 계하에 엎지르고 수죄 왈,



“간사한 도사놈아, 네 천지조화지술(天地造化之術)을 배워 정한담을 가르쳐 신기한 영웅이 황성 내에 있는 줄은 알고 광덕산에 살아 나서 너 죽일 줄을 모르느냐. 네 전일 정한담더라 하기를 천재일시(千載一時)라 급격물실(急擊勿失)하라더니 어찌 조그마한 유충렬을 못 잡아서 너희 놈들이 먼저 다 죽느냐?”



도사 여쭈오되,



“패군지장(敗軍之將)은 불가이어용(不可而語勇)이라 하니, 차막비천명(此莫非天命)이라 무슨 말씀 하오리까마는 소인이 신기한 술법을 배워 전장에 나올 제 사해신장(四海神將)이며, 대명국(大明國) 강산신령(江山神靈)과 천귀만신(千鬼萬神)과 이매망량 어두귀면지졸(魚頭鬼面之卒)과 천지개벽(天地開闢) 후에 신장 귀졸을 모두 다 불러내어 지위간에 넣어 두고 승천입지(昇天入地)하며 성산성해(成山成海)하며 변화무궁터니 그 중에 유독 서해 광덕산 백룡사에 있는 노승과 남해 형산 화선관이 소인 영(令)을 쫓지 아니하기로 고이 알었삽더니 전일 원수 접전하시는 법을 보오니 갑주 창검도 천신의 조화거니와 백룡사 노승은 원수 우편에 옹위하고 남악 형산 화선관은 좌편에 시위하였으니 소인인들 어찌하오리까. 주판지세(走坂之勢)로 이리될 줄을 알았으나 죽사온들 무슨 한이 있사오리까.”



원수 마음에 그놈의 재주를 탄복하고 군사를 재촉하여 장안시에 처참한 후에 오국사신을 각각 돌아 보내고 황성 동문 밖 인가(人家)를 다 헐어 별궁을 지은 후에 직첩을 돋울새, 산동 육국에서 들어오는 결총(結總)은 모두 다 연왕에게 부치고 원수로 남평 여원 양국 옥새를 주어 남만 오국을 차지하여 녹을 부쳤으되 대사마 대장군 겸 승상 인수(印綬)를 주어 국중만사(國中萬事)를 모두 다 맡겨 슬하에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장 부인으로 정열부인(貞烈夫人) 겸 동궁야후(東宮耶后) 연국왕후를 봉하여 경양궁에 거처하게 하고 강 승상으로 달왕 직첩을 주어 빈시자위(賓師之位)에 있게 하고 강 부인으로 하여금 정숙부인 겸 동궁후 언성왕후를 봉하여 시녀 삼백에 강 승상의 위장 삼아 봉황궁에 거처하고 활인동 이 처사로 간의태부(諫議太夫) 도훈관(都訓官)에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겸하여 육조(六曹)를 다스리게 하고 영릉 관비 연심으로 남평왕의 후궁을 봉하여 인성왕후 직첩을 주어 봉황궁에 강 부인을 모시고 그 남은 제장은 차례로 벼슬을 돋우니라.



이때 남국에 잡혀 가 강 승상을 부모같이 섬기던 여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술 한잔 받아 들고 원수전에 자례(自禮)하던 노인의 딸이라. 그 노인을 불러 상면한 후에 조 낭자로 남평왕의 우부인을 봉하고 그 오래비로 총융대장(總戎大將)을 삼아 그 아비를 봉양하게 하니 상하(上下) 인민(人民)이 송덕(頌德)하는 소리 천지 진동하니 그 아니 태평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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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렬전 줄거리 1

  중국 명나라의 개국 공신의 후예인 유심은 늦도록 자식이 없어 한탄하다가 부인과 남악산에 치성을 드리고 신이한 태몽을 꾼 뒤 충렬을 얻는다. 이때 조정에는 역심을 품은 정한담과 최일귀라는 신하가 유심을 모함하여 귀양을 보내고 유심의 집에 불을 질러 그 가족마저 살해하려 한다. 하늘의 도움으로 정한담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유충렬은 재상 강희주를 만나 그의 사위가 된다. 강희주는 유충렬을 구하려 천자(임금)에게 간언하다가 정한담 일파의 모함을 받아 옥문관으로 유배를 당하고 충렬은 전란을 피해 부인 강낭자와 헤어져 광덕산 백룡사에 들어가 도승 밑에서 무예를 배우며 복수할 때를 기다린다. 이때 조정에서는 정한담 일파가 충신들을 모두 축출하고 호나라 군대와 내통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정한담에게 여러 번 패한 천자가 항복하려 할 즈음 유충렬이 등장해 반란군의 선봉인 정문걸을죽이고 천자를 구출한 뒤 반란군을 무찌르고 정한담을 사로잡는다. 충렬은 호왕에게 잡혀갔던 왕후 태후 태자를 구출한 뒤 헤어졌던 가족을 모두 찾아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높은 벼슬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린다. 

 

유충렬전 줄거리 2

  영종황제 때 개국 공신의 13대 손인 유심은 벼슬이 정언주부로서 사람됨이 정직하고, 성정이 민첩하면서도 마음이 충정해서 국록은 점점 늘고 가산은 비할 데 없이 부유했다. 그에게 다만 섭섭한 것이 있다면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는 점이었다. 그러던 차에 부인 장씨의 기도로 꿈에 선관이 나타나 태몽을 알린다. 유심은 모처럼 얻은 아들의 이름을 충렬이라 했다. 충렬은 일곱 살이 되자 벌써부터 골격이 뛰어나고, 총명은 만인을 넘고, 필법은 왕희지요 문장은 이태백이며 무예지략은 손오에 견줄 만 했다. 게다가 천문 지리는 흉중에 감춰 두고, 국가 흥망이 장중에 매여 있었으니 말달리기와 칼 쓰는 기술이 또한 천신도 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 때 마침 조정에 간신 둘이 있었다. 하나는 도총 대장 정한담이요, 또 하나는 병부상서 최일귀라는 자였다. 이들은 포악 무쌍해서 만민의 생사가 이들에게 매여 있었고, 일국의 권세가 이들의 손끝에 달려 있었다. 보는 사람들은 이들을 초회왕의 항적(항우)이요, 당명황(현종)의 안녹산이라고까지 했다. 따라서 이들은 자기의 실력에 교만해져, 언젠가 천하를 도모할 어둑한 모반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정언주부 유심의 직간이 있고 다른 자들의 상소가 계속되자 이들을 제거할 기회를 노리던 중 마침내 기회가 왔다. 영종 황제가 즉위하자 열국이 제각기 앞을 다투어 사신을 보내고 조공을 바치는데 오직 토번(티베트)과 가달(오랑캐의 한 종족)만이 조공을 바치지 아니했다. 이런 틈을 타서 두 간신은 그들을 정벌할 것을 천자께 아뢰지만 정언주부 유심이 나서서 적극 반대한다. 이에 정한담과 최일귀는 유심이 오랑캐와 내통하고 있다고 모함을 하게 되고 분노한 황제는 "구천에서 상봉한들 부자의 표시가 없어서야 되겠느냐. 이 칼을 잃지 말고 부디 잘 간수하여 두어라."하면서 칼을 끌러 준다. 귀양 도중 유심은 투신자살을 시도하지만 호송하던 포졸들의 만류로 살아남게 되고 연경에 도착한다. 한편 두 간신은 옥관 도사를 찾아 드디어 천하를 도모하기로 작정하지만 유심의 자식인 충렬이 살아 있는 한 불가능함을 알리자 충렬 모자를 헤치기로 결심한다. 장씨 부인은 꿈에 나타난 백발노인의 계시로 간신히 살아 도망친다.  이들 모자의 생존을 확인한 두 간신은 군사를 풀어 이들을 뒤쫓는다. 도망치던 장씨 부인은 뱃사공처럼 행세하는 도적들에게 붙잡히고 아들의 생사를 모른 채 헤어진다. 간신히 도망치던 장씨 부인은 용왕의 장녀의 도움으로 도적들을 물리치고 탈출에 성공하지만 더 이상 의지할 데가 없었다. 도적 소굴에서 얻은 백옥함에 유언을 적고 투신자아살하려 할 때 한 아낙네가 나타나 만류하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이 여인은 장씨 부인의 먼 친척이었다. 이 때 물에 빠져 떠내려가던 충렬은 남경 상인들에게 구조되지만 방황을 계속하게 된다. 초나라 땅까지 들어간 충렬은 굴원이 빠져 죽은 '회사정'의 벽에서 아버지의 유언을 발견하고 함께 죽으려던 중에 강희주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되고 친아들처럼 그의 집에서 지낸다. 만고의 충신 강희주는 단신으로 황성에 가서 황제에게 정한담과 최일귀의 처단을 호소하는 상소를 올리지만 오히려 역도로 몰려 옥문관까지 유배가게 되고 강희주 일가는 궁에 딸린 노비로 전락하게 된다. 강희주의 딸과 결혼하여 지내던 충렬은 화를 피해 집을 떠나 산으로 들어간 후 자포자기 끝에 출가를 결심한다. 광덕산 백룡사에서 노승을 만나 무술을 배운다. 노승은 충렬에게 신술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손오공에게 신묘한 술법을 가르쳐 준 수보리 조사의 열의를 가지고 주야로 소년을 가르쳤다. 소년의 총명과 발전이 손오공에 못지 않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정한담과 최일귀도 엄청난 무공과 도술을 쌓아 나간다. 한편 세력이 강성해진 남북의 오랑캐들이 합세하여 명나라를 침공하자 역적 정한담과 최일귀는 천자를 배신하고, 명나라를 공격하는 오랑캐의 선봉장 노릇을 한다. 

명나라가 패전을 거듭하여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신기한 용인갑과 장성검으로 무장한 유충렬이 천사마를 타고 나타나 도술과 무예로 이들을 제압하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천자를 구출한 뒤, 잡혀 간 황후와 황태자를 구출한다. 또한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어머니와 아내를 돌아오는 길에서 되찾는다. 영웅이 된 충렬은 황제와 의형제를 맺고 승상의 지위에 오르며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

 

 

 

핵심 정리

• 갈래 : 국문 소설, 영웅 소설, 군담 소설
• 성격 : 전기적(비현실적), 우연적, 영웅 일대기적
• 배경 : 중국 명나라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제재 : 유충렬의 영웅적 일대기
• 주제 : 삶의 고난을 극복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유충렬의 영웅적 활약상 
• 특징 :
 ① 영웅적 일대기의 구조를 갖춘 대표적인 작품
 ② 선악의 대립을 극명하게 제시
 ③ 천상계와 지상계의 이원적 공간 구조
 ④ 유교, 불교, 도교 사상이 바탕


 ‘유충렬전’에 나타난 영웅의 일대기 구조

 - 고귀한 혈통 : 현직 고관 유심의 외아들로 태어남.
 - 비정상적 출생 : 부모가 산천에 기도하여 늦게 아들을 얻음.
 - 탁월한 능력 : 하강한 천상인으로 비범한 능력을 지님.
 - 유년기의 위기 : 간신 정한담의 모함으로 죽을 위기에 처함.
 - 구출, 양육 : 강희주를 만나 그의 사위가 되고, 노승을 만나 도술을 배움.
 - 성장 후의 위기 : 정한담의 반란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음.
 - 고난 극복과 승리 : 반란을 평정하고 헤어진 가족을 만나 부귀영화를 누림.

 

 <유충렬전>의 첫 부분에는 출생 과정에서 유충렬이 천상계(天上界)에서 자미원 장성으로서, 천상계의 적 익성(정한담)과 싸운 바 있다는 작품 전체의 전개에 대한 복선(伏線)을 제시하여 두 인물이 지상계(地上界)에서 대결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유충렬전의 이원적 구조 

 천상계의 신선들로서 선인(善人) 자미성은 유충렬, 악인(惡人) 익성은 정한담이다. 이들은 천상의 백옥루 잔치에서 싸운 죄로 인간 세상에 유배된다. 지상에 내려와 유충렬은 충신, 정한담은 간신이 된다. 천상에서의 대립이 지상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대개의 영웅 소설들은 천상계와 지상계라는 이원적 공간을 설정하고, 주인공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 지상계로 추방된다는 적강 화소(謫降話素)를 지닌다. 

 

주요 인물

유충렬 : 천상에서의 이름은 자미원 장성, 지상으로 내려와 유심의 아들이 됨 신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정의를 위하여 싸우는 전형적인 영웅이다.   
유심 : 유충렬의 아버지, 개국 공신의 후예로 정직하고 충성스러운 인물이다. 
강희주 : 유충렬의 장인, 퇴재상으로 유심처럼 충직한 인물 
정한담: 명나라의 신하. 천상에서 적강한 익성. 천상에서부터 충렬과 대립하는 악인으로 지상으로 유배되어 명나라의 간신이 되며 유충렬과 대립한다. 
최일귀 : 천상에서의 이름은 이걸 정한담과 함께 천자에게 반기를 드는 악인이다.  

인물 유형

주동 인물 반동 인물
유충렬, 유심, 강희주, 백룡사 노승, 왕공렬, 조정만 등 정한담, 최일귀, 옥관 대사, 미룡, 정문걸, 천극한 등
 
 

작품 해설

 

  이 작품은 ‘유충렬’이라는 영웅의 일대기를 그린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영웅 소설이자 군담 소설이다. 작품의 주요 내용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적강한 유충렬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후 위기에 처한 나라와 가문을 구한다는 것으로, 「주몽 신화」에서 시작된 전통적인 영웅 서사 구조를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은 주전파와 주화파의 대립이나 인조의 남한산성 피란, 병자호란의 패배로 인해 대군과 비빈이 청나라로 잡혀간 것 등과 같이 병자호란과 관련된 당대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는데, 특히 공간적 배경이 중국의 명나라인 것, 주인공인 유충렬이 두 번에 걸쳐 호국을 정벌하고 호왕을 살육하는 것은 병자호란의 패배로 인한 민족적 자존심의 회복과 청나라에 대한 당대 민중의 적개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수능특강)

 ‘유충렬전’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 영웅 소설이자 군담 소설로, 영웅의 일생이라는 유형적 구조에 비교적 충실한 작품이다. 천상계의 인물이 죄를 짓고 인간계로 귀양 온다는 설정에서 적강(謫降) 소설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작품의 두 인물인 ‘유충렬’과 ‘정한담’은 각기 충신과 간신의 전형을 보여 주는데, 이들의 대립을 통해 조선 후기 혼란한 사회 질서 속에서 ‘충(忠)’의 가치를 보여 주려 한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한편 이들 인물의 대립은 선과 악의 대결로 볼 수도 있는데, 유충렬이 승리함으로써 작품은 권선징악으로 결말을 맺게 된다.(지학사, T-Solution)

 

 

 ‘유충렬전’에 나타난 시대 인식

 이 작품에 나타나는 무능한 황제와 역경에 처한 왕가의 비굴한 모습은 권좌에서 실세(失勢)한 계층의 권력층에 대한 반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황제를 도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것을 통해 다시 권력을 잡고자 하는 그들의 꿈이 투영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또 호국을 두 번에 걸쳐 정벌하며 호왕을 죽이는 것을 통해 병자호란 이후 오랑캐의 나라인 청나라에 대한 당시 민중의 적개심을 엿볼 수 있다. (지학사)

 ‘유충렬전’의 인물 간 대립 관계

 이 작품에서 선인(善人) 자미성은 유충렬, 악인(惡人) 익성은 정한담이다. 이들은 천상에서 싸운 죄로 인간 세상에 유배된 인물들로, 인간 세상에서 유충렬은 충신, 정한담은 간신이 된다. 천상에서의 대립 관계가 지상까지 이어진 것이다. (지학사)


영웅소설 구조에 영웅 유충렬의 활약을 통쾌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군담소설


조선 후기에 민간에 널리 읽힌 ‘유충렬전'은 영웅의 일생을 작품화한 전형적인 군담소설로, 주인공의 비정상적인 출생, 성장 과정에서의 시련과 극복, 그리고 영웅적 투쟁과 화려한 승리라는 구조로 짜여 있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명나라 조정과 중국 대륙이지만,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형성된 우리 민족의 저항 의식을 소설 속의 허구적인 영웅을 통해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외적의 침입으로 조성된 심각한 국가 분위기에다 간신 정한담의 반역을 중첩시켜 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 점, 간신과 외적을 평정하는 영웅적 투쟁의 기나긴 과정을 흩어져 고난에 처해 있는 가족과의 만남의 과정으로 그려내 감격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결국 ‘유충렬전’을 읽었던 당시의 독자들은 고조되는 위기에 절망감에 빠지기도 하고, 영웅적 활약과 감격적인 상봉에 환호하기도 했던 것이다.(예스24)


* ‘국가’와 ‘가족’ 『유충렬전』에서 읽어내야 할 두 개의 키워드


‘유충렬전’에서 고난을 경험하는 인물은 위로는 황제와 유심의 가족으로부터 아래로는 하층의 백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황제는 황성을 침범한 정한담에게 죽을 위기에 처하고, 황후와 태후는 외적에게 잡혀가 토굴 속에 갇힌다. 유심은 정한담의 주장에 맞서다 연경으로 유배를 당하며, 장부인은 정한담의 추적을 피해 도망하다 수적 마용에게 붙잡혀 가고, 어린 유충렬은 물에 내던져져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 등 전란으로 인해 삶의 근거를 잃고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아픔과 삶의 고단함을 심각하지만 치밀한 묘사로 보여 준다.
독자는 유충렬이라는 영웅적 인물이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것에 환호했던 거이며,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안겨준 외적과 역신에 대해 지나칠 정도의 증오를 표출했던 것이다. 그 환호는 평화로운 삶에 대한 환호이며, 그 증오는 일상의 삶을 파괴하는 전란에 대한 증오였다. (예스24)

 

유충렬전 ❘ 열화당 책박물관
유충렬전(劉忠烈傳)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본 사항

『유충렬전(劉忠烈傳)』은 작자 연대 미상의 창작 영웅소설이다. ‘유충렬전(柳忠烈傳)’·‘유충렬전(兪忠烈傳)’ 등으로도 표기하며, 이본에는 필사본·목판본·활자본 등 50여 종이 있다.

필사본으로는 3권 1질의 한글 행서체 『유충렬전(劉忠烈傳)』과 1권 1질의 국한문 혼용체 『유충렬전(柳忠烈傳)』, 2권 1질의 한글 행서체에 한자를 간간이 삽입한 『유충렬젼』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외에도 다수의 필사본이 있다.

서울대학교 가람문고에는 2권 1질의 한글 행서체 『유충렬전(劉忠烈傳)』이 있으며, 고려대학교 도서관에는 1권 1질의 이두체 『유충렬전(劉忠烈傳)』이 있다. 그밖에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구(舊) 김동욱(金東旭) 소장본)에 일곱 종의 한글 필사본 이본이 있다.

나손문고본에는 단권 『유충렬젼』, 상하 합권의 『유츙열젼』, 상하 2권의 『유충렬전(劉忠烈傳)』, 하권만 있는 『유충렬전(兪忠烈傳)』과 『뉴충열젼』·『유충열전(劉忠烈傳)』, 그리고 상권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는 1권 1질인 『유충렬젼』이 있다.

목판본으로는 서강대학교 도서관에 상하 합권으로 된 완판본 『유충렬젼』과, 상권이 빠져 있는 『유충렬젼』 하권이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에는 상하 합권으로 된 완판본 『유충렬젼』과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상하 합권으로 된 완판본 『유충렬젼』 2종이 있다.

활자본으로는 덕흥서림본·대창서원본(大昌書院本)· 세창서관본의 세 가지가 있다. 모두 단권으로 되어 있으며 판수에 따라서 면수가 다르다. 이상과 같이 『유충렬전』은 판본이 많고, 활자본의 중판 횟수가 20여 회가 넘는다. 이것은 이 소설이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오늘날 전하는 판본은 모두 19세기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정한담을 생포하는 과정과 유충렬이 강 낭자와 결연하는 과정이 중국소설 『설인귀전』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18세기 후반기 이후에 창작된 소설로 평가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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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렬전(劉忠烈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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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렬전 - 예스24

수능, 논술문제 단골 소재 ‘유충렬전’을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썼다. 영웅소설 구조에 영웅 유충렬의 활약을 통쾌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군담소설로, 주인공의 비정상적인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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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수능특강, 지학사, T-Solution, 천재교육, 예스2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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