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고전산문

이옥 '심생전' 전문

열공햐 2021. 10. 1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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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생전(沈生傳)

이옥 

 

심생(沈生)은 서울의 양반이다. 그는 약관(弱冠)에 용모가 매우 준수하고 풍정(風情)이 넘치는 청년이었다.

 

자료 : 해치의 정일우 배우


어느날 그가 운종가*에서 임금의 거둥을 구경하고 돌아오던 길에 어떤 건장한 계집종이 자주빛 명주 보자기로 한 여자를 덮어씌워 업고 가는 것을 보았다. 한 계집애가 붉은 비단신을 들고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심생은 겉으로 그 몸뚱이를 겨냥해보고 어린애가 아닌 줄 짐작한 것이다.

 

*운종가(雲從街) : 많은 사람이 구름 같이 모였다 흩어지는 거리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종로 일대는 시전이 설치되어 육의전을 비롯한 많은 점포가 집중적으로 발달되어 있어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으므로 운종가라 불리었다. → 지금의 종로 [가로], 종루가 [가로]

그는 바짝 따라붙었다. 그 뒤꽁무니를 밟다가 더러 소매로 스치고 지나가보기도 하면서 계속 눈을 보자기에서 떼놓지 않았다. 소광통교(小廣通橋)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개바람이 앞에서 일어나 자주 보자기가 반쯤 걷히었다. 보니 과연 한 처녀라. 봉숭아빛 뺨에 버들잎 눈썹, 초록 저고리에 다홍치마, 연지와 분으로 가장 곱게 화장을 하였다. 얼핏 보아서도 절대가인(絶代佳人)임을 알 수 있었다.

 


처녀 역시 보자기 안에서 어렴풋이 미소년이 쪽빛 옷에 초립(草笠)을 쓰고 왼편이나 오른편에 붙어서 따라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마침 추파(秋波)*를 들어 보자기 사이로 주시하든 참이었다.

 

*추파 : 1. 가을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물결. 2.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은근히 보내는 눈길. 3.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태도나 기색.

보자기가 걷히는 순간에 버들 눈, 별 눈동자의 네 눈이 서로 부딪쳤다. 놀랍고 또 부끄러웠다. 처녀는 보자기를 걷잡아 다시 덮어쓰고 가버리었다.

 



심생은 어찌 이를 놓칠 것인가. 바로 뒤좇아서 소공주동(小公主洞 : 지금의 소공동) 홍살문 안에 당도하자 처녀는 한 중문(中門)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멍하니 무언가 잃어버린 것처럼 한참을 방황했다. 그러다가 어떤 이웃 할멈을 붙들고 자세히 물어보았다.

호조(戶曹)에서 계사(計士)*로 있다가 은퇴한 집이고, 다만 딸 하나를 두었는데, 나이는 16,7세였다. 아직 혼사를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 딸이 거처하는 곳을 물었더니 할멈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계사(計士) - 호조에 속한 회계원. 의관·역관과 함께 중인 출신들의 기술직


"이 조그만 네거리를 돌아서면 회칠한 담장이 나오고, 담장 안의 한 골방에 바로 그 처자가 거처하고 있지요."

그는 이 말을 듣고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 저녁에 집안 식구에게 거짓말을 꾸며대었다.

“동창 아무개가 저와 밤을 같이 지내자고 하는군요. 오늘 저녁에 가볼까 합니다."


그는 행인이 끊어지기를 기다려 그 집 담을 넘어 들어갔다. 그 때 초승달이 으스름한데 창밖으로 꽃나무가 썩 아담하게 가꾸어졌고, 등불이 창호지에 비치어 아주 환했다. 심생은 처마 밑 바깥벽에 기대앉아서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이 방안에 두 매향(梅香 : 몸종을 가리키는 말)과 함께 그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나지막한 소리로 언문 소설(諺文小說)을 읽는데 꾀꼬리 새끼 울음같이 낭랑한 목청이었다.

삼경쯤에, 계집애는 벌써 깊이 잠들었고, 그녀는 그제야 등불을 끄고 취침하였다. 그러나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뒤척 무언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심생은 잠이 올 리가 없거니와 또한 바스락 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그대로 새벽종이 울릴 때까지 있다가 도로 담을 넘어 나왔다. 그 뒤로는 이것이 일과가 되었다. 저물어서 갔다가 새벽이면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20일 동안 계속하였으나, 그래도 그는 게을리 아니하였다. 그녀는 초저녁에는 소설책을 읽기도 하고 바느질을 하기도 하다가 밤중에 이르러 불이 꺼지는데, 이내 잠이 들기도 하고 더러 번민으로 잠을 못 이루기도 하는 것이었다.

6,7일이 지나자 문득' 몸이 편치 못하다'고 겨우 초경(初更)부터 베개에 엎드려 자주 손으로 벽을 두드리며 긴 한숨 짧은 탄식을 내쉬어 숨결이 창밖까지 들리었다. 하루 저녁 하루 저녁 갈수록 더해만 갔다.

스무날 째 되는 밤이었다. 그녀가 갑자기 마루로부터 내려와 바깥벽을 돌아 심생이 앉아 있는 처소에 당도하였다. 심생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불끈 일어서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도련님은 소광통교 변(邊)에서 만난 분이 아니세요? 저는 이미 스무날 전부터 도련님이 다니시는 줄 알았답니다. 저를 붙들지 마셔요. 한 번 소리를 내면 다시는 여기서 못나갑니다. 절 놓아주시면 제가 뒷문을 열고 방으로 드시게 할게요. 얼른 놓으셔요."

심생은 곧이듣고 물러서서 기다렸다. 그녀는 홱 돌아서 들어가 버렸다. 방에 들어가서는 계집애를 부르더니,

"너 엄마한테 가서 큰 주석 자물쇠를 주시라고 하여 갖고 오너라. 밤이 깜깜해서 사람을 겁나게 하는구나."

계집애가 웃방 마루로 건너가서 금방 자물쇠를 들고 왔다. 그녀는 열어주기로 약속한 뒷문에다 아귀진 쇠꼬챙이를 분명히 꽂고 다시 손으로 자물쇠를 채웠다. 일부러 쇠를 채우는 소리를 찰카닥 내었다. 그리고 곧 등불을 끄고 고요히 잠이 깊이 든 듯하였으나 실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심생은 속임을 당하여 분통이 났다. 한편 생각하면 그나마 만나본 것만도 다행이다 싶었다. 여전히 쇠를 채운 방문 밖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다음날에 또 가고, 다음날에도 갔다. 방에 쇠가 채워져 있어도 조금도 해이해짐이 없이, 비가 오면 유삼(油衫)을 둘러쓰고 가서 옷이 젖어도 관계하지 않았다. 이렇게 다시 열흘이 지났다. 밤중에 온 집안이 모두 쿨쿨 잠들었고, 그녀 역시 등불을 끄고 한참이나 있다가 문득 발딱 일어나서 계집애를 불러 얼른 등에 불을 붙이라고 재촉하더니,

"얘 너희들 오늘 밤엔 웃방으로 가서 자라.“

두 매향(梅香)이 방문을 나가자, 그녀는 벽에 걸린 쇳대를 가지고 자물쇠를 따고 뒷문을 활짝 열었다. 심생을 부른다.

"도련님, 들어오세요."

심생은 얼떨떨하여 자기도 모르게 몸이 벌써 방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다시 그 문에 쇠를 채우고 심생에게 말했다.

"도련님, 잠깐 앉아계셔요."

웃방으로 가서 자기 부모를 모시고 나왔다. 그 부모는 보고 어리둥절하였다. 그녀는 말을 꺼내었다.

 


"놀라지 마시고 제 말을 들어보셔요. 제 나이 열일곱으로 발걸음이 일찍이 문 밖을 나가지 못하옵다가, 월전(月前)에 우연히 임금님의 거둥을 구경하고 돌아오던 길에 소광통교에서 덮어쓴 보자기가 바람에 날려 걷히었습니다. 마침 그 때 한 초립 도령과 얼굴이 마주쳤어요. 그날 밤부터 도련님이 안 오시는 날이 없이 이 방문 밑에 숨어 기다린 지 이제 이미 30일이 지났답니다. 비가와도 오시고, 추워도 오시고, 문에 쇠를 채워 거절해도 역시 오시었어요.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소문이 밖으로 퍼져서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되면 밤에 들어왔다가는 새벽이면 나가는데 자기 홀로 창벽 밖에서 있은 줄을 누가 믿겠습니까. 사실과 다르게 누명을 뒤집어쓰지요. 제가 필야(必也, 틀림없이 꼭) 개에게 물린 꿩이 되는 셈이지요. 그리고 저 분은 양반댁 도령으로 나이가 바야흐로 청춘이라 혈기가 아직 정(定)치 못하여 다만 나비와 벌이 꽃을 탐낼 줄만 알고 바람과 이슬에 맞음을 돌보지 않으니 며칠 못가서 병이 나지 않겠습니까. 병들면 필야 일어나지 못하리니, 그렇게 되면 제가 죽이지 않았어도 제가 죽인 셈입니다. 비록 남이 모르더라도 반드시 음보(陰報, 은밀한 보복)가 있게 됩니다. 또 제 몸은 한낱 중인(中人)집 딸에 불과합니다. 제가 무슨 절세의 경성지색(傾城之色, 임금이 혹하여 나라가 기울어져도 모를 정도의 미인이라는 뜻으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미인을 이르는 말.)으로 물고기가 숨고 꽃이 부끄러워할 만한 용모를 지닌 것도 아닌데, 도련님께서 솔개를 보고 매로 여기시어 제게 지성을 바치되 이토록 부지런히 하옵십니다. 제가 만일 도련님을 따르지 않으면 하늘이 반드시 싫어하시어 복을 제게 주시지 않을 거예요. 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근심하지 마옵소서. 아! 저는 부모님께서 연로하시고 동기간이 없으니 시집가서 데릴사위를 맞아 살아계실 때에 봉양을 다하다가 돌아가신 뒤에 제사를 모시면 제 소망에 족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일이 뜻밖에 이렇게 되었으니, 이 역시 하늘이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녀의 부모는 어안이 벙벙했으나 달리 할 말이 없었고, 심생 더욱 아무 말도 못했다. 그래서 같이 동침을 하게 되었다. 애타게 사모하던 끝에 그 기쁨이야 오죽하였으리오. 그날 밤 방에 들어간 이후로 저물게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녀의 집은 본래 부유했다. 그로부터 심생을 위하여 산뜻한 의복을 정성껏 마련해 주었으나, 그는 집에서 이상하게 여길까 보아서 감히 입지 못하였다. 그러나 심생은 아무리 조심을 하여도 집에서는 그가 바깥에서 자고 오래 돌아오지 않는데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절에 가서 글을 읽으라는 명이 내리었다. 심생은 마음에 몹시 불만이었으나, 집의 압력을 받고 또 친구들에게 이끌리어 책을 싸들고 북한산성(北漢山城)으로 올라갔다.

선방(禪房, 참선하는 방)에 머문 지 근 한 달 가까이 되었다. 심생에게 그녀의 언문(諺文, 예전에, ‘한글’을 이르던 말) 편지를 전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편지를 펴보니 유서(遺書)로 영영 이별하는 내용이 아닌가. 그녀는 이미 죽은 것이다. 그 편지의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봄추위가 아직도 쌀쌀 하온데 절간의 글공부에 옥체 평안하시옵니까. 항상 사모하옵는 바 어느날이라 잊으리까. 소녀는 도련님께옵서 떠나신 이후로 우연히 한 병을 얻어 점점 골수에 사무쳐 백약이 무효하온지라 이제 필경 죽음밖에 없는 줄 알았사옵니다. 소녀처럼 박명(薄命, 복이 없고 팔자가 사나움)한 몸이 살아본들 무엇하오리까마는, 우선 세 가지 큰 한(恨)을 가슴에 안고 있으니 죽음에 당해서도 눈을 감지 못하옵니다. 소녀 본래 무남독녀로 부모님의 사랑하옵심을 받자와 장차 부모님께서는 적당한 사위를 구하여 만년(晩年, 나이가 들어 늙어 가는 시기)의 의지를 삼고 후일의 계책을 마련코자 하였더니,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음)라 뜻밖에 악연(惡緣)에 얽히었군요. 여라(넝쿨진 풀의 일종)*가 외람되게 높은 소나무에 붙었으나 주진지계(주·진 양씨가 진(秦)나라의 악정(惡政)을 피해 무릉도원에 들어가 서로 혼인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혼인함을 가리키는 말)*가 이제 단망(斷望, 희망이 끊어짐)*이옵니다. 이는 소녀가 아무 낙이 없이 시름하다가 마침내 병으로 죽음에 이른 까닭이옵고, 이제 고당학발(늙으신 부모님)*은 영원히 의뢰할 곳이 없게 되었사오니, 이것이 첫째 한이옵니다. 여자가 출가하면 비록 종년이라도 문에 기대어 손님을 맞는 기생의 몸이 아닌 다음에야 남편이 있고 또 시부모가 있겠지요. 세상에 시부모가 모르는 며느리가 있사오리까. 소녀 같은 몸은 남의 속임을 받아 몇 달이 지나도록 일찍이 도련님 댁의 늙은 여자 하인 하나도 보지 못하였사오니, 살아서 부정한 자취를 남겼고, 죽어서 돌아갈 곳 없는 귀신이 될 것이라 이것이 둘째 한이옵니다. 부인이 남편을 섬기매 음식을 장만하여 공궤(供饋, 음식을 줌)*하고 의복을 지어서 입으시도록 하는 일보다 큰 일이 있을까요. 도련님과 상봉한 이후 세월이 오래지 않음도 아니요, 지어드린 의복이 적다고 할 수도 없는데, 한 번도 도련님에게 한 사발 밥도 집에서 자시게 못하였고, 한 벌 옷도 입혀드리지 못하였으며, 도련님을 모신 것은 다만 침석(枕席)에서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셋째 한이옵니다. 그리고 상봉하온 지 얼마 아니되어 문득 길이 이별하옵고, 병으로 누워 죽음이 다가왔으나 대면하와 영결을 못하옵니다. 이러한 여자의 슬픔을 어찌 족히 군자(君子)에게 말씀드리오리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러 창자가 이미 끊어지고 뼈가 녹으려 하옵니다. 비록 연약한 풀이 바람에 쓰러지고 시들은 꽃잎이 진흙이 된다 하온들 끝없는 이 원한은 어느날이라 다하리오. 오호(嗚呼, 슬플 때나 탄식할 때 내는 소리)*라! 창 사이의 밀회(密會, 남몰래 모이거나 만남)는 이제 그만입니다. 바라옵건대 도련님은 소녀를 염두에 두시지 마옵시고, 더욱 글공부에 힘쓰시어 일찍이 청운(靑雲, 푸른 빛깔의 구름. 높은 지위나 벼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뜻을 이루옵소서. 옥체를 내내 보중하옵기 천만 비옵니다.」

 

* 여라(女蘿) - 넝쿨진 풀의 일종. 지체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결탁하는 것을 말함.

* 주진지계(朱陳之計) - 주·진 양씨가 진(秦)나라의 악정(惡政)을 피해 무릉도원에 들어가 서로 혼인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혼인함을 가리키는 말.

*단망 : 희망이 끊어짐. 또는 희망을 끊어 버림.

* 고당학발(高堂鶴髮) : 늙으신 부모님을 가리키는 말.

*공궤 : 음식을 줌.

*오호 : 슬플 때나 탄식할 때 내는 소리.

심생은 이 편지를 받고 자기도 모르게 울음과 눈물을 쏟았다. 이제 비록 슬프게 울어보나 무엇하겠는가. 그 뒤에 심생은 붓을 던지고 무변(武弁, 무과 출신의 벼슬아치)이 되어 벼슬이 금오랑(金吾郞, 의정부의 낭관)*에 이르렀으나 역시 일찍 죽고 말았다.

* 금오랑(金吾郞) - 義禁府의 郞官. 각 관아의 당하관(堂下官)을 이르는 말. 주로 육조(六曹)의 정랑(正郞)·좌랑(佐郞)이나 그밖의 실무를 담당하는 6품의 관원을 이른다. 郞僚. 郞吏. 郞署. 郞廳.

 

매화외사(梅花外史 : 작자인 李鈺의 별호) 가로되, 내가 열두 살 때에 시골 서당에서 글을 읽는데 매일 동접(같은 곳에서 함께 공부함. 또는 그런 사람이나 관계)들과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였다. 어느 날 선생이 심생(沈生)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시고, "심생은 나의 소년시 동창이다. 그가 절에서 편지를 받고 통곡할 때에 나도 보았더니라.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듣고 지금까지 잊지 않았구나."

이어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이 풍류 소년(風流少年)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일에 당해서 진실로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뜻을 세우면 규중(閨中, 부녀자가 거처하는 곳. [유의어] 규방, 도장방, 유방)의 처자라도 오히려 감동시킬 수 있거늘, 하물며 문장이나 과거야 왜 안 되겠느냐."

우리들은 그 당시 듣고 매우 새로운 이야기로 느끼었다. 뒤에 정사(情史, 인정과 남녀 연정에 관한 것을 기록한 이야기책)* 를 읽어보니 이와 비슷한 이야기도 많았다. 이에 이를 추기(追記, 본문에 덧붙여서 씀. 또는 그런 문장)하여 정사의 보유(補遺, 빠진 것을 보태어 채움)를 삼을까 한다.
 

 

 

 

핵심 정리

  • 갈래 : 고전소설,  한문소설, 전(傳), 애정소설
  • 성격 : 비극적, 애정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 조선시대, 종로
  • 제재 : 신분이 다른 두 남녀의 사랑
  • 주제 : 신분의 차이와 속박으로 인한 남녀의 비극적 사랑
  • 특징 : 해피엔딩이라는 고소설의 일반적 구성을 탈피 <운영전: 수성궁몽유록> 처럼 비극적 결말을 확보한 러브스토리라는 점에서 사실성을 확보하였다고 할 수 있다.
    ①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논평이 덧붙음
    ② 혼사 장애 모티프가 나타남
  • 출전 : 김려(1766~1822)가 편찬한 〈담정총서 潭庭叢書〉

 

 

 

이옥(李鈺, 1760년 - 1813년 6월 5일)

  조선 후기의 시인이자 문인이다. 본관은 전주이다. 자(字)는 기상(其相), 호는 문무자(文無子), 매화외사, 화석산인 등이다. 효령대군의 후손이었으나 서얼이었다. 경기도 화성군 출신.  

 

  한성으로 올라가 성균관의 유생이 되고, 유생 재학 중 1790년(정조 25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정조의 문체반정으로 과거 시험을 단념하고 낙향하여 남양에서 은둔하며 시문과 학문으로 소일하였다. 발해고의 저자 실학자 유득공의 이종 사촌 형제간이 된다.

 

  문체반정 때문에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이옥은 당대의 폐쇄적인 가치관 때문에 꿈을 펴지 못하게 된 그는 '심생전'에 드러난 심생과 소녀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출신으로 증조부는 가선대부 호위별장 이만림이고, 할아버지는 어모장군 행용양위부사과를 지낸 이동윤이며, 아버지는 이상오이고, 어머니는 남양홍씨로, 이성현감 홍이석(洪以錫)의 딸이다. 발해고의 저자 실학자 유득공은 그의 이모의 아들로, 이종 사촌형이 된다. 아버지 이상오의 본부인 남양홍씨는 홍이원(洪以源)의 딸이자 홍시구(洪時龜)의 손녀였는데, 남양홍씨가 죽자 다시 홍이석의 딸 남양홍씨와 재혼했는데, 홍이석은 홍시구의 조카이자 홍시주의 아들로, 이옥의 아버지 이상오는 전처의 6촌 여동생을 후처로 맞이한 것이다. 아버지의 전처 홍이원의 딸에게서는 2명의 이복 형이 있었다.

  부계로는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11대손으로 왕족 대우는 8대조 파성군 이철동에게서 끝났다. 8대조 파성군 이철동이 서자였고, 그후 7대조 광윤, 6대조 간, 5대조 경유는 정실 소생의 적자였지만, 고조부 이기축은 인조반정 공신으로, 병마절도사 이경유의 서자였다. 외할아버지 홍이석은 병마와 수군절도사를 지낸 홍시주의 서자였으며, 외할머니 우계이씨는 남인 문신 이서우의 서녀였다.

  아버지 이상오는 1754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본처 남양홍씨 홍이원의 딸이 죽자, 홍이원의 먼 친척인 홍이석의 딸과 재혼하였다. 그의 선대는 양주군 별비면 고산리(현, 의정부시 고산동)에서 살았지만, 의정부 출신이던 이상오는 처가가 있는 화성군 남양면으로 이주해서 정착했다. 남양면 백곡리는 그의 외가의 세거지로, 외증조부 홍시주의 묘와 백곡산성 주변에는 외종조부 홍이연, 외할아버지 홍이석의 묘소가 있다.

  그의 가계는 여유가 있어 장서를 소지했고, 종을 몇명 두어 어장을 운영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이종사촌 유득공을 통해 청나라의 서적을 구해서 읽기도 했다. 젊어서 한성으로 올라가 성균관의 유생이 되었고, 성균관 유생 재학 중이던 1790년(정조 25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생원이 되었다. 그러나 정조의 문체반정으로 과거 시험을 단념하고 낙향, 충군을 청하는 상소까지 있었지만 충군에 대한 청원은 하지 않고 낙향했다. 1798년 봄 경상도 삼가현의 요청으로 내려가 1801년(순조 1) 2월에 귀향했다.

  1801년(순조 1) 한성으로 올라왔으나 정조는 사망한 상태였고, 신유옥사 이후 관직을 단념하고 경기도 화성군 남양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시문과 학문, 저술 활동으로 소일하였다.

  그는 성균관 유생 시절에 만난 김려(金鑢)와 그의 동생 김선(金鏇), 강이천(姜彛天) 등과 교유하였다.

 

 

 

줄거리 

  어느 날 심생이 종로에서 임금의 행차를 구경하고 돌아오다가 계집종에게 업혀가는 한 소녀를 본다. 심생은 소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뒤를 따라가 보니, 그 소녀가 중인(中人, 양반과 평민의 중간에 있던 신분 계급)의 딸임을 알게 된다. 심생은 사랑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 밤마다 그녀의 집 담을 넘어가기를 20일 동안 계속했으나 좀처럼 만날 수가 없었다. 결국 심생의 진실된 사랑을 안 소녀는 심생이 자신을 기다린지 30일이 되는 날 심생을 방으로 불러들이고 자신의 부모를 설득시킨 뒤, 동침한다. 그 뒤 심생은 밤마다 그녀를 찾았고 이를 눈치 챈 심생의 부모는 심생에게 북한산성 산사로 올라가 공부하도록 한다. 부모의 명을 거스를 수가 없어 산사에 들어간 심생은 글공부를 하던 중 그녀가 보낸 유서(遺書)를 받는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편지를 읽고 심생도 슬픔에 싸여 일찍 죽고 만다.

  이에 대해 매화외사[이옥의 호]는 이 이야기가 스승에게 직접 들은 실제 이야기라고 밝히면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서든 반드시 이루겠다는 뜻이 있으면 못 이룰 게 없다는 평을 하며 심생의 일을 적어 ‘정사’에 빠진 것을 보충한다고 말한다.


 

이해와 감상

  <심생전>은 조선 정조 때에 이옥(李鈺)이 지은 전(傳). 김려(金錤)가 편찬한 ≪담정총서 捻庭叢書≫ 권11 〈매화외사 梅花外史〉에 실려 있다. 그의 전(傳) 21편 중 유일하게 신분이 다른 두 남녀의 애정을 소재로 입전(立傳)한 작품이다. 

 

  <심생전>은 양반가 자제인 심생과 중인 계층인 소녀가 나누는, 신분이 다른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작품으로, 자유연애 사상, 여성 의식의 성장, 신분 질서의 동요, 중인층의 성장 등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함께 엿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크게 심생과 소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전반부와 심생의 사랑에 대한 매화외사(작가)의 평이 담긴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 두 부분의 주제 의식이 약간의 차이를 드러낸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회상에는 양반 자제인 심생이 자신의 마음에 따라 소녀와 사랑하고, 소녀도 자기 의지에 따라 부모를 설득하는 주체적인 모습을 통해 자유연애 사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엿볼 수 있으며, 소녀가 자신의 의도를 부모에게 정확히 말하는 장면과 언문 소설을 읽는 모습을 통해, 여성의 발언권 신장과 소설의 주 독자층이 된 여성의 의식 성장을 엿볼 수 있다. 양반가 자제인 심생이 소녀가 중인층임을 알고도 사랑을 하는 것이나, 혼사 장애가 잘 드러나지 않던 유교적 질서에서 신분 차이 때문에 혼사 장애가 발생하였다는 것은 당시에 신분 질서가 동요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녀의 아버지가 호조에서 회계 일을 맡은 중인으로서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는 사실은 경제력이 뛰어난 중인층이 성장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신분의 차이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있으나 작품 결말에 그려진 심생의 죽음은 인상적이다. 또 주인공 여자는 춘정(春情)에 들뜬 심생을 슬기롭게 거절하기도 하고, 자신의 뚜렷한 주관으로 사랑을 받아들이기도 하며, 신분 때문에 겪은 불우한 현실을 토로함으로써 자신도 떳떳한 개체적(個體的) 인간임을 선언하기도 한다. 이같이 자신의 삶에 적극적이면서도 강한 의지를 보이는 여성상은 조선 후기의 새로운 사회상을 짙게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옥은 〈이언 俚諺〉에서 당대 여성의 섬세한 감정을 그려내고 있는데 〈포호처전 捕虎妻傳〉에 나오는 숯장사의 아내에게서도 이러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생규장전 李生窺墻傳〉 또는 〈춘향전〉을 연결시켜주는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작가 이옥은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이별하는 비극적인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 ‘심생의 사랑’을 통해 신분 제도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낸다. 이옥이 이 작품을 썼던 당시에 정조는 정통적인 문체에서 벗어난 소설체의 글쓰기를 하는 이들을 억압했다. 따라서 이옥은 이러한 주제를 은폐하고 희석하기 위해 소설 말미에 ‘매화외사(梅花外史)’의 평결 부분을 붙인 것이다.

  젊은 남녀의 순수한 애정이 한 사회의 규범에 의해 저지당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이 작품은 신분제로 인한 질곡을 문제시하고 있다. 소녀가 정성스레 마련해 준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 것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폐쇄적이고 왜곡된 사회 속에서 자유분방한 인정(人情)의 발현을 추구하다가 좌절하는 운명을 그렸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충실한 ‘진정’이 결국 비극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당대 사회의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심생전’은 욕망의 성취와 비극적 최후를 통해 현실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애정 전기 소설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고 말할 수 있다.

 

  선생은 심생과 동창으로 절에서 편지를 받았을 때에 함께 있었다고 한다. 이옥은 이 내용이 실재한 것임을 밝히고, 정사(情史)에 추록하기 위하여 쓴다고 하였다. 또, 풍류낭자의 일을 본받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모든 일에 대하여 진실로 얻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못할 일이 없음을 일깨워 주려고 들려준 것이라는 교훈성을 내세우고 있다. 〈심생전〉은 서술자의 이러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두 남녀의 신분갈등으로 인한 혼사장애 모티프는 조선 후기 신분질서의 동요라는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여주인공이 언문소설을 즐겨 읽었다는 것을 통해서 당시 국문소설 독자층은 여주인공과 같은 부유한 중인이나 상인의 부녀자였음을 알게 한다. 〈심생전〉은 한 인물의 성격을 확인하기 위한 행적의 삽화식 서술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사건의 시말을 장면 제시적으로 서술을 하여 서술의 야담취향성을 보여 준다. 사건의 결말이 설화나 소설과는 달리 비극적인 것은 사실에 입각해서 기록해야 하는 전(傳)의 장르적 성격 때문이다. ≪참고문헌≫捻庭叢書, 李鈺의 文學理論과 作品世界의 硏究(金均泰, 創學社, 1986).(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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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沈生者, 京華士族也. 弱冠, 容貌甚俊韶, 風情駘蕩. 嘗從雲從街, 觀駕動而歸.
見一健婢以紫紬, 袱蒙一處子, 負而行. 婭鬟捧紅錦鞋, 從其後.
生自外量其軀, 非幼穉者也.
심생자 경화사족야 약관 용모심준소 풍정태탕 상종운종가 관가동이귀
현일건비이자주 복몽일처자 부이행 아환봉홍금혜 종기후
생자외량기구 비유치자야
심생(沈生)은 서울의 양반이었다. 이미 약관(弱冠)에 용모가 매우 준수하고, 풍정(風情)이 크게 넘쳤다. 일찍이 운종가(雲從街)에서 임금의 거둥을 구경하고, 돌아오고 있었다.
문득 한 건장한 계집종이 자주빛 비단 보자기로 한 여인을 씌우고, 업고 가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 아환(婭鬟)이 붉은 비단신을 들고 따르고 있었다. 심생은 겉으로 드러난 몸을 가늠하고, 어린애가 아닌 줄 알 수 있었다.
遂緊隨之. 或尾之, 或以袖掠以過, 目未嘗不在於袱. 到小廣通橋, 忽有旋風起於前.
吹紫袱褫其半, 見有處子.
桃臉柳眉, 綠衣而紅裳, 脂粉甚狼藉, 瞥見猶絶代色,
수긴수지 혹미지 혹이수략이과 목미상부재어복 도소광통교 홀유선풍기어전
취자복치기반 견유처자
도검유미 녹의이홍상 지분심낭자 별견유절대색
심생은 바짝 뒤따랐다. 뒤를 따르다가도, 더러는 소매로 스치고 지나치기도 하면서, 눈을 보자기에서 떼지 않았다. 소광통교(小廣通橋)에 이르렀을 때, 문득 돌개바람이 앞에서 일어났다.
자주빛 보자기가 반쯤 걷히자, 한 처자가 보였다. 봉숭아빛 뺨에 버들잎같은 눈썹, 초록 저고리에 다홍치마, 연지와 분으로 두텁게 꾸미고 있었다. 얼핏 스쳐보아도 가히 절대미인이었다.
處子亦於袱中, 依稀見美少年.
衣藍衣, 戴草笠, 或左或右而行, 方注秋波, 隔袱視之.
袱其褫, 柳眼星眸, 四目相擊. 且驚且羞, 斂袱復蒙之而去.
처자역어복중 의희견미소년
의남의 대초립 혹좌혹우이행 방주추파 격복시지
복기치 유안성모 사목상격 차경차수 염복부몽지이거
처자 역시 보자기 안에서 어렴풋이 미소년을 보고 있었다. 쪽빛 옷에 초립(草笠)을 쓰고, 혹은 왼쪽에서 혹은 오른쪽에서 따라오는 이를, 바야흐로 아름다운 눈짓을 보자기 사이로 지켜보곤 하였다.
이때 보자기가 걷히자, 버들 같은 눈, 별 같은 눈동자의 네 눈이 서로 부딪쳤다. 놀랍고도 또 부끄러웠다. 처자는 보자기를 추슬러 다시 덮어쓰고 가버렸다.
生如何肯捨?
直隨到小公主洞紅箭門內, 處子入一中門而去. 生惘然如有失, 彷徨者久.
得一鄰嫗而細偵之.
蓋戶曹計士之老退者家. 而只有一女, 年十六七, 猶未字矣.
생여하긍사
직수도소공주동홍전문내 처자입일중문이거 생망연여유실 방황자구
득일린구이세정지
개호조계사지노퇴자가 이지유일녀 연십육칠 유미자의
심생이 어찌 그대로 놓치겠는가.
바로 뒤좇아서 소공주동(小公主洞)의 홍살문 안에 당도하자, 처자는 한 중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심생은 무엇을 잃은 듯이 망연하게 한참을 방황했다. 그러다가 이웃 할멈을 붙들고 자세히 물어보았다.
호조(戶曹)에서 계사(計士)로 있다가 은퇴한 집이라고 했다. 다만 딸 하나를 두었는데, 나이는 십육칠 세였고, 아직 혼사를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2.

問其所處, 嫗指示之曰 :
“迤此小衚衕, 有一粉牆. 牆之內一夾室, 卽處女之住也.”
生旣聞之, 不能忘. 夕詭於家曰 :
“窓伴某, 要與同夜, 請從今夕往.”
문기소처 구지시지왈
이차소호동 유일분장 장지내일협실 즉처녀지주야
생기문지 불능망 석궤어가왈
창반모 요여동야 청종금석왕
그 딸의 거처를 물었더니, 할멈은 손으로 가리키며 이르기를,
“이 조그만 골목길을 돌아서면, 회를 칠한 담장이 나옵지요. 담장 안에 작은 방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 처자가 거처하고 있나이다.”
심생은 이 말을 듣고,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저녁에 집안 식구에게 거짓말을 꾸며대기를,
“서당의 벗 아무개가 저와 밤을 같이 지내자고 하더이다. 오늘 저녁에 가볼까 청하옵니다.”
遂候人定往, 踰牆而入. 則初月淡黃, 見窓外花木頗雅整, 燈火照窓紙甚亮. 
靠壁依檐而坐, 屛息以侯.
室中有二梅香, 女則方低聲讀 諺解稗語, 嚦嚦如雛鶯聲.
수후인정왕 유장이입 칙초월담황 견창외화목파아정 등화조창지심량 
고벽의첨이좌 병식이후
실중유이매향 여칙방저성독 언해패어 역력여추앵성
심생은 후인(候人)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집 담장을 넘어 들어갔다. 곧 초승달이 엷은 노란색을 띄었는데, 창밖으로 꽃나무가 썩 아담하게 가꾸어졌고, 등불이 창호지에 비치어 아주 환했다.
심생은 처마 밑 바깥벽에 기대앉아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방안에는 매향(梅香) 둘이 있었다. 여인은 나지막한 소리로 언문으로 된 이야기책을 읽고 있었는데, 꾀꼬리 새끼 울음같이 낭랑한 목소리였다.
至三鼓許, 婭鬟已熟寐, 女始吹燈就寢.
而猶不寐者久, 若輾轉有所思者.
生不敢寐, 亦不敢聲. 直至曉鐘已動, 復爬牆而出.
지삼고허 아환이숙매 여시취등취침
이유불매자구 약전전유소사자
생불감매 역불감성 직지효종이동 부파장이출.
삼경이 되자, 아환은 벌써 깊이 잠들었고, 여인는 그제야 등불을 끄고 잠자리에 드는 듯하였다. 그러나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뒤척하며 무언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심생도 감히 잠이 올 리가 없었거니와, 또한 감히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내지 못하였다. 그대로 새벽종이 울릴 때까지 있다가, 도로 담을 넘어 나왔다.
自是, 習爲常. 暮而往, 罷漏而歸.
如是者二十日, 生猶不怠.
女始則 或讀小說, 或針指, 至半夜燈滅. 則或寐, 或煩不寐矣.
자시 습위상 모이왕 파루이귀
여시자이십일 생유불태
여시즉 혹독소설 혹침지 지반야등멸 즉혹매 혹번불매의
이것이 그 뒤로 일상이 되었다. 날이 저물어서 갔다다, 파루(罷漏)에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이십여 일 동안 계속하였으나, 그래도 심생은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다.
여인은 처음에는 소설책을 읽기도 하고, 혹은 바느질을 하다가, 밤중에 이르면 등잔불을 끄게 했다. 이내 잠이 들기도 하였지만, 혹은 번민으로 잠을 못 이루기도 하는 듯하였다.

3.

過六七日, 則輒稱 身不佳, 纔初更, 便伏枕,
頻擲手于壁, 長吁短歎, 聲息聞窗外. 一夕甚於一夕.
第二十夕, 女忽自廳事出, 繞壁而轉, 至于生所坐處.
과육칠일 즉첩칭 신불가 재초경 편복침,
빈척수우벽 장우단탄 성식문창외 일석심어일석
제이십석 여홀자청사출 요벽이전 지우생소좌처
육칠 일이 지나자, 문득 몸이 편치 못하다고, 겨우 초경(初更) 무렵부터 베개에 엎드렸다. 자주 손으로 벽을 두드리며, 긴 한숨에 짧은 탄식을 내쉬었는데, 숨결이 창밖까지 들리었다. 하루 저녁 하루 저녁 갈수록 더해만 갔다.
스무날째 되는 저녁이었다. 여인은 갑자기 마루로부터 내려와, 바깥벽을 돌아 심생이 앉아 있는 곳에 이르렀다.
生自黑影中, 突然起扶持之, 女少不驚, 低聲語曰 :
“郎莫是小廣通橋邂逅者耶? 妾固已知郎之來已二十夜矣.
毋持我. 一出聲不復出矣. 若縱我, 我當開此戶以迎之, 速縱我.”
生以爲信, 却立而俟之.
생자흑영중 돌연기부지지 여소불경 저성어왈
낭막시소광통교해후자야 첩고이지낭지래이이십야의
무지아 일출성부복출의 약종아 아당개차호이영지 속종아
생이위신 각립이사지
심생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돌연 일어서서 여인을 붙잡았지만, 여인은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이, 낮은 소리로 이르기를,
“도령님은 소광통교 근처에서 만났던 분이 아니시옵니까? 소녀는 이미 스무날 전 밤부터 낭군이 오신 줄 알았사옵니다. 소녀를 붙들지는 마옵소서. 소리가 한 번 나게 되면, 다시는 여기서 나갈 수 없게 되옵니다. 소녀를 놓아주신다면, 제가 응당 뒷문을 열고 방으로 드시게 하겠나이다. 속히 소녀를 놓으시옵소서.”
심생은 그 말을 믿고 물러서서 기다렸다.
旣到其室, 呼婭鬟曰 : “汝媽媽許請朱錫大屈戍來. 夜甚黑, 令人生怕.”
婭鬟向上堂去, 未久, 以屈戍來.
女遂於所約後戶, 拴上鎖, 弔甚分明, 以手安屈戍籥, 故琅琅作下鎖聲.
隨卽吹燈, 寂然若睡熟者, 而實未嘗睡也.
기도기실 호아환왈 여마마허청주석대굴수래 야심흑 영인생파
아환향상당거 미구 이굴수래
여수어소약후호 전상쇄 조심분명 이수안굴수약 고랑랑작하쇄성
수즉취등 적연약수숙자 이실미상수야
여인은 홱 돌아서 들어가 버렸다. 방으로 들어가서는 아환을 부르더니,
“너는 어머님께 가서, 큰 주석 굴수(屈戍)를 청하여서 받아 가지고 오너라. 밤이 몹시 어두워서, 사람을 두렵게 하는구나.”
아환이 윗방 마루로 건너가서, 금방 굴수를 들고 왔다. 여인은 열어주기로 약속한 뒷문에다, 자물쇠를 분명하게 걸어두고, 다시 손으로 굴수에 자물쇠를 채웠다. 일부러 자물쇠를 채우는 소리를 찰카닥 나게 하였다.
그리고 곧 등불을 끄고, 고요히 깊은 잠이 든 척하였으나, 실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生痛其見欺, 而亦幸其得一見. 又度夜於鎖戶之外, 晨而歸.
翌日又往, 又翌日往. 不敢以戶鎖或懈. 値雨下, 則蒙油而至, 不避沾濕.
생통기견기 이역행기득일견 우도야어쇄호지외 신이귀
익일우왕 우익일왕 불감이호쇄혹해 치우하 칙몽유이지 불피첨습
심생은 속임을 당하여 분통이 났지만, 한편 그나마 한 번이라도 만나본 것이 다행이라 여겼다. 여전히 자물쇠를 채워진 방문 밖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이 되자 돌아갔다.
다음날에 또 갔고, 그 다음날에도 또 갔다. 방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지만,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다. 비가 오면 기름에 결은 옷을 둘러 입고 갔는데, 옷이 젖어도 관계하지 않았다.

4.

如是又十日. 夜將半, 渾舍皆酣睡.
女亦滅燈已久, 忽復蹶然起. 呼婭鬟促點燈, 曰 : “汝輩今夕, 往上堂去睡.”
兩梅香旣出戶, 女於壁上取牧籥, 解下屈戍, 洞開後戶.
여시우십일 야장반 혼사개감수
여역멸등이구 홀부궐연기 호아환촉점등 왈 여배금석 왕상당거수
양매향기출호 여어벽상취목약 해하굴수 통개후호
이렇게 다시 열흘이 지났다. 한밤중이 되자, 온 집안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여인 역시 등불을 끄고 한참이나 있다가, 문득 돌연히 일어났다. 아환들을 불러 얼른 등불에 불을 밝히라고 재촉하고, 이르기를,
“너희들은 오늘 밤엔 웃방으로 가서 자거라.”
두 매향(梅香)이 방을 나가자, 여인은 벽에 걸린 열쇠를 놓아, 굴수를 열고 뒷문을 활짝 열었다.
招生曰 : “郎入室.”
生未暇量, 不覺身已入室. 女復鎖其戶, 語生曰 : “願郎少坐.”
遂向上堂去, 引其父母而至, 其父母見大驚
초생왈 낭입실
생미가량 불각신이입실 여부쇄기호 어생왈 원낭소좌
수향상당거 인기부모이지 기부모견대경
심생을 부르고 이르기를,
“도령님은 들어오소서.”
심생은 미처 헤아릴 없이, 자기도 모르게 몸이 벌써 방에 들어와 있었다. 여인은 다시 그 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심생에게 이르기를,
“원하거니 도령님은 잠시 앉아 계시지요.”
그리고는 윗방으로 가서 자기 부모를 모시고 나왔다. 부모는 심생을 보고 몹시 놀랐다.
女曰 : “毋驚, 聽兒語. 兒生年十七, 足未嘗過門矣.
月前, 偶往觀駕動, 歸到小廣通橋, 風吹袱捲. 適與一草笠郞君相面矣.
自其夕, 郞君無夜不至, 屛俟於此戶之下, 今已三十日矣.
雨亦至, 寒亦至, 鎖戶而絶之, 而亦至.
여왈 무경 청아어 아생년십칠 족미상과문의
월전 우왕관가동 귀도소광통교 풍취복권 적여일초립낭군상면의
자기석 낭군무야부지 병사어차호지하 금이삼십일의
우역지 한역지 쇄호이절지 이역지
여인이 아뢰기를,
“놀라지 마시고 소녀의 말을 들어보옵소서. 소녀 나이 열일곱으로, 발걸음이 일찍이 문밖을 나가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러다 지난달에 우연히 임금님의 거둥을 구경하였고, 돌아오던 길에, 소광통교에 이르러서, 덮어쓴 보자기가 바람에 날려 걷히었나이다. 마침 그때 한 초립을 쓴 도령과 얼굴이 마주쳤사옵니다.
그날 저녁부터 도령은 안 오시는 밤이 없이, 이 방문 밑에 숨어 기다린 지 이제 이미 삼십 일이 지났나이다. 비가 와도 오시고, 추워도 오시고, 문에 자물쇠를 채워 거절해도 역시 오시었사옵니다.
兒料已久矣. 萬一聲聞外播, 鄰里知之, 則夕而入, 晨而出, 誰知其獨倚於窗壁外乎?
是無其實而被惡名也, 兒必爲犬咋之雉矣.
彼以士大夫家郞君, 年方靑春, 血氣未定. 只知蜂蝶之貪花, 不顧風露之可憂,
能幾日而病不作耶? 病則必不起, 是非我殺之, 而我殺之也. 雖人不知, 必有陰報.
아료이구의 만일성문외파 인리지지 칙석이입 신이출 수지기독의어창벽외호
시무기실이피악명야 아필위견사지치의
피이사대부가낭군 연방청춘 혈기미정 지지봉접지탐화 불고풍로지가우
능기일이병부작야 병칙필부기 시비아살지 이아살지야 수인부지 필유음보
소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사옵니다. 만일 소문이 밖으로 퍼져서,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되면, 저녁에 들어왔다가는, 새벽이면 나가는데, 홀로 창벽 밖에서 있다가 그저 갔다고 누가 믿겠사옵니까?
이는 사실과 다르게 좋지 않은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옵니다. 소녀가 반드시 개에게 물린 꿩이 되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저 분은 사대부댁 낭군으로, 나이가 바야흐로 청춘이라, 혈기가 아직 정(定)해지지 못하였사옵니다. 다만 나비와 벌이 꽃을 탐낼 줄만 알았지, 바람과 이슬에 맞음을 돌보지 않았으니, 며칠 못가서 병이 나지 않겠사옵니까?
병이 들면 반드시 일어나지 못하리니, 그러면 소녀가 죽이지 않았어도, 제가 죽인 셈이오니, 비록 남이 모르더라도, 반드시 음보(陰報)가 있게 되옵니다.

5.

且兒身 不過一中路家處子也. 非有傾城絶世之色, 沈魚羞花之容.
而郞君見鴟爲鷹, 其致誠於我, 若是其勤.
然而不從郞君者, 天必厭之, 福必不及於兒矣. 兒之意決矣. 顧願父母勿以爲憂.
噫, 兒親老而無兄弟. 嫁而得一贅婿, 生而盡其養, 死而奉其祀, 兒之願足矣.
而事忽至此, 此天也, 言之何益?”
차아신 불과일중로가처자야 비유경성절세지색 심어수화지용
이낭군견치위응 기치성어아 약시기근
연이부종낭군자 천필염지 복필불급어아의 아지의결의 고원부모물이위우
희 아친로이무형제 가이득일췌서 생이진기양 사이봉기사 아지원족의
이사홀지차 차천야 언지하익
또 소녀의 몸은 한낱 중인(中人)집 딸에 불과하옵니다. 절세의 경성지색(傾城之色)으로, 물고기가 숨고 꽃이 부끄러워할 만한 용모를 지닌 것도 아니옵니다. 그럼에도 도령께서 솔개를 보고 매로 여기시어, 소녀에게 지성을 바치기를, 이토록 부지런히 하오셨사옵니다.
만일 도령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하늘이 반드시 싫어하시어, 복을 소녀에게 주시지 않으실 것이옵니다. 소녀의 마음은 이미 정하였사옵니다. 원하건대 부모님께서는 근심하지 마옵소서.
아, 소녀는 부모님께서 연로하시고 동기간이 없사옵니다. 시집가서 데릴사위를 맞아, 살아계실 때에 봉양을 극진히 하다가, 돌아가신 뒤에 제사를 모시면, 소녀의 소망에 족하다고 생각하였나이다. 이제 일이 뜻밖에 이렇게 되었으니, 이 역시 하늘의 뜻이옵니다. 말해 무엇하겠나이까?”
其父母, 黙然無可言, 生亦無可言者.
乃與同寢, 渴仰之餘, 其喜可知. 自是夕, 始入室, 又無日不暮往晨歸.
女家素富. 於是, 爲生具華美衣服甚盛, 而生恐見異於家, 不敢服.
生雖秘之深, 而其家疑其宿於外, 久不歸.
命往山寺做業. 生意怏怏而迫於家, 且牽於儕友, 束卷上北漢山城.
기부모 묵연무가언 생역무가언자
내여동침 갈앙지여 기희가지 자시석 시입실 우무일불모왕신귀
여가소부 어시 위생구화미의복심성 이생공견이어가 불감복
생수비지심 이기가의기숙어외 구불귀
명왕산사주업 생의앙앙이박어가 차견어제우 속권상북한산성
그 부모는 입을 다문 채 달리 아무 말이 없었고, 심생 더욱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같이 동침을 하게 되었다. 목마르게 사모하던 끝에 얻었으니, 그 기쁨이야 가히 알 만했다. 그날 밤 방에 들어간 이후로, 날이 저물 때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여인의 집은 본래 부유했다. 그리하여 심생을 위하여 화려한 의복을 정성껏 마련해 주었으나, 심생은 집에서 이상하게 여길까 보아서 감히 입지 못하였다. 심생은 비록 조심을 하였어도, 집에서는 바깥에서 자고 오래 돌아오지 않는데,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산사(山寺)에 가서 글을 읽으라는 명이 내리었다. 심생은 마음에 몹시 서섭하였으나, 집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또 친구들에게 이끌리어, 책을 싸 들고 북한산성(北漢山城)으로 올라갔다.
留禪房將月, 有來傳女諺札於生者. 發之, 乃遺書告訣者也, 女已死矣.
其書略曰 : “春寒尙緊, 山寺做工, 連得平善? 願言思之, 無日可忘.
妾自君之出, 偶然一病, 漸入骨髓. 藥餌無功, 今則自分必死.
如妾薄命, 生亦何爲? 第有三大恨, 區區於中, 死猶難瞑.
유선방장월 유래전녀언찰어생자 발지 내유서고결자야 여이사의
기서략왈 춘한상긴 산사주공 연득평선 원언사지 무일가망
첩자군지출 우연일병 점입골수 약이무공 금칙자분필사
여첩박명 생역하위 제유삼대한 구구어중 사유난명
선방(禪房)에 머문 지 장차 한 달 가까이 되니, 심생에게 여인의 언문(諺文) 편지를 전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편지를 펴보니, 유서(遺書)로 영영 이별하는 내용이었다. 여인은 이미 죽은 것이다.
그 편지의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봄추위가 여전하온데, 산사의 글공부에 건강이 더 좋아지셨사옵니까? 사모하는 말씀을 드리기를 원하오니, 잊을 날이 있었겠사옵니까. 소첩은 도련님께옵서 떠나신 이후로, 우연히 한 병을 얻어, 점점 골수에 사무쳤사옵니다. 약도 음식도 모두 소용이 없는지라, 이제 필경 죽음밖에 없는 줄 알았사옵니다.
소첩처럼 박명(薄命)한 몸이 살아본들 무엇하오리까마는, 우선 세 가지 큰 한(恨)을 가슴에 안고 있으니, 죽음에 당해서도 눈을 감지 못하옵니다.
妾本無男之女, 父母之所以愛憐者. 將以覓一贅壻. 以爲暮年之倚, 仍作後日之計.
而不意好事多魔, 惡緣相絆.
女蘿猥托於喬松, 而朱陳之計, 以此虧望.
則此妾之所以悒悒不樂. 終至於病且死. 而高堂鶴髮, 永無依賴之地矣, 此一恨也.
첩본무남지녀 부모지소이애련자 장이멱일췌서 이위모년지의 잉작후일지계
이불의호사다마 악연상반
여라외탁어교송 이주진지계 이차휴망
칙차첩지소이읍읍불락 종지어병차사 이고당학발 영무의뢰지지의 차일한야
소첩은 본래 무남독녀로, 부모님의 사랑하옵심을 받자왔사옵니다. 장차 부모님께서는 적당한 데릴사위를 구하고자 하여, 그 사위로서 늘그막의 의지를 삼고, 후일의 계책을 마련코자 하셨사옵니다. 그러데 뜻하지 않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좋지 않은 인연으로 얽히었사옵니다.
여라(女蘿)가 외람되게 높은 소나무에 붙었으니, 주진지계(朱陳之計)의 희망이 이제 끝어짐이옵입니다. 이는 소첩이 몹시 상쾌하지 않고 답답하여 즐겁지 않음에 마침내 병으로 죽음에 이른 까닭이옵니다. 이제 늙으신 부모님께서는 영원히 의뢰할 곳이 없게 되었사오니, 이것이 첫째 한이옵니다.

6.

女子之嫁也, 雖丫鬟桶的, 非倚門倡伎, 則有夫壻, 便有舅姑.
世未有舅姑所不知之媳婦. 而如妾者被人欺匿, 伊來數月, 未曾見郞君家一老鬟.
則生爲不正之跡, 死爲無歸之魂矣, 此二恨也.
여자지가야 수아환통적 비의문창기 칙유부서 편유구고
세미유구고소부지지식부 이여첩자피인기닉 이래수월 미증견낭군가일노환
칙생위부정지적 사위무귀지혼의 차이한야
여자가 출가하면, 비록 아환(丫鬟)이라도, 문에 기대어 손님 맞는 기생이 아닌 다음에야, 남편이 있고, 또한 시부모가 있을 것이옵니다. 세상에 시부모가 모르는 며느리가 어디 있사오리까? 소첩 같은 몸은 남의 속임을 받아, 몇 달이 지나도록, 일찍이 낭군님 댁의 늙은 여자 하인 하나도 보지 못하였사옵니다. 이는 살아서 부정한 자취를 남긴 것이고, 죽어서 돌아갈 곳 없는 귀신이 될 것이옵니다. 이것이 둘째 한이옵니다.
婦人之所以事君子者, 不過主饋而供之, 治衣服以奉之.
而自相逢以來, 日月不爲不久, 所手製衣服, 亦不爲不多.
而未嘗使郞喫一盂於家, 披一衣於前.
則是所以侍郞君者, 惟枕席而已, 此三恨也, 若其它.
부인지소이사군자자 불과주궤이공지 치의복이봉지
이자상봉이래 일월불위불구 소수제의복 역불위부다
이미상사낭끽일우어가 피일의어전
칙시소이시낭군자 유침석이이 차삼한야 약기타
부인이 되어 남편을 섬기매, 음식을 장만하여 받들고, 의복을 지어서 받드는 일보다 더 큰 일이 없나이다. 서로 상봉한 이래, 세월이 오래지 않음도 아니요, 지어드린 의복은 적다고 할 수는 없사옵니다. 하지만 한 번도 낭군님께 한 사발 밥도 집에서 드시게 못하였고, 한 벌 옷도 앞에서 입혀드리지 못하였사옵니다. 낭군을 모신 것은 다만 잠자리에서뿐이었사옵니다. 이것이 셋째 한이옵니다.
相逢未幾而遽爾大別, 臥病垂死 而不得面訣, 則猶是兒女之悲, 何足爲君子道也.
興念至此, 腸已斷而骨欲銷矣. 雖弱草委風, 殘花成泥, 悠悠此恨何日可已?
嗚呼! 窗間之會, 從此斷矣, 惟願郞君無以賤妾關懷, 益勉工業, 早致靑雲.
千萬珍重, 千萬珍重.”
상봉미기이거이대별 와병수사 이부득면결 칙유시아녀지비 하족위군자도야
흥념지차 장이단이골욕소의 수약초위풍 잔화성니 유유차한하일가이
오호 창간지회 종차단의 유원낭군무이천첩관회 익면공업 조치청운
천만진중 천만진중
이제 상봉하온 지 얼마 아니 되어 문득 길이 이별하옵고, 병으로 누워 죽음이 다가왔으나, 대면하여 영결하지 못하옵니다. 이러한 여자의 슬픔을, 어찌 족히 군자(君子)에게 말씀드리오리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르니, 창자가 이미 끊어지고 뼈가 녹으려 하옵니다. 비록 연약한 풀이 바람에 쓰러지고, 시들은 꽃잎이 진흙이 된다 하온들, 끝없는 이 원한은 어느 날이라 다하리오까.
오호(嗚呼)라, 창 사이에서의 만남은 이제 그만옵니다. 바라옵건대 낭군님께서는 천첩을 관심으로 두시지 마옵시고, 더욱 글공부에 힘쓰시어, 일찍이 청운(靑雲)에 이르옵소서. 이를데 없이 소중히 하옵소서. 소중이 하옵소서.”
生見書, 不禁聲淚俱失.
雖哭之慟, 亦無奈矣. 後生投筆從武, 擧官至金烏郞, 亦早殀而死.
생견서 불금성루구실
수곡지통 역무내의 후생투필종무 거관지금오랑 역조요이사
심생은 이 편지를 보고, 모든 것을 다 잃음에 울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제 비록 슬프게 울어 보아도 무엇하겠는가. 그 뒤에 심생은 붓을 던지고 무관(武官)이 되어, 벼슬이 금오랑(金烏郞)에 이르렀으나, 역시 일찍 죽고 말았다.
梅花外史曰 : “余十二歲游於村塾, 日與同學兒喜聽談故. 一日, 先生語沈生事甚詳,
曰 ‘此吾少年時窗伴也. 其山寺哭書時, 吾及見之. 故聞其事, 至今不忘也.’
又曰 ‘吾非汝曹欲效此風流浪子耳. 人之於事, 苟以必得爲志, 則閨中之女尙可以致,
況文章乎? 況科目乎?’
余輩其時聽之, 爲 新說也, 後讀情史, 多如此類. 於是, 追記爲情史補遺.”
매화외사(梅花外史)가 이르기를,
“내가 열두 살 때에 시골 서당에서 글을 읽는데 매일 동접들과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였노라. 어느 날 스승께서 심생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시고 말씀하시기를,
‘심생과 나는 소년일 때 함께 공부하였도다. 심생이 산사에서 편지를 받고 통곡할 때에, 나도 글을 보았더니라.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듣고 지금까지 잊지 않았구나.’
하시며, 이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 풍류 소년(風流少年)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로다. 사람이 일에 당해서 진실로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뜻을 세우면, 규중(閨中)의 처자라도 오히려 감동시킬 수 있으리라. 하물며 문장이나 과거야 왜 안 되겠느냐?’
하셨도다. 우리들은 그 당시에 듣고, 매우 새로운 이야기로 느끼었다. 뒤에 정사(情史)를 읽어보니, 이와 비슷한 이야기도 많았다. 이에 이를 덧붙여서 정사의 보유(補遺)로 삼을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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