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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239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 황동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 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황동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 주제 : 이상을 향한 전진의 의욕 • 제재 : 바퀴 • 성격 : 암시적, 상징적, 주지적, 사회비판적 • 표현 : 반복법, 상징법 • 시상의 전개 * 제1연..

문학/현대운문 2021.03.10

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즐거운 편지'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 갈래 : 산문시, 서정시 • 성격 : 서정적, 고백적, 사색적, 연가풍, 낭만적, 주정적, 감각적 • 어..

문학/현대운문 2021.03.09

울릉도 - 유치환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蒼茫)*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思念)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社稷)*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 유치환, '울릉도' * 심해선(深海線) : 지도에서 깊은 바다를 나타내는, 짙은 푸른 빛이 시작되는 선(線). * 금수 : 1..

문학/현대운문 2021.03.09

다리 위에서 - 이용악

바람이 거센 밤이면 몇 번이고 꺼지는 네모난 장명등*을 궤짝 밟고 서서 몇 번이고 새로 밝힐 때 누나는 별 많은 밤이 되려 무섭다고 했다 국숫집 찾아 가는 다리 위에서 문득 그리워지는 누나도 나도 어려선 국숫집 아이 단오도 설도 아닌 풀벌레 우는 가을철 단 하루 아버지의 제삿날만 일을 쉬고 어른처럼 곡을 했다 - 이용악, '다리 위에서' *장명등 : 대문 밖이나 처마끝에 달아 두고 밤에 불을 켜는 등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회상적, 고백적 어조 : 그리움의 어조 특징 : ① 유년시절과 관련된 단편적인 기억들을 제시함. ②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상을 떠 올리고 있다. ③ 독백적 어조로 그리움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④ 어린 시절의 삶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형상화 시상 전..

문학/현대운문 2021.03.06

낡은 집 - 이용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래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놓이기 전 노루 멧돼지 족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 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 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문학/현대운문 2021.03.05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집'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애상적, 서정적, 비관적 • 어조 : 슬픔과 비관에 빠진 어조 • 구성 : 상황에 대한 독백 - 대화 성격의 글 - 상황에 대한 독백 • 특징 -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다. - 영탄적 표현을 활용하여 내적 고뇌를 드러내고 있다. - 관념을 사물의 이미지로 환치하고 있다. - 제재 : 빈집에 갇힌 사랑 • 주제 : 사랑의 고뇌에서..

문학/현대운문 2021.03.05

직녀에게 - 문병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쳐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

문학/현대운문 2021.03.04

견우의 노래 - 서정주

우리들의 사랑을 위해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연 허이연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로 북을 놀리게. 눈썹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 서정주, '견우의 노래' *오롯한 : 부족함 없이 완벽하다 *홀몸 : 1. 배우자나 형제가 없는 사람. 단신(單身). 독신(獨身). 척신(隻身). 2. 홑몸 *홑몸 : 1. 딸린 사람이 없는 몸. 2. 임신..

문학/현대운문 2021.03.04

사령(死靈) - 김수영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黃昏)도 저 돌벽 아래 잡초(雜草)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 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纖細)도 행동(行動)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김수영 '사령' *사령(死靈) : 죽은 영혼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율격 : 내재율 • 성격 : 비판적. 주지적 • 어조..

문학/현대운문 2021.03.04

오랑캐꽃 - 이용악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게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이용악, '오랑캐꽃' *오랑캐 :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두만강 일대에 살던 여진족(女眞族)을 미개한 종족이라는 뜻으로 멸시하..

문학/현대운문 202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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