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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239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회고적, 성찰적, 자조적, 영탄적 - 제재 : 젊은 날의 삶 - 주제 : 젊은 날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 ..

문학/현대운문 2021.06.16

정념의 기(旗) - 김남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旗)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悲哀)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정념의 기(旗) - 김남조 *정념(情念) :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억누르기 어려운 생각. *기(旗) : 깃발, 화자의 마음과 동일시되는 존재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문학/현대운문 2021.06.15

김원일 '어둠의 혼(魂)' 전문

어둠의 혼(魂) 김원일 아버지가 잡혔다는 소문이 온 장터 마을에 좍 깔렸다. 아버지는 어제 수산 장터에서 붙잡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젯밤 진영(進永) 지서로 묶여 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밤에 아버지가 총살당할 거라고들 말했다. 지서 뒷마당 웅덩이 옆에 서 있는 느릅나무에 칭칭 묶여 총살당할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선바위산 묘지골로 끌려가서 총살당할 거라고들 떠들었다. 병쾌 아버지를 포함해서 아버지와 같은 짓을 했던 마을 청년들이 이미 일곱 명이나 총살을 당했기 때문에 아버지도 죽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아버지는 한줌의 연기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게다. 그 사라진 연기를 다시 모을 수 없는 것같이 이제 우리 오누이들은 아버지라고 불러 볼 사람이 없게 된다. 그것이 슬플 뿐, 다른 생각은..

문학/소설전문 2021.06.15

신도가 - 정도전

신도가(新都歌) - 정도전(鄭道傳) 녜는 楊州(양주)이 꼬올히여 디위예 新都形勝(신도형승)이샷다. 開國聖王(개국성왕)이 聖代(성대)를 니르어샷다. 잣다온뎌 當今景(당금경) 잣다온뎌 聖壽萬年(성수만년)하샤 萬民(만민)의 咸樂(함락)이샷다. 아으 다롱다리 알픈 漢江水(한강수)여 뒤흔 三角山(삼각산)이여 德重(덕중)하신 江山(강산) 즈으메 萬歲(만세)를 누리쇼셔. 옛날에는 양주의 고을이여 그 경계에 새 도읍의 지세와 풍경이 빼어나도다 개국성왕께서 성대를 이룩하셨도다. 도성답도다! 지금의 경치가 참으로 도성답도다! 성수만년 하시니 만 백성 모두 기쁨이로다 아으 다롱다리 앞은 한강수요, 뒤는 삼각산이라 덕이 많으신 강산 사이에서 만세를 누리소서 핵심 정리 - 연대 : 조선 태조 3년 - 갈래 : 악장(속요체), ..

문학/고전운문 2021.06.04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 정인지(鄭麟趾:1396∼1478) - 안지(安止:1377∼1464) - 권제(權題 : 1387∼1445) 海東六龍(해동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天福(천복)이시니 古聖(고성)이 同符(동부)하시니 우리 나라에 여섯 성인이 웅비하시어, 하는 일마다 모두 하늘이 주신 복이시니, 이는 중국의 옛 성군들과 같으십니다. 해동(우리나라)의 여섯 용이 날으시어서, 그 행동하신 일마다 모두 하늘이 내리신 복이시니, 그러므로 옛날의 성인의 하신 일들과 부절을 합친 것처럼 꼭 맞으시니. 불휘 기픈 남근 바라매 아니 뮐쌔 곶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뿌리가 깊은 나무는 아무리 센 바람에도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도 많이 열립니다. 샘이 깊..

문학/고전운문 2021.05.24

임춘 '국순전' 전문

국순전(麴醇傳) 국순(麴醇)의 자(字)는 자후(子厚)이다.(누룩, 진한 술.의인) 그 조상은 농서(龓西) 사람이다. 90대조(九十代祖)인 모(牟)가 후직(后稷)을(농사를 맡은 벼슬) 도와 뭇 백성들을 먹여 공이 있었다. '시경(詩經)'에, "내게 밀과 보리를 주다." (보리=모) 한 것이 그것이다. 모(牟)가 처음 숨어 살며 벼슬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밭을 갈아야 먹으리라." (벼슬을 하지 않겠다.) 하여, 밭에서 살았다. 임금이 그 자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서(詔書)를 내려 안거(安車)로(수레) 부를 때, 군(郡)과 현(縣)에 명하여 곳마다 후하게 예물을 보내게 하였다. 신하를 시켜 친히 그 집에 나아가, 드디어 방아와 절구[杵臼] 사이에서 교분(친분)을 정하였다. 화광동진(和光同塵)하게..

문학/고전산문 2021.04.23

유방선 '김 장관댁 죽헌 기' 전문

금장관댁죽헌기(김 장관댁 죽헌 기) 류방선(유방선) *파란색은 수능특강 본문 영천(永川)의 토질이 대 자라기에 적합하여 민가에서 대개 많이 심어 가꾸어 혹은 정사도 만들고 혹은 울타리를 만들기도 한다. 온 고을이 다 그러하나 반드시 대가 대가 된 까닭을 깊이 알지는 못할 것이다. 영천의 토질은 대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하여, 민가에서는 대를 심어 가꾸기도 하고 울타리를 만들기도 한다. 온 고을이 다 그러하나 그들은 대나무의 본성을 진실로 깊이 알지는 못할 것이다. 전 장관 김영지군은 사족(士族)인데, 천성이 대를 사랑하였다. 해직한 뒤로부터 고향에 물러앉아 남이 알아둘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이수의 남쪽에 터를 가려 침실 동편에다 머름을 짓고 대를 머름 곁에 심어, 그것을 편안히 쉬는 처소로 정함과 동시에 ..

문학/고전산문 2021.04.21

들국 - 김용택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한다요. 뭐한다요. 산 아래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한다요 산너머, 저 산 너머로 산그늘도 다 도망가불고 산 아래 집 뒤안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당신 안 오는데 뭔 헛짓이다요 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 초승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헌다요 마른 지푸라기같은 내 마음에 허연 서리만 끼어 가고 저 달 금방 저불면 세상 길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턴디 병신같이, 바보 천치같이 이 가을 다 가도록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뭐한다요, 뭔 소용이다요. -김용택, '들국' 시낭송 감상하기 쇼팽 Chopin 이별의 곡 Tristesse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대조적, 자조적, 애상적 • 어조 : 그리움과 푸념, ..

문학/현대운문 2021.04.20

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한국문학논총 제45집(2007. 4) 409~432쪽 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 광장 ․ 방앗골 革命 ․ 시장과 전장 을 중심으로 - 1) 이성우* 차 례 Ⅰ. 한국전쟁의 특수성과 문학적 인식 Ⅱ. 남북 대치 상황에서 중립국 선택의 의미 Ⅲ. 상․하촌의 대립과 자족적인 공간 설정 Ⅳ. ‘시장’을 바라보는 대조적 시선, 그리고 양시쌍비론 Ⅴ. 객관적 현실과 소설적 현실 사이의 거리 * 고려대학교 강사 Ⅰ. 한국전쟁의 특수성과 문학적 인식 한국전쟁의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전쟁 발발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을 바라보는 주체의 시각에 따라 ‘동족상잔의 비극’이나 ‘강대국의 대리전’, 또는 ‘민족해방전쟁’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것만 봐도 그 사..

문학/문학학습 2021.04.19

저 산이 날 더러 - 목월 시 운을 빌려 - 정희성

산이 날더러는 흙이나 파먹으라 한다 날더러는 삽이나 들라 하고 쑥굴헝에 박혀 쑥이 되라 한다 늘퍼진 날 산은 쑥국새 울고 저만치 홀로 서서 날더러는 쑥국새마냥 울라 하고 흙 파먹다 죽은 아비 굶주림에 지쳐 쑥굴헝에 나자빠진 에미처럼 울라 한다 산이 날더러 흙이나 파먹다 죽으라 한다 -정희성, '저 산이 날 더러 - 목월 시 운을 빌려' *굴헝 : ‘구렁1’의 방언(제주) - 1. 움쑥하게 파인 땅. 2.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환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애상적 • 특징 : ① 시구 및 특정한 조사나 어미 등을 반복하여 시적 리듬감을 형성함. ② 수미상관의 구조를 통해 구조적 안정감, 의미 강조, 운율 형성, 여운을 줌. ③ 산이 화..

문학/현대운문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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