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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무(農舞) -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농무(農舞) - 신경림 *농무 : 풍물놀이에 맞추어 추는 춤. 꽹.. 2021. 6. 24.
폭포 - 이형기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 나는 맹목(盲目)*의 물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폭포 - 이형기 *단말마 : ‘임종(臨終)’을 달리 이르는 말. 숨이 끊어질 때의 모진 고통. *석탄기 : 고생대 데본기와 페름기의 중간에 있었던 지질 시대의 하나. 거대한 양치식물이 많았고 파충류와 곤충류가 나타났다. *복안 : 곤충(昆蟲), .. 2021. 6. 19.
폭포 -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폭포 - 김수영 *나타: 나태, 게으름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주지시 • 성격 : 관념적, 상징적, 참여적, 주지적 • 어조 : 의지적이고 강인한 어조 • 제재 : 폭포 • 주제 : 부조리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저항 정신과 의지 • 특징.. 2021. 6. 19.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으면서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은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핵심 정리 - 갈래: 자유시, 서정시 - 성격: 철학적, 사색적, 문답적, 인본주의적, 전언적(삶의 지혜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 주제 : 시인의 사회적 책무와 서민들의 성실하고 건강한 삶에 대한 긍정, 시와 시인의 본질, 평범한 사람들의 진실된 삶이 진정한 시의 모습이라는 .. 2021. 6. 18.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것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핵심 정리 - 갈래:자유시, 서정시, 참여시 - 성격:현실 참여적, 저항적, 직설적 - 구성 : 시상의 전개 1연 : 4월 혁명의 순수성 염원 2연 : 동학혁명의 순수성 염원 3연 : 민중(민족)의 대화합 4연 : 통일 조국의 순수성 염원 - 제재:외세의 지배에서 탈피해야 할 민족 현실 - 주제:진정하.. 2021. 6. 18.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회고적, 성찰적, 자조적, 영탄적 - 제재 : 젊은 날의 삶 - 주제 : 젊은 날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 .. 2021. 6. 16.
정념의 기(旗) - 김남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旗)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悲哀)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정념의 기(旗) - 김남조 *정념(情念) :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억누르기 어려운 생각. *기(旗) : 깃발, 화자의 마음과 동일시되는 존재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2021. 6. 15.
김원일 '어둠의 혼(魂)' 전문 어둠의 혼(魂) 김원일 아버지가 잡혔다는 소문이 온 장터 마을에 좍 깔렸다. 아버지는 어제 수산 장터에서 붙잡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젯밤 진영(進永) 지서로 묶여 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늘밤에 아버지가 총살당할 거라고들 말했다. 지서 뒷마당 웅덩이 옆에 서 있는 느릅나무에 칭칭 묶여 총살당할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선바위산 묘지골로 끌려가서 총살당할 거라고들 떠들었다. 병쾌 아버지를 포함해서 아버지와 같은 짓을 했던 마을 청년들이 이미 일곱 명이나 총살을 당했기 때문에 아버지도 죽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아버지는 한줌의 연기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게다. 그 사라진 연기를 다시 모을 수 없는 것같이 이제 우리 오누이들은 아버지라고 불러 볼 사람이 없게 된다. 그것이 슬플 뿐, 다른 생각은.. 2021. 6. 15.
신도가 - 정도전 신도가(新都歌) - 정도전(鄭道傳) 녜는 楊州(양주)이 꼬올히여 디위예 新都形勝(신도형승)이샷다. 開國聖王(개국성왕)이 聖代(성대)를 니르어샷다. 잣다온뎌 當今景(당금경) 잣다온뎌 聖壽萬年(성수만년)하샤 萬民(만민)의 咸樂(함락)이샷다. 아으 다롱다리 알픈 漢江水(한강수)여 뒤흔 三角山(삼각산)이여 德重(덕중)하신 江山(강산) 즈으메 萬歲(만세)를 누리쇼셔. 옛날에는 양주의 고을이여 그 경계에 새 도읍의 지세와 풍경이 빼어나도다 개국성왕께서 성대를 이룩하셨도다. 도성답도다! 지금의 경치가 참으로 도성답도다! 성수만년 하시니 만 백성 모두 기쁨이로다 아으 다롱다리 앞은 한강수요, 뒤는 삼각산이라 덕이 많으신 강산 사이에서 만세를 누리소서 핵심 정리 - 연대 : 조선 태조 3년 - 갈래 : 악장(속요체), .. 2021. 6. 4.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 정인지(鄭麟趾:1396∼1478) - 안지(安止:1377∼1464) - 권제(權題 : 1387∼1445) 海東六龍(해동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天福(천복)이시니 古聖(고성)이 同符(동부)하시니 우리 나라에 여섯 성인이 웅비하시어, 하는 일마다 모두 하늘이 주신 복이시니, 이는 중국의 옛 성군들과 같으십니다. 해동(우리나라)의 여섯 용이 날으시어서, 그 행동하신 일마다 모두 하늘이 내리신 복이시니, 그러므로 옛날의 성인의 하신 일들과 부절을 합친 것처럼 꼭 맞으시니. 불휘 기픈 남근 바라매 아니 뮐쌔 곶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뿌리가 깊은 나무는 아무리 센 바람에도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도 많이 열립니다. 샘이 깊.. 2021. 5. 24.
임춘 '국순전' 전문 국순전(麴醇傳) 국순(麴醇)의 자(字)는 자후(子厚)이다.(누룩, 진한 술.의인) 그 조상은 농서(龓西) 사람이다. 90대조(九十代祖)인 모(牟)가 후직(后稷)을(농사를 맡은 벼슬) 도와 뭇 백성들을 먹여 공이 있었다. '시경(詩經)'에, "내게 밀과 보리를 주다." (보리=모) 한 것이 그것이다. 모(牟)가 처음 숨어 살며 벼슬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밭을 갈아야 먹으리라." (벼슬을 하지 않겠다.) 하여, 밭에서 살았다. 임금이 그 자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서(詔書)를 내려 안거(安車)로(수레) 부를 때, 군(郡)과 현(縣)에 명하여 곳마다 후하게 예물을 보내게 하였다. 신하를 시켜 친히 그 집에 나아가, 드디어 방아와 절구[杵臼] 사이에서 교분(친분)을 정하였다. 화광동진(和光同塵)하게.. 2021. 4. 23.
유방선 '김 장관댁 죽헌 기' 전문 금장관댁죽헌기(김 장관댁 죽헌 기) 류방선(유방선) *파란색은 수능특강 본문 영천(永川)의 토질이 대 자라기에 적합하여 민가에서 대개 많이 심어 가꾸어 혹은 정사도 만들고 혹은 울타리를 만들기도 한다. 온 고을이 다 그러하나 반드시 대가 대가 된 까닭을 깊이 알지는 못할 것이다. 영천의 토질은 대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하여, 민가에서는 대를 심어 가꾸기도 하고 울타리를 만들기도 한다. 온 고을이 다 그러하나 그들은 대나무의 본성을 진실로 깊이 알지는 못할 것이다. 전 장관 김영지군은 사족(士族)인데, 천성이 대를 사랑하였다. 해직한 뒤로부터 고향에 물러앉아 남이 알아둘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이수의 남쪽에 터를 가려 침실 동편에다 머름을 짓고 대를 머름 곁에 심어, 그것을 편안히 쉬는 처소로 정함과 동시에 .. 2021. 4. 21.
들국 - 김용택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한다요. 뭐한다요. 산 아래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한다요 산너머, 저 산 너머로 산그늘도 다 도망가불고 산 아래 집 뒤안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당신 안 오는데 뭔 헛짓이다요 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 초승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헌다요 마른 지푸라기같은 내 마음에 허연 서리만 끼어 가고 저 달 금방 저불면 세상 길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턴디 병신같이, 바보 천치같이 이 가을 다 가도록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뭐한다요, 뭔 소용이다요. -김용택, '들국' 시낭송 감상하기 쇼팽 Chopin 이별의 곡 Tristesse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대조적, 자조적, 애상적 • 어조 : 그리움과 푸념, .. 2021. 4. 20.
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한국문학논총 제45집(2007. 4) 409~432쪽 1960년대 전후소설의 대립 구조와 주제 의식 - 광장 ․ 방앗골 革命 ․ 시장과 전장 을 중심으로 - 1) 이성우* 차 례 Ⅰ. 한국전쟁의 특수성과 문학적 인식 Ⅱ. 남북 대치 상황에서 중립국 선택의 의미 Ⅲ. 상․하촌의 대립과 자족적인 공간 설정 Ⅳ. ‘시장’을 바라보는 대조적 시선, 그리고 양시쌍비론 Ⅴ. 객관적 현실과 소설적 현실 사이의 거리 * 고려대학교 강사 Ⅰ. 한국전쟁의 특수성과 문학적 인식 한국전쟁의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전쟁 발발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을 바라보는 주체의 시각에 따라 ‘동족상잔의 비극’이나 ‘강대국의 대리전’, 또는 ‘민족해방전쟁’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것만 봐도 그 사.. 2021. 4. 19.
저 산이 날 더러 - 목월 시 운을 빌려 - 정희성 산이 날더러는 흙이나 파먹으라 한다 날더러는 삽이나 들라 하고 쑥굴헝에 박혀 쑥이 되라 한다 늘퍼진 날 산은 쑥국새 울고 저만치 홀로 서서 날더러는 쑥국새마냥 울라 하고 흙 파먹다 죽은 아비 굶주림에 지쳐 쑥굴헝에 나자빠진 에미처럼 울라 한다 산이 날더러 흙이나 파먹다 죽으라 한다 -정희성, '저 산이 날 더러 - 목월 시 운을 빌려' *굴헝 : ‘구렁1’의 방언(제주) - 1. 움쑥하게 파인 땅. 2.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환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애상적 • 특징 : ① 시구 및 특정한 조사나 어미 등을 반복하여 시적 리듬감을 형성함. ② 수미상관의 구조를 통해 구조적 안정감, 의미 강조, 운율 형성, 여운을 줌. ③ 산이 화.. 2021.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