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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등신불' 전문

등신불(等身佛) 김동리 등신불(等身佛)은 양자강(揚子江) 북쪽에 있는 정원사(淨願寺)의 금불각(金佛閣)속에 안치되어 있는 불상의 이름이다. 등신금불(等身金佛)또는 그냥 금불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니까 나는 이 등신불, 등신금불로 불리워지는 불상에 대해 보고 듣고 한 그대로를 여기다 적으려 하거니와, 그보다 먼저, 내가 어떻게 해서 그 정원사라는 먼 이역의 고찰(古刹)을 찾게 되었었는지 그것부터 이야기 해야겠다. 내가 일본의 대정대학 재학 중에, 학병(태평양 전쟁)으로 끌려 나간 것은 일구사심(1934)년 이른 여름, 내 나이 스물 세 살 나던 때였다. 내가 소속된 부대는 북경(北京)서 서주(徐州)를 거쳐 남경(南京)에 도착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부대가 당도할 때까지 거기서 머무르게 되었다. 처음에 ..

문학/소설전문 2021.01.07

염상섭 '두 파산' 전문

두 파산 염상섭 영감은 옆에서 주인댁이 하는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않고 골똘히 돈을 세더니, 커다란 검정 헝겊 주머니를 허리춤에서 꺼내놓는다. 옆에 섰는 정례는 그 돈이 아깝고 영감의 푸등푸등한 손까지 밉기도 하여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려니까, "그래, 이 달치는 또 언제쯤 들리리까? 급히 내가 쓸데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본전까지 해 주어야 하겠는데……" 하고, 아까와는 딴판으로 퉁명스럽게 볼멘 소리를 하였다. 만화를 들여다보던 아이들은 또 한 번 이 편을 건너다본다. 보얗고 점잖게 생긴 신수가 딴은 교장 선생 같고, 저기다가 양복이나 입고 운동장의 교단에 올라서면 저희들도 움찔하려니 싶은 생각이 드는데, 이잣돈을 받아들고 나서도 또 조르고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니, 설마 저런 교장이 있으랴 싶어 저희들끼리 ..

문학/소설전문 2021.01.05

김유정 '동백꽃' 전문

동백꽃 김유정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이었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뒤에서 푸드득 푸드득 하고 닭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 점순네 수탉(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작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푸드득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주둥 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킥, 할 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며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이걸 가만히 내려다보자니 내 대..

문학/소설전문 2021.01.05

최일남 '노새 두 마리' 전문

노새 두 마리 최일남 그 골목은 몹시도 가팔랐다. 아버지는 그 골목에 들어서기만 하면 미리 저만치 앞에서부터 마차를 세게 몰아가지고는 그 힘으로 하여 단숨에 올라가곤 했다. 그러나 이 작전이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더러는 마차가 언덕의 중간쯤에서 더 올라가지를 못하고 주춤거릴 때도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이마에 심줄을 잔뜩 돋우며, “이랴 이랴!” 하면서 노새의 잔등을 손에 휘감고 있는 긴 고삐줄로 세 번 네 번 후려쳤다. 노새는 그럴 때마다 뒷다리를 바득바득 바둥거리며 안간힘을 쓰는 듯했으나 그쯤 되면 마차가 슬슬 아래쪽으로 미끄러내리기는 할망정 조금씩이라도 올라가는 일은 드물었다. 물론 마차에 연탄을 많이 실었을 때와 적게 실었을 때에도 차이는 있었다. 적게 실었을 때는 그깟 것 달랑달랑 단숨..

문학/소설전문 2021.01.05

이상 '날개' 전문

날개 이상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파라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 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만 을 영수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 끔 되..

문학/소설전문 2021.01.05

조명희 '낙동강' 전문

낙동강 조명희 낙동강 칠백리 길이길이 흐르는 물은 이곳에 이르러 곁가지 강물을 한뭄에 뭉쳐서 바다로 향하여 나간다. 강을 따라 바둑판 같은 들이 바다를 향하여 아득하게 열려 있고 그 넓은 들 품안에는 무덤무덤의 마을이 여기저기 안겨 있다. 이 강과 이 들과 거기에 사는 인간 -- 강은 길이길이 흘렀으며, 인간도 길이길이 살아왔었다. 이 강과 이 인간 지금 그는 서로 영원히 떨어지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인가? 봄마다 봄마다 불어 내리는 낙동강 물 구포벌에 이르러 넘쳐 넘쳐흐르네 철렁철렁 넘친 물 들로 벌로 퍼지면 만 목숨 만만 목숨의 젖이 된다네 - 젖이 된다네 - 에 - 헤 - 야 이 벌이 열리고 - 이 강물이 흐르 제 이 젖 먹고 자라 왔네 자라 왔네 - 에 -헤 - 야 천 년을 산, 만 년을 산 낙동강..

문학/소설전문 2021.01.05

김유정 '금따는 콩밭' 전문

금따는 콩밭 김유정 땅 속 저 밑은 늘 음침하다. 고달픈 간드렛불 맥없이 푸르께하다. 밤과 달라서 낮엔 되우 흐릿하였다. 거칠은 황토 장벽으로 앞서 좌우가 콕 막힌 좁직한 구덩이, 흡사히 무덤 속같이 귀중하다. 싸늘한 침묵, 쿠더부레한 흙내와 징그러운 냉기만이 그 속에 자욱하다. 곡괭이는 뻔찔 흙을 이르집는다. 암팡스러이 내려쪼며, 퍽 퍽 퍽…… 이렇게 메떨어진 소리뿐, 그러나 간간 우수수하고 벽이 헐린다. 영식이는 일손을 놓고 소맷자락을 끌어당기어 얼굴의 땀을 훑는다. 이놈의 줄이 언제나 잡힐는지 기가 찼다. 흙 한 줌을 집어 코밑에 바싹 들이대고 손가락으로 샅샅이 뒤져본다. 완연히 버력은 좀 변한 듯싶다. 그러나 볼통버력이 아주 다 풀린 것도 아니었다. 밀똥버력이라야 금이 나온다는데 왜 이리 안 나오..

문학/소설전문 2021.01.05

이상 '권태' 전문 (수필)

권태 이상 1 어서, 차라리 어둬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남을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아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 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 먹었노?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십여 호씩 있다. 휘청거린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넝쿨, 모두가 그게 그것같이 똑같다. 어제 보던 대싸리나무, 오늘도 보는 김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흰둥이, 검둥이 해는 100도 가까운 볕을 지붕에도, 벌판에도, 뽕나무에도 암탉 꼬랑지에도 내려쪼인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뜨거워서 ..

문학/소설전문 2021.01.05

김동인 '광화사' 전문

광화사 김동인 인왕(仁王) 바위 위에 잔솔이 서고 잔솔 아래는 이끼가 빛을 자랑한다. 굽어보니 바위 아래는 몇 포기 난초가 노란 꽃을 벌리고 있다. 바위에 부딪치는 잔바람에 너울거리는 난초잎. 여(余)는 허리를 굽히고 스틱으로 아래를 휘저어보았다. 그러나 아직 난초에는 4,5축의 거 리가 있다. 눈을 옮기면 계곡. 전면이 소나무의 잎으로 덮인 계곡이다. 틈틈이는 철색(鐵色)의 바위로 보이기는 하나, 나 무밑의 땅은 볼 길이 없다. 만약 여로서 그 자리에 한 번 넘어지면 소나무의 잎 위로 굴러 서 저편 어디인지 모를 골짜기까지 떨어질 듯하다. 여의 등뒤에도 2,3장(丈)이 넘는 바위다. 그 바위에 올라서면 무학(舞鶴)재로 통한 커다란 골짜기가 나타날 것이다. 여의 발아래도 장여(丈餘)의 바위다. 아래는 몇..

문학/소설전문 2021.01.05

김동인 '광염 소나타' 전문

광염 소나타 김동인 독자는 이제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 유럽의 어떤 곳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혹은 사오십 년 뒤에 조선을 무대로 생겨날 이야기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다만, 이 지구상의 어떠한 곳에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능성(可能性) 뿐은 있다― 이만치 알아두면 그만이다. 그런지라. 내가 여기 쓰려는 이야기의 주인공 되는 백성수(白性洙)를, 혹은 알벨트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찜이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또는 호모(胡某)나 기무라모(木村某)로 생각하여도 괜찮다. 다만 사람이라 하는 동물을 주인공 삼아 가지고, 사람의 세상에서 생겨난 일인 줄만 알면…… 이러한 전제로서, 자 그러면 내 이야기를 시작하자. "기회(찬스)라 하는 것이..

문학/소설전문 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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