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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현대운문 64

신부 - 서정주

신부 서정주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문학/현대운문 2021.03.03

여우난곬족 - 백석

여우난곬족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짰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

문학/현대운문 2021.03.02

사향 - 김상옥

사향 김상옥 눈을 가만 감으면 굽이 잦은 풀밭 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백양* 술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 노을처럼 산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길 섶 : 길 가 백양 : 실버들 멧남새 : 산나물 애젓하다 : 마음이 섭섭하고 애틋하다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 갈래 : 현대시조(장별 배행, 연시조), 정형시, 서정시 • 율격 : 외형률(3(4)․4조의 4음보) • 성격 : 향토적. 낭만적. 회상적. 감각적. 목가적. 향수적. 사실적. 관조적 • 심상 :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 ..

문학/현대운문 2021.03.02

거산호 2 - 김관식

오늘, 북창*을 열어 장거릴* 등지고 산을 향하여 앉은 뜻은 사람은 맨날 변해 쌓지만 태고로부터 푸르러 온 산이 아니냐. 고요하고 너그러워 수(壽)하는 데다가 보옥(資玉)*을 갖고도 자랑 않는 겸허한 산. 마음이 본시 산을 사랑해 평생 산을 보고 산을 배우네. 그 품안에서 자라나 거기에 가 또 묻히리니 내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에* 아아(峨峨)라히* 뻗쳐 있어 다리 놓는 산. 네 품이 고향인 그리운 산아 미역취* 한 이파리 상긋한 산 내음새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 꿈 같은 산 정기(山精氣)를 그리며 산다. -김관식, 거산호2 *북창 : 북쪽으로 낸 창 *장거리 : 장이 서는 거리, 세속에 찌든 삶. *아아(峨峨)라히 : 산이나 큰 바위가 우뚝 솟은 위엄 있는 모양 *미역취 : 엉거시과의 다년생의 풀..

문학/현대운문 2021.02.27

밤바다에서 - 박재삼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 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질정*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천하에 많은 할 말이, 천상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이윽고 누님은 섬이 떠 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 때 나는 섬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밤바다에서 - 박재삼 *질정(質定) 갈피를 잡아서 분명하게 정함. 시 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전통적, 낭만적, 회고적, 애상적 • 어조 : 심리적 상처를 달래는 듯한 어조 •..

문학/현대운문 2021.02.26

얼은 강을 건너며 - 정희성

얼은 강을 건너며 정희성 얼음을 깬다. 강에는 얼은 물 깰수록 청청한 소리가 난다. 강이여 우리가 이룰 수 없어 물은 남몰래 소리를 이루었나. 이 강을 이루는 물소리가 겨울에는 죽은 땅의 목청을 트고 이 나라의 어린 아희들아 물은 또한 이 땅의 풀잎에도 운다. 얼음을 깬다. 얼음을 깨서 물을 마신다. 우리가 스스로 흐르는 강을 이루고 물이 제 소리를 이룰 때까지 아희들아. 핵심 정리 • 성격 : 저항적, 현실비판적 • 제재 : 강 • 주제 : 암울한 시대 현실의 극복과 바른 역사의 형성 의지 얼음을 깬다 → 깨진 얼음 속에서 물소리가 난다 → 물소리는 죽은 땅의 목청을 트고, 풀잎에도 운다 │ │ │ 자유가 억압된 1960년대의 현실에 대응하여 바른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함 바른 세상을 만들어 가..

문학/현대운문 2021.02.26

꽃나무 - 이상

꽃나무 이상 벌판한복판에꽃나무하나가있소.근처(近處)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열심(熱心)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나는막달아났소.한꽃나무를위(爲)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핵심 정리 • 갈래 : 산문시 • 성격 : 심리적. 내면적. 관념적. 주지적 • 경향 : 초현실주의적 • 심상 : 인간의 내면 의식의 심상화. 심상의 병치 • 어조 : 고뇌하는 지식인의 자아 성찰적 어조 • 표현 : 역설법, 자유 연상법 사용 • 특징 : 띄어쓰기 무시('낯설게 하기'의 기법으로 관습의 파괴를 시도). 시의 율격을 배제함으로써 음악적인 요소 무시. 반이성(反理性)에 입각한 역설적인 기법 • 구성 : 1~2문장 : 자아의 상황 설정 ..

문학/현대운문 2021.02.26

북어(北魚) - 최승호

북어(北魚)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비판적, 반성적, 상징적, ..

문학/현대운문 2021.02.26

해바라기의 비명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 함형수

해바라기의 비명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정열적, 낭만적, 의지적 • 운율 : 각운.('~라.') • 어조 ① 정열적 삶을 원하는 청년의 낭만적 목소리. ② 강렬하고 단호한 명령형의 어조. • 특징 ① 명령형 종결 어미를 사용하여 화자의 의지가 강렬하게 전달되고 있다. ② 자연물의 효과적 비유를 통해..

문학/현대운문 2021.02.26

가요풍송 - 작자미상

가요풍송 작자미상 떠잇고나 떠잇고나 대한 강산(大韓 江山) 떠잇고나. 광부(匡扶) 대수(大手) 누구런고, 산령(山靈)수신(水神) 통곡(痛哭)하며 옥황(玉皇)상제(上帝) 호소(呼訴)하니 감응지리(感應之理) 업슬손가. 애고지고 흥 반갑도다 반갑도다 대한(大韓) 민심(民心) 반갑도다. 팔역(八域)이 정비(鼎沸)하되 국채(國債) 보상(報償) 열심(熱心)하야 지금도 육속(陸續)하니 애국성(愛國誠)이 감사(感謝)하다. 애고지고 흥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해산(解散) 장졸(將卒) 우지 마라 징병령(徵兵令)을 실시(實施)하면 설치(雪恥) 은번 아니 될까. 애고지고 흥 놀고 가세 놀고 가세 각부(各部) 대신(大臣) 놀고 가세. 귀쏙말이 비밀(秘密)하니 다회(茶會) 만찬(晩餐) 자미로다. 세상사(世上事)는 하여(何如)턴지 ..

문학/현대운문 2021.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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