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학/현대운문 64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시의 모티브가 된 샤갈의 두 작품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율격 : 내재율 • 성격 : 감각적. 회화적. 환상적 • 어조 : 차분하면서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어조 • 표현 ① 연을 나누지 않은 전연시(全聯詩)의 형태. ② 현재형의 시제를 ..

문학/현대운문 2021.02.25

우리 동네 구자명씨 - 고정희

우리 동네 구자명씨 고정희 맞벌이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씨 일곱 달 된 아기엄마 구자명씨는 출근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씨, 그래 저 십 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 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 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 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기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문학/현대운문 2021.02.25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문학/현대운문 2021.02.25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시낭송 감상하기 핵심 정리 ..

문학/현대운문 2021.02.25

은행나무 - 곽재구

은행나무 곽재구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핵심 정..

문학/현대운문 2021.02.25

봄은 간다 - 김억

봄은 간다 김억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낭만시, 순수시 • 시대 : 1920년대 • 성격 : 상징적, 감상적, 독백적, 낭만적 • 심상 : 공감각적 심상 • 어조 : 애상적 어조 • 운율 : 각운 • 표현상의 특징 1) 우리말의 구조를 잘 살려 쓰면서, 정형성이 주는 미감을 독특한 각도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현대 시사(詩史)상높이 평가되고 있다. - 두운 : 양성 ㅏ와 ㅗ의 불규칙적 배치 - 각운 : -다, -ㄴ데, -음/움 : 각 연 마지막 - 각 연 2행..

문학/현대운문 2021.02.25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상징적, 의지적 • 제재 : 물의 흐름과 만남 • 주제 : 순수한 마음으로 만나는 삶. 원시적 생명력과..

문학/현대운문 2021.02.25

어느 지류에 서서 - 신석정

어느 지류에 서서 신석정 강물 아래로 강물 아래로 한 줄기 어두운 이 강물 아래로 검은 밤이 흐른다. 은하수가 흐른다. 낡은 밤에 숨막히는 나도 흐르고 은하수에 빠진 푸른 별이 흐른다. 강물 아래로 강물 아래로 못 견디게 어두운 이 강물 아래로 빛나는 태양이 다다를 무렵 이 강물 어느 지류에 조각처럼 서서 나는 다시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리……. 지류1支流 1.강의 원줄기로 흘러들어 가거나 갈려 나온 물줄기 2.한 갈래 안에서 생각의 차이로 여럿으로 갈라지는 것 (다음 사전) 지류1 (支流) [명사] 1. 강의 원줄기로 흘러들거나 원줄기에서 갈려 나온 물줄기. 2. 학설이나 정당 따위의 주류에서 갈라져 나와 한 파를 이룸. 또는 그렇게 이룬 파. (네이버 사전)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문학/현대운문 2021.02.25

국경의 밤 - 김동환

국경의 밤 김동환 제 1 부 1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검은 순사가 왔다― 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密輸出) 마차를 띄워 놓고 밤 새 가며 속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맥이 풀려서 ‘파!’ 하고 붙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2 어디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 나오는 듯 “어―이” 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 저 서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軍號)라고 촌민(村民)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처녀(妻女)만은 잡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 가슴을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눈보라에 늦게 내리는 영림..

문학/현대운문 2021.02.25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 도종환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도종환 견우직녀도 이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께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갈고 씨뿌리고 땀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핵심 정리 • 성격 : 애상적, 산문적, 회고적 • 심상 : 시각적 심상 • 특징 : ① 자전적 성격을 지님. ..

문학/현대운문 2021.02.2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