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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07

도다리를 먹으며 - 김광규

일찍부터 우리는 믿어왔다 우리가 하느님과 비슷하거나 하느님이 우리를 닮았으리라고 말하고 싶은 입과 가리고 싶은 성기의 왼쪽과 오른쪽 또는 오른쪽과 왼쪽에 눈과 귀와 팔과 다리를 하나씩 나누어 가진 우리는 언제나 왼쪽과 오른쪽을 견주어 저울과 바퀴를 만들고 벽을 쌓았다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자유롭게 널려진 산과 들과 바다를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고 우리의 몸과 똑같은 모양으로 인형과 훈장과 무기를 만들고 우리의 머리를 흉내내어 교회와 관청과 학교를 세웠다 마침내는 소리와 빛과 별까지도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고 이제는 우리의 머리와 몸을 나누는 수밖에 없어 생선회를 안주삼아 술을 마신다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온몸을 푸들푸들 떨고 있는 도다리의 몸뚱이를 산 채로 뜯어먹으며 묘하게도 두 눈이 오른..

문학/현대운문 2021.09.18

차범석 '산불' 전문

산불 차범석 나오는 사람들 주요 인물 양씨 (아들이 공산당에게 죽음) ← 기본 대립 관계 → 최씨 (사위가 국군에게 죽음) ↓ ↓ 점례 (며느리) ←→ 사월 (딸) ↘ (삼각 관계) ↙ 규복 (탈출 공비) 때 : 1951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 곳 : 소백산맥 줄기에 있는 촌락 *도붓장수 :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사람 [막] 제1막 (무대) (주위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P부락, 그 가운데 비교적 널찍한 마당이 있는 양씨의 집 안팎이 무대로 쓰인다. 무대 우편에 부엌과 방 두개와 헛간이 기역자형으로 구부러진 초가집이 서있다. 지붕은 이미 2년째나 갈아 이지 못해서 잿빛으로 시들어 내려앉았고 흙벽도 군데군데 허물어진 채로 서 있다. 안방과 건너방 사이에 두 칸 남짓한 마루가 있고 건넌방은 제 4벽..

문학/소설전문 2021.09.17

정인보 '자모사' 전문

1 가을은 그 가을이 바람불고 잎 드는데(떨어지는데) 가신 님 어이하여 돌오실 줄 모르는가 살뜰히 기르신 아이 옷 품 준 줄 아소서 가을은 다시 오건만 어머니는 오시지 않고 어느새 아이의 몸은 커져 옷 품이 줄었다. (구별 배행) 2 부른 배 골리보고 나은 얼굴 병만 여겨 하루도 열두 시로 곧 어떨까 하시더니 밤송인 쭉으렁*인 채 그저 달려 삽내다 부른 자식의 배도 고파보이고, 나은 얼굴도 병든 것 같아 종일 걱정하시더니 자식은 찌그러진 밤송이처럼 달려 삽니다. (장별 배행) * 쭉으렁 : 속담 '쭉으렁 밤송이 삼년 달린다.' 인용. 다병(多病)한 사람이 그대로 부지하는 것과 못 생기고 오래 사는 것에 견주어 말함. 3 동창에 해는 뜨나 님 계실 때 아니로다 이 설움 오늘날을 알았드면 저즘미리 먹은 맘 ..

문학/고전운문 2021.09.09

'박태보전' 전문

박태보전(朴泰輔傳)1) 조선 숙종(朝鮮肅宗) 시절에 공의 명은 태보(泰輔)요, 자는 사원(士元)이니 충심이 백일(白日, 밝은 햇빛)2)을 꿰이는지라. 숙종대왕이 중전 인현왕후(中殿仁顯王后) 민씨(閔氏)씨를 폐위하신 후, 궁 희빈장씨(宮 禧嬪張氏)를 올려 왕비를 삼으려 하시니, 간특(奸慝, 간사하고 악독)한 소인들은 상(上, 임금)3)의 뜻을 맞추고 충직(忠直)한 신하 간하는 자 있으면 상이 진노하셔서 참화(慘禍, 비참하고 끔찍한 변고)를 입었더라. 기사(己巳, 1689년, 숙종 15년)4) 사월 이십사일은 중전 탄신일(誕辰日)이니, 이날 백관(百官)과 백성들의 하례(賀禮)를 상이 다 물리치고 만약 거역하는 자 있으면 곧 파출(罷黜, 파직)5)하라 하시니, 이날로부터 더욱 궁중이 소란한지라. 전 응교(應敎..

문학/고전산문 2021.09.03

'채봉감별곡' 전문

채봉감별곡 어젯밤에 불던 바람은 금성(金聲, 가을의 느낌을 자아내는 소리)이 완연하다. 모란봉 추운 바람이 단풍과 낙엽을 흩날려서 평양성중으로 불어 떨어뜨리는데, 사정없이 넘어가는 저녁빛에 홀로 서창을 의지하여, 바람에 불려 떨어지는 낙엽을 맥없이 보며 앉아 있는 여인은 평양성 밖에 사는 김 진사 집 처녀 채봉이라. 김 진사는 평양에서도 조신(삼가서 몸가짐을 조심)하는 양반이라. 문벌과 재산이 남부럽지 않을 만하지만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어 항상 한탄하더니, 만년에 딸 하나를 낳아 이름을 채봉이라 하여 금옥같이 기르니, 채봉이 재주가 총명하여 침선여공(針線女工)과 시서문필(詩書文筆)이 일취월장하고, 화용월태(花容月態, 아름다운 여자의 고운 용태)가 미인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라, 김 진사 내외 극히 사랑..

문학/고전산문 2021.08.27

'배비장전' 전문

배비장전 *비장(裨將) : 조선 시대에, 감사(監司)ㆍ유수(留守)ㆍ병사(兵使)ㆍ수사(水使)ㆍ견외 사신(使臣)을 따라다니며 일을 돕던 무관 벼슬. 천지간의 인생이란 남녀를 막론하고 사람의 씨는 같겠지만 그러나 사람마다 우열이 판이하여 남자에 현인·군자와 우부·천맹이 있고, 여자에 정부·열녀와 음녀·간희가 아주 없어지는 일이 없이 대를 이어오니, 예나 이제나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은 형형색색의 사람의 성질이라 할 것이다. 사람의 성질이란 것은 살고 있는 고장의 산천이 지니는 풍치와 경치를 많이 닮게 되는 것이니,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의 사람은 성질이 순후하고 공손하고 부지런하며 악한 기질이 별로 없고, 산천이 험준한 지방에서는 그대로 사람의 성질이 어리석고 둔하며 간사하고 교활하게 나는 법이다. 호남 좌도..

문학/고전산문 2021.08.26

신선 재곤이 - 서정주

땅 우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在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었습니다. ‘재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치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

문학/현대운문 2021.08.18

성석제 '투명인간' 전문 일부

저작권 문제로 아래 여러 링크들을 통해서 전문 일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투명인간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내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단편 소설집으로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조동 books.google.co.jp YES24 미리보기 - [도서] 투명인간 www.yes24.com 인터파크 도서 미리보기 book.interpark.com "손발 닳도록 가정에 헌신…베이비부머 가장을 위한 헌사" 장편소설 '투명인간' 출간한 성석제 씨 소설가 성석제 씨(54)가 2년 만에 신작 장편《투명인간》(창비)을 냈다. 성씨가 말하는 투명인간은 학교나 직장 등 조직에서 눈에 잘 띄지 않거나, 있어도 외면당하는 사람이다. 그는..

문학/현대산문 2021.08.01

현기영 '순이삼촌' 전문

순이삼촌 현기영 내가 그 얻기 어려운 이틀간의 휴가를 간신히 따내가지고 고향을 찾아간 것은 음력 섣달 열여드레인 할아버지 제삿날에 때를 맞춘 것이었다. 할머니 탈상(脫喪) 때 내려가보고 지금까지이니 그동안 8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었다. 바쁜 직장 핑계 대고 조부모 제사에 한 번도 다녀오지 못했으니 큰아버지나 사촌 길수형은 편지 글발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무던히도 욕을 하고 있을 터였다. 물론 일본에 있는 아버지가 제사 때가 되면 잊지 않고 제숫감 마련에 쓰고도 남아 얼마간 가용에 보탬이 될 만큼 넉넉하게 큰집으로 송금하는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선산을 못 돌아보고 기제사에 참례 못하는 죄스러움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요 며칠 전에 큰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만 것이었다. 가족묘지 ..

문학/소설전문 2021.08.01

이호철 '나상(裸像)' 전문

나상(裸像)* 이호철 *裸 : 옷 벗을 나, 像 : 형상 상 시원한 여름 저녁이었다. 바람이 불고 시커먼 구름 떼가 서편으로 몰려 달리고 있었다. 그 구름이 몰려 쌓이는 먼 서편 하늘 끝에선 이따금 칼날 같은 번갯불이 번쩍이곤 했다. 이편 하늘의 별들은 구름 사이사이에서 이상스레 파릇파릇 빛났다. 달은 구름 더미를 요리조리 헤치고 빠져나왔다가는, 새로 몰려오는 구름 더미에 애처롭게도 휘감기곤 했다. 집집의 지붕들은 싸늘한 빛으로 물들고, 대기에는 차가운 물기가 돌았다. 땅 위엔 차단한 정적이 흘렀다. 철과 나는 베란다 위에 앉아 있었다. 막연한 원시적인 공포같은 소심한 감정에 사로잡혀 둘이 다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철은 먼 하늘가에 시선을 준 채 연방 담배를 피웠다. 이렇게 한 시간쯤 묵묵히 앉았다가 ..

문학/소설전문 2021.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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