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카테고리의 글 목록 (5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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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13

'채봉감별곡' 전문

채봉감별곡 어젯밤에 불던 바람은 금성(金聲, 가을의 느낌을 자아내는 소리)이 완연하다. 모란봉 추운 바람이 단풍과 낙엽을 흩날려서 평양성중으로 불어 떨어뜨리는데, 사정없이 넘어가는 저녁빛에 홀로 서창을 의지하여, 바람에 불려 떨어지는 낙엽을 맥없이 보며 앉아 있는 여인은 평양성 밖에 사는 김 진사 집 처녀 채봉이라. 김 진사는 평양에서도 조신(삼가서 몸가짐을 조심)하는 양반이라. 문벌과 재산이 남부럽지 않을 만하지만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어 항상 한탄하더니, 만년에 딸 하나를 낳아 이름을 채봉이라 하여 금옥같이 기르니, 채봉이 재주가 총명하여 침선여공(針線女工)과 시서문필(詩書文筆)이 일취월장하고, 화용월태(花容月態, 아름다운 여자의 고운 용태)가 미인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라, 김 진사 내외 극히 사랑..

문학/고전산문 2021.08.27

'배비장전' 전문

배비장전 *비장(裨將) : 조선 시대에, 감사(監司)ㆍ유수(留守)ㆍ병사(兵使)ㆍ수사(水使)ㆍ견외 사신(使臣)을 따라다니며 일을 돕던 무관 벼슬. 천지간의 인생이란 남녀를 막론하고 사람의 씨는 같겠지만 그러나 사람마다 우열이 판이하여 남자에 현인·군자와 우부·천맹이 있고, 여자에 정부·열녀와 음녀·간희가 아주 없어지는 일이 없이 대를 이어오니, 예나 이제나 헤아려 알 수 없는 것은 형형색색의 사람의 성질이라 할 것이다. 사람의 성질이란 것은 살고 있는 고장의 산천이 지니는 풍치와 경치를 많이 닮게 되는 것이니,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의 사람은 성질이 순후하고 공손하고 부지런하며 악한 기질이 별로 없고, 산천이 험준한 지방에서는 그대로 사람의 성질이 어리석고 둔하며 간사하고 교활하게 나는 법이다. 호남 좌도..

문학/고전산문 2021.08.26

신선 재곤이 - 서정주

땅 우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在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었습니다. ‘재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치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

문학/현대운문 2021.08.18

성석제 '투명인간' 전문 일부

저작권 문제로 아래 여러 링크들을 통해서 전문 일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투명인간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4년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내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단편 소설집으로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조동 books.google.co.jp YES24 미리보기 - [도서] 투명인간 www.yes24.com 인터파크 도서 미리보기 book.interpark.com "손발 닳도록 가정에 헌신…베이비부머 가장을 위한 헌사" 장편소설 '투명인간' 출간한 성석제 씨 소설가 성석제 씨(54)가 2년 만에 신작 장편《투명인간》(창비)을 냈다. 성씨가 말하는 투명인간은 학교나 직장 등 조직에서 눈에 잘 띄지 않거나, 있어도 외면당하는 사람이다. 그는..

문학/현대산문 2021.08.01

현기영 '순이삼촌' 전문

순이삼촌 현기영 내가 그 얻기 어려운 이틀간의 휴가를 간신히 따내가지고 고향을 찾아간 것은 음력 섣달 열여드레인 할아버지 제삿날에 때를 맞춘 것이었다. 할머니 탈상(脫喪) 때 내려가보고 지금까지이니 그동안 8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었다. 바쁜 직장 핑계 대고 조부모 제사에 한 번도 다녀오지 못했으니 큰아버지나 사촌 길수형은 편지 글발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무던히도 욕을 하고 있을 터였다. 물론 일본에 있는 아버지가 제사 때가 되면 잊지 않고 제숫감 마련에 쓰고도 남아 얼마간 가용에 보탬이 될 만큼 넉넉하게 큰집으로 송금하는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선산을 못 돌아보고 기제사에 참례 못하는 죄스러움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요 며칠 전에 큰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만 것이었다. 가족묘지 ..

문학/소설전문 2021.08.01

이호철 '나상(裸像)' 전문

나상(裸像)* 이호철 *裸 : 옷 벗을 나, 像 : 형상 상 시원한 여름 저녁이었다. 바람이 불고 시커먼 구름 떼가 서편으로 몰려 달리고 있었다. 그 구름이 몰려 쌓이는 먼 서편 하늘 끝에선 이따금 칼날 같은 번갯불이 번쩍이곤 했다. 이편 하늘의 별들은 구름 사이사이에서 이상스레 파릇파릇 빛났다. 달은 구름 더미를 요리조리 헤치고 빠져나왔다가는, 새로 몰려오는 구름 더미에 애처롭게도 휘감기곤 했다. 집집의 지붕들은 싸늘한 빛으로 물들고, 대기에는 차가운 물기가 돌았다. 땅 위엔 차단한 정적이 흘렀다. 철과 나는 베란다 위에 앉아 있었다. 막연한 원시적인 공포같은 소심한 감정에 사로잡혀 둘이 다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철은 먼 하늘가에 시선을 준 채 연방 담배를 피웠다. 이렇게 한 시간쯤 묵묵히 앉았다가 ..

문학/소설전문 2021.07.30

농무(農舞) -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농무(農舞) - 신경림 *농무 : 풍물놀이에 맞추어 추는 춤. 꽹..

문학/현대운문 2021.06.24

폭포 - 이형기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 나는 맹목(盲目)*의 물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 2억 년 묵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폭포 - 이형기 *단말마 : ‘임종(臨終)’을 달리 이르는 말. 숨이 끊어질 때의 모진 고통. *석탄기 : 고생대 데본기와 페름기의 중간에 있었던 지질 시대의 하나. 거대한 양치식물이 많았고 파충류와 곤충류가 나타났다. *복안 : 곤충(昆蟲), ..

문학/현대운문 2021.06.19

폭포 -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폭포 - 김수영 *나타: 나태, 게으름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주지시 • 성격 : 관념적, 상징적, 참여적, 주지적 • 어조 : 의지적이고 강인한 어조 • 제재 : 폭포 • 주제 : 부조리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저항 정신과 의지 • 특징..

문학/현대운문 2021.06.19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으면서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은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핵심 정리 - 갈래: 자유시, 서정시 - 성격: 철학적, 사색적, 문답적, 인본주의적, 전언적(삶의 지혜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 - 주제 : 시인의 사회적 책무와 서민들의 성실하고 건강한 삶에 대한 긍정, 시와 시인의 본질, 평범한 사람들의 진실된 삶이 진정한 시의 모습이라는 ..

문학/현대운문 202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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